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행복이 아니에요

이런 내 삶도 충분히 행복하다

by 작은인간

내가 어릴 적, 그러니까 1990년대 후반에는 국내를 강타한 저서가 하나 등장했다. 바로 오토다케 히로타다가 쓴 <오체불만족>이라는 책이다. 세상이 그렇게 떠들썩했는데도 난 그 책을 읽기가 싫었다. 하지만 그 책은 나의 주변 그 누구보다도 더 나에게 추천이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이 나와 같은 장애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정작 그 사람과 내가 가진 장애는 천지차이인데도 말이다. 이 책을 추천해 준 주위 어른들은 내가 이 책을 읽고 일종의 동기부여, 열정 같은 종류의 것이 나에게서 비치길 기대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주위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의 주인공은 팔다리가 없는 절단 장애인이다. 그래서 두 팔, 두 다리 그리고 머리라는 다섯 개의 신체가 다 채워지지 못했다 하여 책의 제목이 <오체불만족>인 것이다. 그런 그는 자신의 장애에 굴하지 않고 세상을 돌파한다. 팔다리가 없음에도 농구와 축구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구사하며 주위의 인기를 끈다. 중증인 몸을 가지고 초중고를 무사히 졸업하고 일본 명문 대학인 와세다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 후 유명인의 삶과 일본에서 *베리어 프리 운동의 선구자로서 살아가는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베리어 프리 : 장벽 파괴라는 말로 장애인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방해가 되는 물리적/정신적 장벽을 없애는 일절의 행위 및 제도를 뜻한다.


사실 나는 이 책의 주인공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책의 앞부분만 읽고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같은 장애인이어도 그가 살아가는 세상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장애자녀의 삶을 지켜주려는 헌신적인 부모가 일단 나에게는 없었다. 장애인이 살아가는 환경적 준비도 당시 한국보다 일본이 나았다. 물론 오토다케도 그저 그런 혜택만 누리며 성공했다는 말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감동하는 것처럼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제약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각고의 노력을 한 사람이다. 그는 결국 괄목할 만한 성공과 성과를 이뤄냈다. 세상이 장애인을 향해 말하는 것처럼 그야말로 장애를 극복한 대표적인 인물인 것이다.


그 이후로도 사람들은 장애를 극복한 많은 이들과 나를 비교하며 너도 그렇게 돼 보라고 말했다. 제2의 스티븐 호킹이 되라느니, 제2의 헬렌 켈러가 되라느니 하면서 말이다. 마치 장애인이 잘 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세상이 부러워할 만한 사람이 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오히려 주변의 그런 기대와 말들에 위축되었다. 아무리 뜯어봐도 내 인생에는 그들이 이뤄낸 것만큼 무언가를 이뤄낼 자원이 없어 보였다. 나도 노력을 안 한 게 아닌데도 내 노력은 왠지 세상이 인정해 주지 않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세상이 요구하는 장애 극복이라는 서사는 늘 나에게 조금 서글픈 모순처럼 다가왔다. 장애는 극복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각자의 삶과 함께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장애라는 조건이 사라질 때에만 진짜 행복이 시작된다는 듯이 말하곤 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늘 행복할 수 없고, 늘 무언가를 증명해야만 행복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마치 내 몸이, 내 존재가 끝없이 벗어나야만 하는 족쇄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격려와 응원이 오히려 내 삶을 옥죄고 있다는 걸 그들은 알까?


내가 책 속의 주인공처럼 될 수 없었던 이유는 단지 내가 부족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세상과 환경이 마련해 준 따뜻한 지지 위에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현실은 달랐다. 나의 매일은 평범함마저 쉽지 않은 도전과 마주하며 흘러갔다. 내 몸과 삶의 속도로는 세상이 요구하는 ‘특별한 성공’을 꿈꾸는 것이 처음부터 무리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 삶의 무게와 조건을 보지 않고 그저 나에게 “너도 할 수 있다”라는 말을 건넸다. 그 말이 힘이 되기는커녕 나를 더 작고 초라하게 만든다는 걸, 그들은 결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삶에도 분명 따스한 행복의 순간들이 있었다. 유명인의 이야기처럼 극적이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자랑할 만한 성취가 없어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혼자 힘으로 작은 일상을 꾸려갔던 날의 성취감, 누군가의 손길에 기대었을 때 느꼈던 온기, 혹은 아무런 노력 없이 그저 나로 존재해도 좋다고 해주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나름의 행복을 누렸다. 굳이 장애를 극복하지 않아도, 그저 장애를 품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삶 속에도 행복은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결국 행복은 남들의 기준이나 사회의 시선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조용히 시작되는 것임을 나는 믿는다. 장애가 있어도 없어도, 누구나가 평범한 삶 속에서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찾아가는 존재임을 세상이 기억해 준다면 좋겠다. 남들이 기대하는 대단한 극복 서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미 충분한 행복이 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내 삶의 결핍과 불편마저도 담담히 끌어안고, 그 속에서 잔잔하게 피어나는 행복을 누리는 것. 어쩌면 그게 바로 우리가 간절히 바라야 할, 가장 소중한 행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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