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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May 27. 2024

프라하 첫 여행지, 비셰흐라드

그리고 발랄한 댄싱하우스

프라하엔 5일간 머물 예정이라 프라하 카드 4일권을 사기로 했다. 이 카드로 프라하에 있는 어지간한 관광지와 교통수단은 다 이용할 수 있다. 지난밤에 내렸던 중앙역에 판매소가 있다니 카드를 구입하고 움직이기로 했다.


# 체코인의 정기가 서린 신성한 곳, 비셰흐라드

프라하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비셰흐라드(Vysehrad ).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성이라는 뜻이다. “보헤미아 영광의 시작,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첫 번째 곡의 주제가 된 곳”(네이버 지식백과)이라니 첫 여행지의 상징적인 장소로 이만한 곳이 없겠다 싶었다.


지도앱을 믿을 걸. 버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데다 누군가에게 물었더니 여기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면 된단다. 지름길이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냥 잘못 내린 거였다. 여행지에선 꼭 이런 착각을 한다. 모든 사람들이 나의 행선지와 같을 것이라는. 지그재그 언덕길을 힘들게 올라갔더니 트램 정거장이 보인다. 저걸 탔으면 한결 편히 갔을 텐데. 첫날부터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의 시행착오를 제대로 겪었다.


도착해 보니 여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다. 현지인들에겐 그저 공원, 블타바 강이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보러 가는 곳이라더니 관광객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우린 이런 곳을 더 좋아하지. 마치 현지인처럼 산책하는 기분이 좋다.


아름다운 건축물 <성마르틴 로툰다> 앞 벤치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평화롭다. 작은 성당 내부는 또 얼마나 고요할까.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문이 잠겨 있다. 주변엔 체코 예술인들이 잠든 <비셰흐라드 묘지>가 있다.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을 기리는 곳. 여기저기 시들지 않은 꽃들이 놓여 있는 공간을 천천히 거닌다.  바로 옆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성당>이 있다. 까맣게 그을린 듯한 건축물을 올려다보며 세월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


블타바 강이 내려다보이는 곳, 중세 시대 망루였다는 <비셰흐라드 갤러리>는 딱 내 취향이다. 어쩜 전망 좋은 이곳을 갤러리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자그마한 건물 외관도, 벽돌 마감 그대로 노출된 내부 천장도 예쁘다. 오랫동안 건물을 쳐다보며 사진에 담았다.  


# 콘크리트로 구현한 쉘 위 댄스 - 댄싱하우스

여행의 즐거움은 색다른 건축물을 만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셰흐라드에서 20여 분 걸어 내려오면 전혀 다른 이미지의 프라하를 만날 수 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물>에 꼽히는 댄싱하우스는 단연 돋보인다. 구시가지의 유서 깊은 건축물이 압도하는 도시에서도 기죽지 않는 발랄함이 좋았다.


놀랍게도 그 자리엔 2차대전 때 폭격당한 채 50년간 방치된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오래도록 전쟁의 상흔을 지켜보아야 했던 프라하 시민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바람대로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파격적인 시도를 한다.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이름을 날린 무용가 커플 ‘프레드와 진저’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차가운 유리 소재와 콘크리로 구현한 “쉘 위 댄스”라고 할까.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이제 슬슬 내가 하던 일을 마무리할 시점이라고 생각하던 그때, 나는 댄싱하우스의 자유로운 이미지가 너무 좋았다. 파격이란 별 게 아냐. 마치 춤추기 직전의 설레임처럼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일, 생기 있게 만드는 일을 다시 시작해! 마치 이렇게 손 내미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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