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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Feb 21. 2023

덕질이라 해도 좋다

가수 이승윤의 소심한 팬

퇴직 후 내 화두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단한 ‘버킷리스트’ 같은 것 말고, 그냥 지금까지 안 해 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이만큼 세월이 빨리 흘러간다고 했던가. 시속 50km였던 매일매일이 점점 빨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수록 재밌는 일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그야말로 깔짝깔짝, 뭔가를 시도하는 중이다. 한 가수를 좋아하는 ‘덕질’도 그 중의 하나다.




지난주 일요일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갔다. 콘서트장에 혼자 간 건 난생처음이다. 내 돈으로 콘서트 티켓을 산 것도. 엄마가 왜 그러냐고 식구들이 의아해한다.

“왜~ 좋아하는 가수 공연 보러 간다는데….”

스스로 당당하기로 했다. 이제부턴 내 맘대로 살기로 하지 않았나.


사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이승윤은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의 ‘30호’로 등장했다. 놀라운 말발과 이색적인 매력으로 1등을 해버리더니, 스핀오프 프로그램인 <유명가수전>에선 독보적인 편곡 실력으로 또 다른 진가를 보여줬다. 2021년 그 무렵, 부모님을 돌보느라 지쳐 있을 때, 매주 이승윤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받았다. 사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영상을 다시 보거나 음악을 찾아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런데 어느새 그의 스케줄을 찾아보고 팬카페까지 가입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그 어렵다는 정회원까지 된다.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했는데, 야금야금 덕질이 시작됐다.


사실 이승윤의 음악을 직접 듣겠다고 시도한 건 작년 7월 <불후의명곡 - 록 페스티벌 in 강릉> 콘서트 때였다. 명곡판정단으로 뽑히거나 말거나 강릉에 가야겠다고 맘먹고 덜컥 호텔을 예약했다. 그때만 해도 록음악 종합선물세트 같은 출연진들이 매력적이지 않냐고 덕질을 합리화했다. 공연 전날, 못 이기는 척 따라가 준 J와 강릉으로 떠나는 길에 그의 코로나 감염 소식을 들었다. 망했다. 판정단에 뽑히지 않았어도 뒤에서라도 보겠다는 계획이 틀어졌다. 여름밤 환상적인 하늘과 화려한 무대 조명이 허전하기만 했다.


그 뒤로 몇 차례 공연이 있었지만 몇 분 만에 매진이라는 소식에 좌절했다. ‘아들(딸) 찬스’ 아니면 예매하지 못한다는 설이 떠돌았다. 아무리 ‘피케팅’이라지만 비굴하게(!) 부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취소 표를 얻는 노하우를 어디선가 읽고 취소 표가 풀린다는 새벽까지 기다려 겨우 한 자리를 얻었다. 그저 멀리서 응원한다고 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점점 다가가게 됐을까.   




“저희가요 생각보다 비장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좀 즐거우려구요.”

이승윤의 이 말에 울컥했다. 작년 세종문화회관 단독공연 때였다고 한다. 내 마음 같았다. 공연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퇴직할 때까지 십수 년간 달려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차라리 온전히 생계만을 위한 일이었다면 마음이 가벼웠을까. 한 순간도 책임, 당위, 숙원사업 따위를 저버릴 수 없는 일은 힘겨웠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고립되는 길을 선택해야 했다. 강인한 사람처럼 보여야 하는 일은 나를 소진시켰다.  


이번 공연을 보며 어쩌면 그 비장함이 지금의 이승윤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등장해 단번에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에 압도됐다. 2시간 50분 동안 자신의 음악을 꽉 채워 넣은 선물상자에 팬들은 열광했다. 어제 왔던 팬이 오늘 공연에 왜 또 오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대신 배를 수리하기로 마음먹었다며 만들어낸 2집 앨범은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떤 음악을 지향하는지를 보여준다. 곧바로 전국투어 공연을 기획한 것도 자신의 음악만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의지가 담긴 게 아닐까. 미디어가 만든 스타였지만 이제 그의 음악만으로 ‘이승윤 현상’이 오래 지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팬덤에서 ‘샤이’팬 층에 속하는 나의 덕질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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