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해 두었다가 함께 하자고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시작은 몇 달 전, 인스타그램에서 본 사진 한 장이었다.
푸릇푸릇한 이파리가 싱그러운 큰 나무 아래 작은 카페가 있다. 집을 개조한 듯 작은 창문은 주문 카운터로 꾸며져 있고, 앞마당엔 흰색으로 페인팅한 투박한 원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카페를 포근히 안은 듯한 저 초록 그늘 아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 좋겠다 싶었다. 별다를 것 없는 자연스러움과 심플한 디자인이 맘에 들었다.
“이런 분위기 좋다.“
딸에게 사진을 공유했더니,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도시라고 한다. 언젠가 엄마가 좋아할 거라고 얘기하지 않았냐던…. 치앙마이였다.
딸은 휴가가 시작되자 당연한 듯 치앙마이에 함께 가자고 했다.
“정말?”
“그럼. 같이 가기로 한 것 아니었어?”
“엄마야 좋지!”
그동안 부모님 모시느라 애쓴 동생도 동행하기로 했다.
작년 이맘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여유로움이 어색했다. 묵직한 시간들을 견디고 나니 이런 순간도 오는구나 싶었다.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온 가족이 북적대는 밥상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딸이 친정에 온다고 하면 냉장고에 맥주를 채워 두시곤 했던 멋진 아버지. 조무래기 시절, 퇴근길에 늘 아이스크림을 한아름 사들고 오셨던 아버지. 평생 자식들을 위해 당신 몸을 아끼지 않으셨던 아버지….
마지막 생신 때 맛있게 드셨던 조기 한 마리를 생각하며 치앙마이 어느 식당에서 생선 구이를 시켰다. 그리고 생각할수록 떠오르는 아쉬움에 눈물을 삼켰다.
치앙마이의 날씨는 딱 좋았다. 한낮에도 그늘에 들어서면 참을 만했고, 아침저녁으론 선선했다. 선데이마켓에서 평소엔 잘 입는 민소매 셔츠와 긴치마를 샀다. 라탄가게에선 동생이랑 세트로 모자를 골랐다. 다들 미니멀라이프에 진입한다는 나이인데, 나는 소소한 물욕을 부려본다. 쪽빛으로 염색한 테이블보와, 인디언 무늬 원단이 맘에 든다. 저 테이블보가 깔릴 피크닉이 기대되고, 인디언 무늬가 잘 어울릴 공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래서였을까.
“역시 엄마는 여행 체질이야.”
여행할수록 내 표정이 밝아 보인다고 딸이 얘기해 준다. 잘 먹고, 많이 걷고, 잘 자고, 편히 쉴 수 있어 그런 모양이다. 떠날 때 챙겨간 소설책 한 권을 읽었고, 이른 아침 새소리를 들으며 글도 끄적였다.
제2의 인생은 흐릿하고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지만, 이제 나를 즐겁게 해주고 싶다. 해야 할 일들 속에서 허우적대던 나를 위로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충분했다.
조식이 훌륭했던 게스트하우스와, 숲속에 온 듯 푸르름이 가득한 리조트는 최상의 조합이었다. 당초 계획보다 늘여 잡지 않았으면 아쉬울 뻔했다.
다음 치앙마이 여행은 우리 사 남매가 함께하는 여행으로 기획해도 좋을 것 같다. 딸이 안내해 준 치앙마이에 친정 가족들이 모인 풍경을 상상해 본다. 조금 시끌벅적하겠지만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모이면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가 좋아하실 것 같다. 카톡방에 치앙마이 잘 다녀왔다고 안부를 전하며 다음 여행을 기약한다.
“담에 우리 다 같이 한번 가요!”
* 덧 : 아쉽게도 내 마음속 치앙마이 이미지였던 그 카페엔 가지 못했다. 구글 지도에 표시도 해뒀지만 외따로이 있는 곳이라 동선이 맞지 않았다. 아쉽진 않았다. 왠지 다음에 또 갈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