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의 시간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외로움이 범벅된 곳이다. 나는 사람들과 나란히 발맞추고 싶지만, 내 걸음은 항상 느리다. 내 인생에 주어진 시계는 다른 이들의 시간보다 천천히 흐른다. 늘 뒤에서 쫓아가는 인생, 다름 아닌 불구의 몸을 가진 내가 살아내야 할 삶이다. 불구한 몸으로 겪는 불구의 시간은, 나를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로 밀어냈다.
불구. 아닐 부(不)에 갖출 구(具)를 쓰는 한자어. 이것은 나를 나타내는 단어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은 그 뜻이 현대 장애 정의와 맞지 않아 혐오 표현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그 뜻에 대한 감각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 세상의 시선에서 나는 그저 손과 발을 갖추지 아니한 자다. 그들의 속도에 발맞출 손과 발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불구의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수없이 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쳐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닐 부(不)에 잡을 구(拘).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거리끼지 않고 나아가겠다는 말이다. 나는 오래도록 이 말을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주문처럼 사용했다. 불구한 몸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더라도 불구하고, 남들만큼 해내지 못해도 불구하고. 나는 내 불구의 몸에 얽매이기 싫었다. 세상의 속도에 따라가려 외친 ‘불구하고’는 점점 나를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근육에 힘이 없는 병을 가진 나는 늘 몸의 상태와 협상하며 살아왔다. 오늘은 어디까지 가능한지, 무엇을 포기해야 하루가 무너지지 않는지. 그러나 나는 그 협상을 자주 배신했다. 나의 느리기만 한 시간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말로, 앞으로만 나아가려 했다. 몸이 제 아무리 위험하다는 적신호를 보내도 말이다. 그렇게 외친 ‘불구하고’는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족쇄였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제 자리였다. 왜 나만 이리 어렵기만 한지. 도대체 어떻게 뭘 더 해야 하는지. 묶인 발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허공에 외치는 대답 없는 질문들 뿐이었다.
어렵기만 한 내 인생에 수많은 의문이 스쳐 가며, 결국 한 질문에 다다랐다. 이 시간을 이겨내야 할까? 아니면 이해해야 할까? 그 질문은 나를 다른 사람들 곁으로 데려갔다. 나와 비슷한 몸, 비슷한 속도로 살아온 이들, 혹은 전혀 다른 결핍을 안고 각자의 시간을 견뎌온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되었다. 불구의 시간은 나만의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나 세상의 속도와 어긋나는 지점이 있고,
그 지점에서 사람은 혼자가 되기 쉽다는 것을.
나와 비슷한 시계를 가진 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생각지도 못하게 얻은 두 가지 정체성 때문이었다. 하나의 정체성, 나는 장애 인권 활동가다. 장애 인권 운동의 현장에서 나는 그 어긋남이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배웠다. 느린 몸이 문제가 아니라, 느림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가 문제인 것이었다. 반복되는 요구와 좀처럼 바뀌지 않는 제도 속에서도 동지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 당장 달라지지 않더라도, 이 시간을 함께 버티자는 약속을 했다. 그 느린 싸움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시간이 부정당하지 않는 경험을 했다.
또 하나의 정체성, 나는 동료상담가다. 장애인 동료분들을 만나 상담을 시작하며, 불구의 시간은 또 다른 의미를 얻었다. 내가 하는 상담은 빠른 결론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누군가는 한참을 침묵한다. 그 고요함 앞에서 나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내 삶이 이미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각자의 속도로만 온전히 자신에게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살아온 느린 시간들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기다릴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외로움은 여전히 내 삶에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외로움에 붙잡히지 않는다. 나와 비슷한 속도로 살아온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깨달았다.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면서도, 완전히 혼자가 되지는 않게 하는 삶이야 말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세상의 속도라는 것을, 이 속도는 다름 아닌 연대의 가치로 가능하다. 연대란 함께 달리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곁을 내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불구(不具)한 몸으로 겪는 불구의 시간은 여전히 나를 세상의 가장자리에 머물게 한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 시간에 붙잡히지 않으려 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부정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 태도. 이것이 내가 살아내야 할 시간이다.
불구(不拘)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지우며 버티는 말이 아니라, 내게 허락된 여러 조건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선언이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다양한 시간을 가진 이들 곁에 남아 있다.
이 글이 장애 당사자를 비롯한 느린 몸으로 살아서 외로운 사람들에게 가닿길 바랍니다.
더불어 장애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이 궁금한 비장애인 독자분들에게도 유익한 글이길 바랍니다.
아니, 내 삶의 속도가 남들보다 느리다고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