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참,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원장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찌르더니 “친딸 아니여.” 그러신다.
아, 딸은 딸이되 친딸이 아니라니. 대체 난 누구 딸이란 말인가. 살짝 출생의 비밀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해 본다.
사실 내 이름은 초등학교 입학할 때 개명했다고 들었다. 당시만 해도 가끔 점쟁이를 찾아가 집안 식구들의 안위를 묻던 엄마가, 장녀 이름에 대해 한마디 듣게 된다. 이 이름으로 살면 허드레일하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말에 식겁하셨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당시 서울에서 유명하다던 김 모 씨를 찾아가 받은 이름이 현재 내 이름이다. 유치원 졸업 앨범엔 다른 이름이 적혀 있으니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엄마 입으로 친딸이 아니라고 하니 혹시 엄마의 무의식에 남아 있는 ‘진실’ 한 자락이 있는 게 아닐까. 엄마 얘기를 형제들 카톡방에 올렸더니 “그런 거 같아”라는 답이 달린다. 으이그.
경위야 어떻든 예전 이름으로 산다면 나중에 내가 개명하겠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라는데, 죄송하지만 작명으로 고심한 흔적이 없다. 아이가 순하다고 ‘순할 순’ 자에 돌림자를 붙여준 게 다라니 너무하지 않나. 과연 작명가가 붙여준 이름값을 내가 제대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새 이름은 만족스럽다. 그때만 해도 개명하려면 엄청나게 귀찮은 절차가 필요했을 텐데, 역시 결단력 있는 엄마답다. 감사하다.
엄마와의 영상통화는 사실 얼굴이 편안하신지 확인하는 정도이다. 대화를 이어가기는 힘들다.
엄마는 뜬금없이 당신도 이사 갈 거라고 하신다. 대체 어떤 기분이기에 이사 얘기를 꺼내시는 걸까. 전 대표가 이사 간다고 했던 게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걸까. 혹시 다음에 어르신도 모시고 가겠다고 공수표를 날려서 기다리시는 걸까. 아니면, 현재 원장이 아직도 낯설게 느껴지시는 걸까? 전 대표보다 나이가 어려서 맘이 안 놓이시나?
엄마 전화를 끊고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약간 들뜬 목소리로 이사 갈 거라는 엄마. 엄마는 과연 어디로 가고 싶으신 걸까. 딸네 집에 가겠다고 하지 않으시는 건 내가 친딸이 아니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일까.
그래도 엄마가 내게 ‘딸’이라고 했으니 오늘은 기쁜 날로 기억하자.
“엄마가 더 나빠진 것 같아.”
요양원에서 엄마를 면회하고 나서는 길에 동생이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한다. 엄마의 동어반복이 더 심해졌다고 느낀 모양이다.
“아니야, 계속 그러셨어.”
엄마의 상태가 ‘그대로’라고 믿고 싶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면회 시간을 보면 안다. 엄마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다.
엄마와 만나는 시간은 15~30분 남짓. 특별히 제한시간이 있는 건 아니지만 몇 마디 말이 계속해서 반복되므로 오래 있기는 힘들다. 그나마 이번엔 오빠와 영상통화를 연결한 덕에 30분쯤 머물렀다. 엄마는 핸드폰 속 아들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누군지 모르겠다 하신다. 이름을 말씀드리니 ‘동생’이라고 대꾸하신다. 옆에 있는 며느리는 ‘올케’라며 반가워하신다.
사실 치매에 걸리기 전에도 엄마는 늘 “용건만 간단히” 파였다. 한국이랑 시차가 있어서 아들이랑 전화 통화 하기도 힘든데, 엄마는 “건강해라” 말밖에 안 하셨다. 당신에겐 그 말이 가장 소중한 말이지만, 사업은 어떤지, 애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길게 얘기를 나누면 좋으련만 전화요금 많이 나온다고 만날 빨리 끊으라고만 하셨다. 인터넷 전화라 괜찮다고, 전화요금 안 나온다고 해도 믿지 않았다. 착한 치매에 걸린 엄마는 이제 오빠에게 “보고 싶다”는 말만 반복하신다. 누구에게나 정답인 그 말, 보고 싶다…. 오빠와 올케는 엄마를 보고 그저 환하게 웃어드릴 뿐이다.
엄마는 우리가 사간 간식이 뭐냐고 자꾸 물으셨다. 원장실 한쪽에 놓여 있는 그 꾸러미들이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뭔지 글씨가 보이지 않느냐고, 한번 읽어보시라고 했다.
“검은콩…., 부드러운…”
두유와 카스텔라라는 걸 알아보시고 엄마가 반색한다.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신다.
“부담스럽게 뭘 이렇게 사 와.”
“우리 사이가 그렇게 부담스러운 사이는 아니잖아?”
내가 던진 농에 엄마가 크게 웃으신다. 오빠를 못 알아보는 엄마가 짠했는지 슬쩍 눈물을 훔치던 동생도 따라 웃는다.
엄마가 웃는 모습을 봤으니 오늘 면회도 ‘일희’로 기록한다. 부디 기쁜 날들이 더 차곡차곡 쌓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