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안부를 물을 겸 대표에게 전화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전화드리려 했다며 사정 이야기를 한다. 다른 지역으로 확장 개원하게 됐다고.
그렇게 중요한 일을 이제야 알리다니.. 불과 열흘도 남지 않은 때였다. 매달 1일이면 어김없이 요양비 청구서가 오는데 이번달엔 이상하게 늦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일단 계세요. 정 엄마가 힘들어하시면 연락 주시고요.”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가시는 건가요?”
“아니요. 요양사 선생님들은 그대로 계세요. 걱정 마세요.”
나는 아직도 요양원에 적응하지 못한 엄마가 걱정인데 대표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오히려 투자… 어르신들이 계시기 좋은….”
대표의 말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복잡한 마음에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새로 맡게 된 원장은 요양원 운영 경험이 없다는데 괜찮을까, 대기자 명단에 올려둔 C요양원에 입소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하나….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대표랑 마지막으로 통화하는 날,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는데 엄마 얘기를 한다.
“요즘 밤늦게 퇴근하느라 엄마를 지켜봤더니 잠을 못 주무시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야위셨구나 했어요.”
‘아, 왜 이제야 이런 말을 할까? 그동안은 엄마가 잘 주무시고 잘 드신다고 하지 않았나?’
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무거운 마음으로 신임 원장을 만났다. 그전처럼 대표-원장 체제가 아니라 원장이 총괄하는 시스템인 것 같았다. 요양원 업계에서는 젊은 축에 속하지만 돌봄 경력이 적지 않다고 했다. 원장에게 궁금한 몇 가지를 묻고, 엄마가 특히 약에 예민하니 처방할 땐 미리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원장은, 아침에 엄마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려서 걱정했다고, 일단 약을 쓰지 않고 잘 지켜보겠다고 한다.
엄마가 그러신 건 아마도 심리적인 요인 때문일 것이라고, 안정되면 괜찮아지실 거라고, 되레 내가 원장을 안심시키는 말을 건넨다.
요양원 주인이 바뀌는데 왜 내부가 술렁대지 않았을까. 몇몇 어르신은 전 대표를 따라가기로 했다니 짐을 싸느라 어수선했을 것이다.
치매를 앓고 계시지만 엄마처럼 예민하고 눈치 빠른 분이 그 분위기를 모를 리 없다. 당신은 어떻게 해야 되나 불안하셨을 것이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감정은 속일 수 없다 하지 않았나. 떠들썩하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누군가는 떠났을 것이고, 뭔가 허전한 마음이 밀려왔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엄마가 많이 보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동생과 나를 보더니 무척 반가워하신다. 처음엔 누군지 얼른 말씀을 못하시더니 딸이라고, 누구누구라고 이름까지 제대로 얘기하신다. 시집도 안 갔다는 양반이 아니라고, 2남 2녀 넷을 낳았다고 덧붙인다. 오늘 엄마의 상태는 아주 양호하다.
엄마가 집이 어디냐고, 벌써 갈 거냐고, 밥 먹고 가라는 말을 반복한다. 우리를 붙잡으려는 마음이 역력해서 마음이 아팠다. 당신도 따라갈 듯 나서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엄마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돌아서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재빨리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