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친절하지 않은 미소

친절이 친절이 되려면

by 작은인간

카페에 앉아 달달한 바닐라라테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역시 일하는 중에 마시는 아이스커피는 뭘 먹어도 맛있다. 내담자분과의 상담이 끝나고 나는 남은 커피를 마시며 잠시 월급루팡을 하고 있었다. 활동지원사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여름날 오후의 그 여유로움에 틈을 비집고 어떤 한 사람이 날 방해했다.


어떤 중년 남자였다. 조심스럽게 다가온 것도 아니었다. 세상 인자한 얼굴을 하고는, 마치 내가 그 인사를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그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내 얼굴 바로 앞까지 고개를 들이밀었다. 자칫 숨을 잘못 쉬면 입냄새가 느껴질 거리였다. 몸을 피할 수도, 고개를 돌릴 수도 없는 상태에서 그의 손이 내 어깨에 올랐다. 그리고 말했다.


맛있는 거 먹네. 맛있게 먹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깨닫기엔 너무 순식간이었고, 말할 틈조차 없었다. 그가 내게 말을 걸기 전, 그 어떤 사전 동의도 없었다. 활동지원사가 화장실에 간 바로 그 시간, 낯선 남자는 불쑥 다가와 나의 공간을 침범했다.


그는 왜 그렇게 말한 걸까.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다가온 걸까. 별다른 이유도, 명확한 목적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단순한 인사로 넘기기엔 그의 거리는 너무 가까웠고, 손길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반복했다. 왜 이런 일이 또 일어나는 걸까. 왜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은 늘 이렇게 다정한 얼굴을 하고 나타나는 걸까.


이런 일은 개인의 성격이나 우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장애인을 낯설고, 설명이 필요한 존재로 바라본다. ‘혼자 있는 장애인’은 그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안쓰러움을 불러일으키거나, 때로는 ‘내가 뭔가 해줘야 할’ 대상으로 보인다. 그러니 휠체어에 앉아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은, 누군가에겐 가만히 두기보다 말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허락 없이 손을 얹어도 된다는 신호처럼 읽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냥 인사한 거잖아.” “선을 넘은 것도 아닌데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그 ‘선(善, kindness)’은 누구의 기준일까. 그 ‘친절’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리고 나는 왜, 매번 그 친절의 수신자가 되어야만 할까.


나는 36년째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을 아직도 겪고 있다. 누군가의 친절이 타인의 동의 없이 건너온다면, 그것은 더 이상 친절이 아니다. 오히려 내 감정을 지우고, 내가 느낀 불쾌를 ‘예민함’으로 몰아가며, 나를 다시 대상화한다.


커피는 식었다. 내 마음도 식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다시 나를 다독인다. ‘괜찮아, 또 희한한 사람 만난 거야.’ ‘네 잘못은 아니야. 너는 그걸 감내할 이유가 없어.’ 그렇게 혼잣말을 반복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쯤은 이제 내게 별일 아니다. 하지만 그 ‘희한한 일’이 반복될수록, 나는 내 일상에 더 많은 경계를 나도 모르게 쌓게 된다. 누군가 말을 걸어오기 전에 움찔하게 되고, 잠깐 혼자 남겨진 시간조차 긴장하게 된다. 그건 단지 그날의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축적 때문이다.




우리가 나누는 모든 다정함이 진짜 다정해지기 위해서는, 그 다정함을 허락할 자유가 상대에게도 있어야 한다. 그 자유를 묻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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