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라는 이름의 사랑
난 타인의 수고와 돌봄을 눈에 띄게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타인의 손길 덕분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씻고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이 모든 과정이 부담스럽지는 않다. 미안할 것도 없다. 고맙긴 하지만 채무감을 느끼진 않는다. 뻔뻔스러워서가 아니다. 나는 이런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중증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당당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돌봄의 대가를 국가에서 지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는 말은, 돌봄의 대가를 약속할 수 없는 모든 관계에서 채무감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 된다. 내가 어려서부터 입에 달고 산 말은 “죄송합니다”와 “고맙습니다”이다. 부탁을 청하는 시작의 말과 도움의 끝을 맺는 이 두 마디의 인사 없이는 생존하기 힘들었다. 누군가의 호의와 선의가 나에게는 필요하다. 최소한의 연민과 동정 따위라도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조건인 것이다.
장애인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행위. 그러니까 약하고 능력이 없는 자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을 종종 사랑이라는 단어로 대체하여 사용하고는 한다. 동의한다. 일종의 착한 마음이 없다면 도움을 주는 행위는 불가할 것이다. 그러나 간혹 사랑이라는 포장지를 뜯어보면, 예상했던 마음들이 아닌 것들이 들어 있음에 당혹스럽기도 하다.
그 안에는 이런 것들이 들어 있을 때도 있다. 교만함, 우월감, 과시, 자기만족, 통제욕까지.
교만함 : 너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나는 네가 못하는 것을 해줄 수 있어.
우월감 : 내가 너보다 나은 사람이니 널 불쌍히 여겨서 도와준다.
과시 : 내가 이렇게 좋은 사람인 걸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겠지?
자기만족 : 이런 선한 일도 할 줄 알다니. 난 멋진 사람이야.
통제욕 : 내가 이만큼 널 도와줬으니 넌 이보다 더 내 말을 따라야 해.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태도로, 눈빛으로, 나타나는 행동들로 도움의 행위가 이렇게 읽히는 때도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스스로를 사랑이라 포장한 행동들이 때때로 사랑의 본질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타인을 무능력하게 만들고, 자기 존재를 부각하는 일방적 호의는 사랑이 아니다. 상대의 약함을 강조하며 자기 자신을 높이는 일 역시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라 부를 수 없다. 진정한 사랑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만족시키려는 자기중심적 동기에서 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고 해서, 모든 도움과 호의를 의심하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는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수없이 도움받고 도움을 청하는 삶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섬세한 감각이 생긴다.
내가 발견한 사랑은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 안에는 드러내려는 욕구도, 상대를 조종하려는 마음도 없다. 그저 내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있었다. 도움을 주되 결코 자신을 강조하지 않고, 도와준다는 생각보다는 함께한다는 감각이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그런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나의 약함과 무능함을 부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끊임없이 일깨워 주었다.
이러한 사랑은 관계 속에서만 느낄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나를 돌보면서도 나에게서 받는 무언가가 있다고 말한다. 때로 그것은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순간일 수도 있고, 내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에서 받는 감동일 수도 있다. 그들은 도움을 제공하는 행위를 일방적 시혜가 아닌 쌍방향의 관계라고 표현한다. 내가 존재하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결국 진정한 사랑은 돕는 사람과 도움받는 사람의 경계를 지워 버린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관계 안에서 모두는 주고받음을 경험하고,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가 된다. 장애가 있든 없든, 도움을 주든 받든, 진정한 사랑 안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존재로 존중받는다. 나 역시 나의 약함을 받아들이면서도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곁의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가고 있다. 이렇게 살아가는 일이 내게 허락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