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 올해도.
어느새 일 년이라는 시간의 마침표가 다가오고 있어. 부푼 마음, 두려운 마음, 설레는 마음, 그저 그런 마음들까지. 네 안의 셀 수 없는 마음들을 들고 2025년을 시작했겠지? 그리고 지금의 넌 아마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마음들로 2026년을 맞이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혹시 연말이 되면 언제나 후회만 가득하진 않았니? 조금 더 노력할걸. 조금 더 사랑할걸. 이런 후회들 말이야. 그 붙잡을 수 없는 돌이킴이 매번 우리의 12월을 힘들게 한 거 같아. 아무렇지 않다가도 괜스레 허전하고, 지난달과 다르지 않은 보통의 날인데도 유독. 이 달력의 끝에서 우리는 더 우울해한 것 같아.
잘했어. 고생했어. 잘 버텼어. 이런 말이 무용하게 느껴지고 거짓 같아 보이더라도 한 번 더 말해줄래. 넌 올해 정말 최선을 다했고 잘 살아내 줘서 고마워. 너의 그 후회도 어쩌면 네가 잘 살아냈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잘 버텨온 자만이 더 나아가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도 있을 듯해.
도망가고 싶었고, 다 놓아 버리고 싶었던 순간들도 있었다는 거 알아. 그리고 실제로 그 자리를 떠나기도 했겠지. 그런데 말이야. 너의 그 모든 선택은 그 누구보다 너를 위한 결정이었음을 믿어. 어쨌든 우리는 이곳에 존재하고, 삶을 살아가고 있잖아. 우리는 매일이라는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는 중이야.
사실 우리는, 언제나 조금은 부족한 상태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존재인지도 몰라. 완벽하게 후회 없는 12월을 맞이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거야. 올해를 잘 살아낸 너에게 필요한 건 ‘다음에는 더 잘할게요’라는 다짐보다, ‘올해의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겠어요’라는 고백일지도 몰라. 조금 모자라고, 조금 넘치고, 가끔은 엉망이었던 그 모습까지 포함해서 말이야.
올해의 너는 어땠니?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잠들었던 밤도 있었을 거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났던 날도 있었겠지. 별것 아닌 말에 상처받고, 별것 아닌 일에 지나치게 애썼던 날도 있었을 거야.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모든 날을 통과한 너라는 사람이 지금 여기까지 온 거야. 실패와 실수와 민망했던 기억까지 전부 가져온 채로.
올해 네가 흘린 눈물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버텨낸 날들이 단지 시간이 지나갔다는 뜻만은 아니었으면 해. 그 눈물과 버팀 속에서 너는 분명히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었을 거야. 사람을 잃는다는 게 무엇인지, 나를 지킨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밤이 필요한지 같은 것들 말이야. 그런 배움들은 눈에 잘 띄지 않아서 그렇지, 천천히 너의 삶의 모양을 바꾸고 있을 거야.
혹시 올해도 사랑 앞에서 유난히 초라했다고 느끼더라도, 그 마음마저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누군가를 향해 가슴이 뛰었던 순간, 감히 사랑을 꿈꾸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넌 이미 참 용감한 사람이야. 사랑이 꼭 해피엔딩으로 끝나야만 의미 있는 건 아니잖아. 네가 붙잡았던 그 마음, 상처받을 줄 알면서도 한 번쯤 마음을 건네고 싶었던 그 충동 자체가 너라는 사람의 깊이를 말해 주는 거니까.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새로운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해지지만, 사실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올해의 나를 애도하고 축하해 주는 시간이 아닐까. 잘 떠나보내야 새로 맞이할 수 있으니까. 애써 외면했던 상처가 있다면 살며시 꺼내어 한번 쓰다듬어 주고, 끝내 이루지 못한 꿈들이 있다면 ‘그래도 잘 버텼다’고 한 번쯤 말해 줘. 떠나보내지 못한 감정들이 구석구석 쌓여 있으면, 새해의 첫걸음이 더 무거워질 테니까.
그러니 오늘만큼은 이 한 해를 함께 통과한 나와 너에게, 작은 축배를 들어주었으면 좋겠어.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타인이 보기엔 별것 아닌 삶처럼 보여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냈어. 사랑하려 애쓰고, 상처 입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고, 그래도 다시 마음을 열어 보려고 애쓴 한 해였잖아.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올해의 우리는 충분히 잘 해냈다고 말해도 괜찮아.
연말의 나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을 그대에게. 부디 이번 12월은 끝이 아니라, 잘 살아낸 하루들을 조용히 쓰다듬어 주는 시간이 되기를. 스스로를 조금만 덜 미워하고,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봐 주기를. 우리가 만들어 낸 이 서툰 1년이, 내년의 우리를 또 한 번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 줄 거라고 나는 믿어. 그러니 이 한마디만은 꼭 기억해 줘.
올해의 너, 정말 수고 많았어. 그리고 내년의 너도, 분명히 잘 살아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