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난 심각한 ‘과민성 대장 증후군’ 증세로 고생했다. 소화기능이 약해 빵이나 라면을 먹으면 어김없이 탈이 났다. 당시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도시락으로 빵을 싸 오도록 했는데 고역이었다. ‘과민성’은 집을 떠나 어딘가로 간다고 생각하면 도졌다. 소풍을 갈 때도 마음은 설렜지만 아침부터 제대로 먹지 못했다. 배가 아플까 봐, 낯선 어딘가에서 화장실을 찾게 되는 상황에 직면할까 봐. 아마도 무척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과도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를 만난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사실 내 성격은 성장하면서, 일을 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쎈 척, 신경 안 쓰는 척, 힘들지 않은 척, 뒤끝 없이 쿨한 척…. 그러나 온전히 나로 돌아온 순간에는 아팠다. 계속 곱씹는 버릇이 여전히 남아 있어 괴로웠다. 디테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야 하는 성격 때문에 계속해서 내 몸을 혹사하고 있었다.
사실 이른 퇴직은 가장 대책 없는 결정이었다. 다음 일을 정한 것도 아니고, 노후가 대비된 것도 아니었다. 안전하게 내 자리를 지키기보다, 잘하고 있을 때 내려놓고 싶었다. 돈은 없지만 끝까지 ‘가오’ 있는 선배로 남고 싶었다. 그리고 경력 단절을 극복하고 중년을 불태운 세월들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라도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이 코로나와 가족 돌봄의 상황 때문에 한없이 미뤄졌다. 꼬박 3년, 칩거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요즘 난 여행 가자는 말이 제일 좋다.
이번 삿포로 여행도 사실 객관적인 상황으론 무리였다. 이삿짐을 싸고 있었고, 당장 닷새 뒤에 떠나는 일정이었다. 그래도 무조건 오케이. 딸의 제안에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백수가 좋은 게 이런 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다음일을 시작하기 직전에 생긴 귀한 휴간데 엄마아빠와 함께 가자는 제안이 고마웠다.
셋이 떠난 해외여행은 처음이던가. 여름여행은 싫다고 주저하는 B에게 삿포로는 시원하다고 했는데, 더웠다. 4박5일 짧은 일정인데도 중반에 이르자 B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5년 전 동유럽을 누빌 때가 젊었다는 걸 실감한 여행이었다.
한편 난 모든 게 좋았다. 새로운 도시 풍경도, 낯설지 않은 음식도, 습하지 않은 한 줄기 바람도. 해가 일찍 떠오르는 삿포로에 맞춰 이른 새벽 눈을 뜬다.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아침 운동을 나온 부지런한 사람들을 만난다. 편의점에 들러 샌드위치를 몇 개 산다. 다음날엔 <카모메 식당>을 생각하며 오니기리 맛집을 찾는다. 일상 탈출만으로도 몸이 가벼워진 걸까. 언제 무릎이 아팠나 싶게 잘 걷는 내가 대견하다.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슬렁슬렁 다니는 우리로선 짧은 일정이었다. 남들이 다 가는 관광지는 가볍게 패스하기로 한다. 라벤더 언덕이 눈에 아른거렸지만 활짝 피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쉬러 왔는데 일일투어 하느라 진을 뺄 필요는 없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하기로 한다. 안도 타다오의 <부처의 언덕>과 <삿포로 예술의 숲>에 다녀왔다. 라벤더 언덕에 살짝 머리만 솟아 있는 불상이 인상적이었고, 잘 가꿔진 예술의 숲 산책길도 좋았다. 관광객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라 한산해서 좋았다.
별거 없다는데 영화 <러브레터>의 촬영지 오타루를 거르긴 아쉬웠다. 미나미오타루 역에 내릴 때만 해도, 르타오 매장 직원이 과자 상자에 친절하게 비닐을 씌워줄 때만 해도 예상치 못했다. 간간이 내리던 비가 오타루 운하에 도착하자마자 폭우로 돌변했다. 멈출 기세가 아니다. 제대로 사진도 못 찍고 오타루역으로 향한다. 비닐우산 하나로 딸과 함께 걷는 길. 이 또한 추억으로 남을 테지. 운동화에 물이 차고 오른쪽 어깨도 흠뻑 젖었지만 애써 미소를 지어 본다.
여행 마지막날엔 삿포로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동네 베이커리에서 사 온 빵으로 가볍게 아침을 먹고 삿포로 맥주박물관으로 향한다. 비 오는 날 샘플러 몇 잔에 기분이 좋아진다. 형제들에게 카톡으로 “삿포로 가서 맥주 마시고 올게!”라고 했으니 이번 여행의 목적이기도 하다. 삿포로역과 숙소를 오가며 보았던 오도리 공원을 천천히 거닌다. 수학여행을 온 아이들이 삿포로 TV타워를 배경으로사진을 찍는다. 삿포로의 겨울 풍경은 어떨지 상상해 본다. 추운 건 싫지만 보고 싶긴 하다.
가족만큼 만만한 관계가 있을까 싶다. 그 짧은 4박5일 동안 자잘한 일로 다퉜다 화해하길 반복한다. 과연 우리 여행은 지속될 수 있을까.
해외여행 부모 10계명(15계명까지 생겼다)이 회자되는 현실이, 나도 모르게 금지어를 내뱉고 무안했던 순간이 웃프기만 하다.
언제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는 여행인데도 늘 동행을 제안하는 딸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도여행의 수혜자이기보다는, 지금처럼 함께 계획하고 역할 분담하는 여행 파트너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