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엄마에게 착한 치매가 찾아왔다>를 완성하고 엄마 이야기는 안 쓰려고 했다. 내 글쓰기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그것도 조심스러운 엄마의 치매 이야기에 매몰될까 봐 두려웠다.
애당초 엄마 이야기를 브런치북으로 엮겠다는 생각 같은 건 없었다. 엄마가 요양원에 가신 뒤, 순간순간 비어져 나오는 슬픔을 어떻게든 수습해야 했다. 브런치 글쓰기는 그런 나를 구원했다. 어지러운 생각들이 정리되기 시작했고, 엄마의 현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위로해 줬다. 그러다 내 글의 첫 번째 라이킷 담당자인 딸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내보라기에 못 이기는 척 마감 직전에 응모했다. 결과는 꽝. 올림픽 정신처럼 깨끗하게 승복하고 참가에 의의를 두라고 말해 주는 듯했다. 발표가 있던 날, 달콤한 슈톨렌을 먹으며 웃음 지었다. 기적처럼 50인의 작가에 선정된다면 더없이 행복하게, 예상대로 미끄러진다면 슈톨렌의 달콤함에 기댈 거라며 동네 빵집에 그날 받기로 예약해 두길 참 잘했다고 나 스스로를 칭찬했다.
아무튼 그렇게 탄생한 첫 번째 내 브런치 북엔 엄마가 치매 진단을 받으시고 요양원에 가시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다. 엄마 이야기지만, 사실은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진즉 엄마를 돕지 못한 후회와 어쩔 수 없음, 그리고 치열한 시대를 산 엄마의 쓰디쓴 인생을 돌아보며 눈물지었던 기록들….
엄마가 요양원에 가신 다음엔 내가 지켜볼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므로 쓸 이야기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주제로 내 글쓰기를 이어가야겠다고 애써 외면했다. 그런데 엄마를 면회하고 돌아온 어느 날, 기록하지 않은 순간들은 휘발돼 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엄마가 지난번엔 어떠셨더라, 뭔가 재미있는 얘기를 하신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엄마와의 짧은 요양원 면회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아무도 궁금하지 않을 <엄마에게 착한 치매가 찾아왔다>의 2편, <조금씩, 천천히 작별> 매거진이 탄생한 배경은 그렇다. 그동안 내 글은 조금 밝아졌고, 엄마도 많이 안정되셨다.
엄마의 발걸음 소리가 다가온다.
“누가 왔다고?” 궁금해하는 엄마 목소리도 들린다. 목소리는 벌써 도착했지만, 엄마 모습은 아직이다.
거리를 두고 면회를 한 건 처음이다. 엄마를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는 없다.
“누굴까요?” 요양원 원장이 엄마에게 묻는다.
“아이고, 조카가 왔네.”
오늘은 조카가 됐다. 엄마가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아 주신다.
옆에 있는 J는 어떻게 알아보신 걸까. 누구냐니까 단박에 사위라고 하신다. 그런데 당신의 사위일 리는 없다.
“건강하시지요~?”
엄마가 조심스럽게 존댓말을 한다. 본 적은 있지만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느낌이 남아 있는 걸까.
10분 남짓한 면회 시간 동안 엄마는 계속 같은 얘기를 되풀이하신다.
“집에 오면 밥이라도 해줄 텐데….”
“밥이라도 같이 먹어야 하는데….”
엄마에게 ‘밥’은 당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이다.
뭐라도 해주고 싶은 엄마 마음을 간파한 원장이 비닐봉지에 귤을 담아 준다.
“차에서 드세요.”
엄마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다.
오늘은 사정이 생겨 동생이 함께 오지 못했다고 말씀드렸더니 엄마가 “많이 컸겠다”라고 대꾸하신다.
이름엔 반응하셨는데 누군지는 떠오르지 않는 듯하다.
아, 엄마. 당신의 작은딸은 벌써 사위를 봤어요. 많이 컸겠다니요…. 사형제 중에 엄마를 끝까지 돌본 사람은 작은 딸이잖아요. 조카로라도 기억해 주셔야죠.
가슴이 저릿해 온다. 슬픈 마음이 밀려온다.
엄마는 요즘 청춘이시다. 원장에게 들으니 당신 나이가 스무 살 언저리라고 그러셨단다. 거울을 보여드리면 흰머리가 많아 걱정이라고 그러신단다.
엄마의 시계가 거꾸로 가는 걸까. 1년 전만 해도 50대 중반이라고 그러셨는데 그렇게 빨리 20대로 진입하신 걸까. 스무 살이 되어 당신이 행복하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어르신들이 함께 계시니까 기숙사 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
이제 가봐야겠다고 하니까 엄마가 다급히 일어선다. 나를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다.
“엄마, 거기 앉아 계세요. 코로나 때문에 다가오시면 안 된대요.”
안타까운지 원장이 손이라도 잡아 드리라고 한다. 엄마의 손은 여전히 따스하다.
영상통화와 다름없는 면회를 한 날이라 마음이 더 무거웠다.
‘이렇게 짧은 면회를 하는 사람이 딸일 리가 없지. 딸은 옆에 있어야지.’
엄마가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아닐까. 내가 오늘 ‘조카’가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엄마가 다시 20대를 산다면 무엇을 하고 싶어 하실까.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으로 다시 시집가고 싶진 않으시겠지. 시어머니는 아프고 시아버지는 한량이시고 다섯 명이나 되는 시동생까지 챙겨야 하는 그 시절로 가고 싶진 않으시겠지. 엄마 밥이 모자라는 걸 알기에 아버지가 슬쩍 밥을 남기면 눈치 없는 어린 동생들이 잽싸게 밥그릇을 채가던 그 가난한 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으시겠지. 사방이 막힌 듯 암담한 그 시절, 맏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한숨짓던 때로 되돌아가고 싶진 않으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