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 사랑이라는 무대에 오르도록

by 작은인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상처받을 마음까지 안고 가는 것이다. 더 이상 상대를 사랑하지 못할 그 순간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내 곁에 없는 그 순간까지 멀리서 그 존재를 온 마음을 다하여 끌어안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내게 너무 아프기만 한 사랑은 위와 같은 교훈을 남겨 주었다. 사랑의 시작과 동시에 난 늘 이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절을 준비해야만 했다. 내 장애는 날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때마다 나는 먼저 끝을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고백하기 전부터 차이는 연습을 하고, 손을 잡기 전부터 손을 놓는 연습을 했다. 같이 걷지 못하는 몸,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상, 예측할 수 없는 건강 상태까지. 내게 붙은 조건들은 상대에게 짐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러니 시작도 하기 전에 ‘어차피 안 될 거야’라고 중얼거렸고, 고백하기까지 수일이 걸렸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수십 번의 이별을 치르고 나면 실제 이별은 덜 아플 줄 알았다. 미리 맞은 예방주사 같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의 이별은 한 번뿐인데, 나는 그 한 번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혼자 수십 번의 이별을 반복해서 겪고 있었다. 상처를 피하려다가 오히려 상처의 총량을 스스로 키우고 있었던 셈이다. 내 장애가 내 삶에 남긴 흔적은 이동의 제약만이 아니라, 사랑을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자체를 줄여 버린 두려움이었다.


돌이켜 보면, 이건 나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가 자라면서 배운 사랑의 장면들은 대부분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드라마 속 연인들은 건강하고, 부지런히 돈을 벌고, 두 다리로 어디든 함께 걸어 나간다. 광고 속 사랑은 늘 여행하고, 뛰고, 춤춘다. 결혼식장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도 거의 비슷한 몸, 비슷한 인생 궤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픈 몸, 불안정한 직업, 서로 돌봄이 필요한 관계는 사랑의 무대 바깥으로 밀려난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사랑을 떠올리면 그 익숙한 틀 안에서만 상상하게 되었다. 그 틀에서 나는 늘 ‘예외’가 되고 만다. 상대를 힘들게 할 사람, 오래가지 못할 관계,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편이 모두에게 이로울 것 같은 존재. 사회가 좁게 그려 놓은 사랑의 그림 안에서 나를 끼워 맞추려다 보니, 결국 사랑보다 죄책감이 먼저 찾아왔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상상력이 꼭 한 가지 모양일 필요는 없다는 걸 믿으며 살고 싶다. 누군가는 휠체어를 민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병원에 함께 가 준다는 이유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서로의 속도 차이 때문에 자주 멈춰 서야 하는 사랑,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기에 더 자주 나누어 먹고 서로의 필요를 계산하는 사랑, 언젠가 함께 보낼 시간이 길지 않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기에 오늘의 웃음을 더 귀하게 붙들어 보는 사랑도 존재할 수 있다.


사랑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결국 다양한 삶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과 같다. 건강하고 젊고 효율적인 사람들만이 아니라, 숨이 차고 아프고 느린 사람들도 사랑의 장면 한가운데 설 수 있어야 한다. 나 역시 그 무대의 가장자리에서 미리 퇴장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붙들며 살아간다. 언젠가 누군가와 함께 우리만의 속도와 모양을 가진 사랑을 끝까지 상상해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상상력이 자라날수록, 내 안에서 사랑을 향한 두려움이 조금씩 줄어들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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