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베스트 컨디션
딩동!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요양원 출입구 벨을 눌렀다.
“어~! 안녕~하세요? 원장 선생님, 방금 나가셨는데…. 오늘 원래 오시기로 했나요?”
복지사 선생님과 요양보호사 한 분이 우릴 맞아 주셨는데 평소와 다르다. 뭔가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왜지? 이상하다 싶었는데 순간 내가 면회 예약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세상에!
엄마를 만나러 요양원에 갈 땐 미리 언제, 몇 시에 간다고 알린다. 초기엔 원장 선생님 카톡으로 보냈다. 그런데 이젠 케어포(carefor) 프로그램에 들어가 면회 일정을 예약한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30분 간격으로 예약할 수 있다. 예약이 완료되면 확인 메시지가 오고, 하루 전날에도 알려준다. 동생은 일하느라 바쁘니까 예약만큼은 내가 한다. 생각해 보니 이번엔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예약을 안 했으니 당연하지. 아이고, 이 정신머리….
면회하는 날, 엄마는 늘 거실에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그런데 출입문을 열자마자 보여야 할 엄마가 없어서 그 짧은 순간에도 혹시 아프신가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면회실 문을 나서는 요양사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왜 안 그렇겠나. 누워 계신 엄마를 일으키고, 옷매무새 다듬고, 머리 손질하고….
‘꽃단장’을 마친 엄마가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다. 갑작스러운 방문이 싫지 않으신지 활짝 웃으신다.
“엄마, 우리가 갑자기 와서 놀랐지? 엄청 반갑지?”
엄마가 그렇다는 듯, 툭 왼손을 뻗어 내 얼굴을 살짝 건드린다. 장난스러운 동작에 모두 웃음을 터트린다.
서프라이즈 방문은 요양원 선생님들한텐 패닉이겠지만, 우린 꾸미지 않은 평소의 엄마 모습을 볼 기회라고 조용히 킬킬댔다.
엄마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뒷머리가 비쭉 서 있는 정도? 오랫동안 불편하셨을 도뇨관도 졸업한 터라 엄마의 표정이 한결 홀가분해 보였다.
캐나다에 있는 오빠랑 영상통화 할 때도 아들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몇 마디 하셨고, 우리랑 대화할 때도 집중력이 좋았다.
보통 때의 엄마는 조금 피로해 보였는데, 혹시 선생님들이 면회용 초읽기 공부를 시켜서가 아닐까 상상한다.
“엄마, 누가 온다고 했죠? 그래요, 딸. 딸 이름이 뭐라고 했죠?” 모르긴 해도, 이런 질문들을 던지며 엄마를 준비시키지 않았을까.
우리가 엄마에게 다가가 던지는 첫 질문이 “엄마, 우리가 누구게~?”이니까.
그러나 선생님들의 기대와 달리, 엄마는 매번 우리를 ‘동생들’이라고 하거나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갸웃하곤 했다. 사실 정답률이 20%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엄만 우리가 편안한 사람이라는 건 안다. 컨디션이 좋을 날엔 헤어질 때 엄마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다. 갑작스러운 그 순간, 그 짧은 찰나에 우리도 금세 눈물이 핑 돈다.
엄마가 아프시기 전, 치매가 뭔지도 모를 그 시절. 엄마는 직장 때문에 바쁜 딸이 가끔 와서 하루 겨우 자고 떠나는 날이면 서운해하셨다.
친정이라고 꼼짝도 안 하는 다 늙은 딸 대신 식사를 준비하면서도 귀찮아하지 않으셨던 엄마. 작은 딸이 사준 쇠고기는 죄다 검정 ‘봉다리’에 넣어 냉동실에 쟁여 뒀다가 내가 갔을 때 꺼내 요리해 주시던 엄마. 배웅할 때마다 말로는 시원섭섭하다, 그러시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크다는 걸 당신의 얼굴로 보여주시던 엄마. 엄마의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지던 그때가 생각난다.
면회시간이 끝나가는 건 엄마도 안다. 우리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일어설 준비를 하니까. 그럴 때 엄마가 살짝 불안해하는 게 보인다.
“엄마, 나 일할 땐 일 년에 대여섯 번밖에 못 왔잖아. 그런데 이제 한 달에 두 번씩 오니까 좋지? 엄마, 곧 또 올게요~”
휠체어의 고정 레버를 풀어 엄마와 함께 면회실을 나선다. 출입문까지 천천히 이동한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는 우리에게 엄마가 묻는다.
“언제 또 올 거야?”
이런 질문이 얼마만일까. 너무도 멀쩡한 엄마의 질문에 요양사 선생님이 깜짝 놀란다. 엄마의 이런 모습이 반갑기만 하다. 손 흔들어 주세요, 또 오라고 말씀하 주세요, 이런 말에 마지못해 반응하던 엄마와 다른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다.
면회를 마치고 원장 선생님께 카톡을 보냈다. “죄송해요, 담엔 꼭 예약하고 오겠습니다!”
선생님이 답글을 보내왔다. “엄마 뵈러 언제든지 오셔도 좋습니다. 그동안 먼 거리에서 면회 오시는 모습도 저희로서는 너무나 감동이에요~ 엄마가 좋아지시는 건 모두 사랑 덕분인 거 같아요.^^”
엄마는 복이 많은 사람.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는 원장 선생님도, 늘 가까이에서 엄마를 보살펴 주는 요양사 선생님도, 엄마가 완벽하게 회복될 때까지 돌봐 주신 간호사 선생님도, 엄마에게 예쁜 셔츠를 선물해 주신 복지사 선생님도….
오랜만에 베스트 컨디션을 보여준 엄마 덕분에 동생과 나는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엄마가 좋아하셨던 아메리카노가 유독 향기로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