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마주한 행복의 총량

타인을 위한 기쁨

by 작은인간
# Scene 1.

운이 좋게도 좋은 병실을 배정받았다. 며칠 전, 나는 병원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평소 같으면 병원 가는 것이 귀찮고 도망가고 싶었을 테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연말에 몰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힘들었던 나는, 이번 병원행이 오히려 쉼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두 번 가는 병원이 아니기에 능숙하게 짐을 꾸리고, 지루하지 않은 침상 생활을 보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갈 때마다 병원에서는 병실이 없다며 1인실을 내주고는 하였다. 그런데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누군가는 1인실이 더 좋지 않냐며 물을 것이다. 그러나 월급의 4분의 1이 넘는 금액을 하룻밤에 태우기에는 내가 넉넉지 못하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4인실로 배정받았다. 의료급여를 받는 나는 4인실부터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병실 신세를 질 수 있다.


내가 간 병실에는 이미 그곳이 본인들의 집인양 지내시던 분들이 계셨다. 이번에도 내가 가장 어려 보였고 병실에 들어서자 반갑다며─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입원을 반가워한다는 게 약간은 이상하다.─ 다가오시는 분도 계셨다. 난 어차피 주기적으로 하는 검사 몇 가지만 하고 내일 퇴원할 예정이다. 그래서 조용히 있다가 갈 작정이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았다. 무례하지 않을 정도의 반응과 인사를 건넨 뒤, 침실 커튼을 쳐 내 공간을 수호했다.


병실이 늦게 자리가 나서 느지막한 오후쯤에 입원을 했다. 여러 검사를 받았어야 했는데, 검사를 담당하는 의료진들도 퇴근이 임박한 시간이었다. 병동 간호사실이 분주해 보였다. 어떻게든 빨리 이 검사를 받아야 다음날 나의 퇴원 시간이 당겨지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간호사님들의 수고로 어찌어찌 검사를 무사히 잘 받고 다음날 퇴원도 예정된 시간에 할 수 있었다.


# Scene 2.

검사를 받으려 대기 중이었다. 저 멀리 복도에서 어느 간호사 분과 환자 분이 따로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두 분은 손을 맞잡은 채 서로를 아주 많이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잘 알 수는 없으나 서로는 이미 많은 시간 병원에서 함께 했음이 느껴졌다. 난 그 모습이 생경해서 허락 없이 타인의 모습을 넋 놓게 보게 되는 무례를 범했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난 그 모습이 왜 신기했을까. 아니, 그것을 넘어 아름답게 보였다. 왜지?


# Scene 3.

검사를 받고 퇴원 준비를 위해 병실로 돌아왔다. 병실이 분주해 보였다. 실은 병실로 돌아오는 복도 끝부터 큰 소리가 났었는데, 그게 우리 병실일 줄은 몰랐다. 그 소리의 출처는 내 침상 맞은편 할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몹시 화가 나 계셨고, 간호사님과 실랑이 중이었다.


이번에도 남의 말을 엿듣는 무례를 범하게 되었는데, 내막은 이랬다(난 지금도 남의 예민할 수 있는 이야기를 동의 없이 공개하는 무례를 범하는 중이다.). 1시간이 멀다 하고 자주 찾아와 혈당을 검사해서 온전한 쉼을 못 누린 할아버지가 실습 간호사에게 역정을 내셨고, 이에 베테랑 간호사가 와서 중재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나름 두 입장이 다 이해가 갔다.


어찌 됐던 그 베테랑 간호사는 나름의 상황 설명을 하고 있었고, 언쟁이 있었지만 잠깐의 소동으로 그쳤다. 간호사님은 단호하지만 분명하게 이 일은 '환자를 위해 해야 할 일'이라는 설명과 함께 이 소란을 잠재웠다.


# ending

어디선가 이런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한 사람이 자기 삶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일이 존경받으려면, 그 포기가 세상 행복의 총량을 조금이라도 키울 때만 의미가 있다고. 자기만의 구원을 위해 견디는 고행은 대단해 보일 수는 있어도, 모두가 따라야 할 모범은 되지 못한다고 했다.


병원에서 본 장면들이 자꾸 그 말을 떠올리게 했다. 복도 끝에서 손을 맞잡고 서 있던 간호사와 환자는, 서로의 하루를 조금 덜 아프게 만들기 위해 시간을 내어주고 있었다. 내 맞은편 침상에서 화를 터뜨리던 할아버지와 그 소란을 끌어안던 베테랑 간호사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쉼과 안전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누군가는 혈당을 재기 위해 자신의 피곤을 내어놓고, 또 누군가는 그 자주 울리는 알람 속에서 남은 잠이라도 붙잡으려 몸부림쳤다.


생각해 보면 이 병실도, 병동의 긴 복도도, 그런 작은 포기들로 굴러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근무표, 누군가의 수면, 누군가의 자존심이 조금씩 깎여 나가는 대신, 다른 누군가의 숨이 덜 가빠지고, 통증이 덜 날카로워지는 밤이 만들어진다. 그 합이 아주 크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없음’보다는 조금 더 나은 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아마 사랑을 산다는 건 이런 것일지 모른다. 내가 견딘 고생을 과장해 보여주는 대신, 오늘 누군가의 시간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일. 내 피로와 서운함을 완전히 지워버리지는 못하더라도, 그 너머에 있는 타인의 안녕을 함께 계산하는 일. 그날 병실에서 본 사람들은, 거창한 이름 없이도 그런 사랑을 이미 몸으로 살아내고 있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식으로 기여하는 하루를, 조용히 한 장면씩 쌓아가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