엄마의 하늘

벼가 익어간다

by 데이지

내가 자주 가는 산책 코스는 논이 펼쳐져 있는 하천길이다. 아파트에 살면서 시골 풍경을 볼 수 있는 이 길이 참 좋다. 지방 소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낭만인지도 모른다.

찰랑찰랑 물을 댄 논에 비친 하늘 풍경이 예쁘다 싶었는데 여기저기 모가 심어지고, 이제 하루가 다르게 벼가 익어가고 있다.


아이들 어릴 적에 한살림에서 논농사 체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귀찮을 텐데도 선뜻 논을 내어주신 어르신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 그러니 어렵겠지만 자주 와야 한다.”

우린 어쭙잖게 벼를 심는 체험을 했을 뿐 농부의 마음을 갖진 못했다. 그래도 벼가 자라는 모습을 제대로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엄마가 늘 말씀하시던 그 귀한 쌀을 만드는 신비한 풀.


엄마에게 밥은 하늘이었다.

어릴 적 엄마는 쌀 한 톨도 그냥 흘려버려서는 안 된다고, 발우공양 하듯 다 먹은 밥공기에 물을 부어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먹으라 하셨다. 우리에겐 철칙 같은 거였다. 땀 흘려 수고한 농부들 생각해서라도 밥은 절대 버려선 안 된다는 게.

지금처럼 냉장고가 없던 시절, 어쩌다 남긴 밥이 쉬어도 엄마는 절대 버리지 않으셨단다.

“귀한 밥을 어떻게 버리니. 물에 후루룩 한번 씻어내고 그냥 먹었단다.”

위생과 건강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그 시절은 엄마가 힘겹게 넘어야 할 보릿고개였다.


나중에 들었다.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우리 집이 얼마나 가난했는지. 엄마는 흰쌀밥이 먹고 싶었는데 형편이 어려워 거친 보리쌀밖에 살 수 없었다고 한다. 두메산골에서 상경해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던 살림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으리라. 입덧이 심해 보리 냄새도 맡기 싫어 제대로 먹지 못했던 그때, 마음씨 좋은 주인집 아주머니가 쌀을 좀 줬다던가. 그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고, 새댁이 걱정된다며 내민 쌀 봉지를 잊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던 기억이 있다.

그래선지 엄마는 어릴 적 잔병치레를 하는 내게 늘 미안해하셨다. 너 가졌을 때 못 먹어서 그런 것 같다고. 자식의 아픔도 당신 탓인 양 안타까워하셨다.


모든 엄마가 다 그런 줄 알았다.

결혼하고 나서 만난 시어머니는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걱정 없이 사신 분이었다. 신혼 초 시댁에 갔다가 어머니가 냉장고에 있던 밥을 그냥 버리시는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엄마에게 들어본 적 없는 비유는 전혀 다른 세계의 논리였다. 쿨함 그 자체였다.

“억지로 먹지 마라. 뱃속에 버리나 밖에 버리나 똑같다.”

먹을 걸 버리는 걸 죄악시했던 엄마와 너무도 확연히 대비됐다. 그 아까운 걸, 깜짝 놀라실 엄마 얼굴이 그려졌다.


지금도 생각난다.

엄마의 보릿고개 시절은 모르지만, 엄마가 음식을 만드는 과정들은 기억난다. 알뜰하게 쓰고 비우고 갈무리해 두시던.

어젯밤, 닭갈비를 맛있게 먹고 프라이팬에 남아 있는 양념에 밥 한 숟갈을 넣어 비빈다. 그냥 씻어버려도 되는데 그게 아깝다. 이럴 때 내 안에 엄마가 있는 것 같다. 콩나물 무침을 그릇에 정갈하게 담은 다음, 양푼에 남아 있는 양념이 아까워 늘 밥 한 술 떠서 쓱쓱 비벼 드셨던 엄마. 어쩌면 엄마가 비빔밥을 좋아했던 것도 남은 반찬들을 버리지 않고 이것저것 살뜰하게 소비했던 엄마의 습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채소가 풍성한 계절, 엄마표 양푼 비빔밥이 생각난다. 꽁치통조림에 된장을 섞어 만든 특제 소스도 먹고 싶다. 양배추를 살짝 삶아 싸 먹으면 정말 맛있었는데….

이렇게 불쑥 엄마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이번 주에 엄마를 만나면 이 얘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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