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없어도 감사한 것
나에게는 함께 존재하는 것만으로 위안을 주는 친구들이 있다. 눈빛과 목소리만으로도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하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같은 병을 공유하고 있는 근육병 장애를 가진 청년들이다. 나는 지금 이 청년근육병 자조모임을 시작한 지 올해로 8년째이다. 점점 갈수록 이 모임에 대한 마음도 커져가고 있다.
시기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닮아간다. 우리는 몸 전체의 근육이 점점 쇠퇴하는 병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주요 사인은 폐의 근육이 멈추는 것에 있다. 언제 그날이 올진 아무도 장담 못한다. 그저 하루하루를 만끽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랄까?
근육장애인들은 희귀 질환에 속한다. 따라서 같은 장애인의 세계 안에서도 결이 다른 고민과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생과 사를 오고 가는 하루들 속에, 어찌 보면 더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을 우리들이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삶의 끝에서, 그리고 빈번하게 찾아오는 몸기능의 쇠퇴에 굴하지 않고 살아내려면 의료적 전쟁과 마음의 전쟁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런 면에서 서로 참 좋은 전우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모임에 소속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힘든 순간도 있었다.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 나는 나만의 또 다른 전쟁을 치르느라 애를 먹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나와 다른 친구들을 비롯한 형누나 동생들 간의 차이점만 부각되어 보였다. 정확히는 내가 받지 못한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나에게는 없는 걸 그들이 가졌다는 이유가 내 마음을 쓰리게 했다.
우리는 일 년에 한 번 정기모임을 한다. 그럴 때면 전국 각지에서 매년 30여 명이 넘는 근육장애 청년들이 모인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니와 장거리 이동에는 많은 준비와 혹시 모를 상황에서의 능숙한 대처가 필요하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 부모님과 동행한다. 각자의 몸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이틀을 그렇게 함께 지낸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부모님들이 이들에게 어떻게 대해 주시는지 보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들 딸들의 표정만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차리는 건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몸이 불편하기에 발생하는 수많은 요구와 자식의 의도치 않은 짜증들까지도 묵묵히 부모라는 이름으로 받아내시는 모습들을 목격하게 된다.
물론 어느 부모가, 그것도 아픈 자식을 둔 부모가 그렇지 않겠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부모도 있다. 내 부모처럼 말이다. 내 엄마, 아빠를 이 글에서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 찌질한 마음을 고백하려는 것뿐이다. 어쨌든 나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그 시간들을 버텨냈다. 질투라는 놈에 내가 휘둘리지 말기를. 결핍이라는 종양에 대항하기를 빌면서 말이다.
한때는 이런 내 볼품없는 시기심이 튀어나올까 두려웠다. 그러다 차츰 시간이 흐르고 이 찌질한 마음들이 희석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모순적이게도 이들과 깊이 관계 맺을수록 그런 부모님이 곁에 계셔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부모님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헌신이 그들의 삶을 단 하루라도 더 행복하고 심지어 건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삶들이 감사하게도 내 눈앞에 찾아왔다는 생각을 하니 질투가 헛것이 되었다. 이 소중하고 값진 생명들이 또 나의 오늘 하루를 살게 한다는 빚진 마음으로 결핍의 구멍이 채워진 것이다. 정말 살아줘서 고마운 친구들이다. 그런 빛나는 삶을 바라보는 것 자체로도 이제는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불행의 과거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행복을 선사한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