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좇으며 사랑을 잃어버린 우리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기치로 삼고 살아간다. 심지어 헌법의 조항에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나 또한 그렇다. 행복하게, 그리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행복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너무도 많다. 행복을 좇으려 하면 할수록, 사랑을 하려 하면 할수록 그것들이 내 곁에서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이런 의문을 품는다. 혹시 행복을 마치 지금은 없는 것, 내가 성취해야만 얻을 수 있는 어떤 미래의 성과처럼 여겨왔던 것은 아닐까.
때로는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작은 불행마저 더 크게 느끼게 한다. 웃지 않는 날은 실패한 날 같고, 잠시라도 우울하면 인생 전체가 불행해진 듯 무겁게 짓누른다. 행복은 마치 당장 잡아야 할 과제 같고,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시험지 같았다. 그런데 막상 내가 바랐던 행복의 형태를 하나하나 벗겨보면 그것이 진짜가 아님을 자주 깨닫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행복을 잘못 배워왔다. 드라마나 광고, 성공한 사람들의 전기를 보면서 행복은 일정한 답안지가 있는 것처럼 착각해 왔다.
그 답안지를 떠올려 보면 언제나 따라붙는 말이 있다. “남 부럽지 않은.” 남 부럽지 않은 집, 남 부럽지 않은 직업, 남 부럽지 않은 배우자.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남 부럽지 않을 자원을 충분히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 사회의 시작선부터 불평등하게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설령 남들이 부러워할 조건을 갖춘 이들이 있다 해도, 그들 역시 불행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화려한 겉모습 뒤에 가려진 고독과 상실, 때로는 치명적인 비극까지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결국 ‘남 부럽지 않음’이란 기준은 허상에 가깝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려 애쓰며 불행을 키운다. 없는 것을 탐하는 순간 불행은 커지고, 그 불행은 시기와 질투로 이어진다. 질투는 다시금 내 마음의 여백을 차지하고, 그 자리에 사랑이 들어올 자리를 없애 버린다. 행복을 좇겠다는 욕망이 도리어 사랑을 앗아가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행복에 집착할수록 불행이 깊어지고, 불행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린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불러오는 씨앗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내 곁에 있는 사람과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아주 사소한 순간에 나는 행복을 느낀다. 누군가를 위로하려 내민 손길이 오히려 나를 위로할 때가 있었고, 기꺼이 곁에 있어주려는 마음이 나를 살게 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행복이 먼저 오는 게 아니라, 사랑이 먼저일 때 행복이 따라온다는 것을. 그러나 사랑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또 행복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웃을 수 없는데 어찌 그 사랑이 온전히 자랄 수 있겠는가. 행복과 사랑은 서로를 필요로 하며, 서로를 북돋아주는 관계에 있다.
이제는 행복을 멀리 있는 목표처럼 여기지 않으려 한다. 나를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늘 주어진 작은 기쁨을 기꺼이 누리려 한다. 행복은 거창한 성취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곁의 관계와 내가 주고받는 사랑 속에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태도이고, 사랑은 그 태도를 지켜주는 힘이다.
사랑을 하면 행복하다. 그러나 동시에 행복하면 우리는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사랑과 행복은 서로를 잇는 다리이자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가 그 다리를 놓고, 그 거울을 마주할 때 비로소 삶은 온전해진다. 그러니 나는 다시 이렇게 고백한다. 나에게 주어진 삶이 크든 작든, 화려하든 평범하든, 사랑이 있는 순간마다 행복은 이미 내 곁에 와 있었다. 그리고 행복이 마음을 채울 때, 나는 더욱 사랑할 수 있었다. 결국 사랑과 행복은 둘이 아니라 하나였고, 그 하나가 내 삶을 단단히 붙들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