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결핍을 나눠먹는 우리는 ‘식구’입니다
8월의 어느 날, 나는 대구에서 원주로 향했다. 나는 원주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더 들어갔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힘겹게 올라가 다 다른 곳. 이곳은 내 친구의 별장이다. 아니, 사실 그곳은 우리들을 위한 공간이다. 난 그 깊은 산골에 적어도 1년에 4번은 방문한다. 210km를 약 4~5시간을 달려가더라도 기쁜 이곳은 나의 아지트다.
그곳에 가면 나는 잠시 내가 휠체어를 탄다는 사실을 잊는다. 화장실, 부엌, 마당, 별채인 컨테이너까지. 내가 못 가는 곳이 없다. 덜컹거리는 턱도, 좁은 문도 없는 곳. 그야말로 온 공간이 나를 반겨주는 곳이다. 우리는 종종 모인다. 새해면 새해라는 핑계로, 더우면 덥다는 이유로, 누구의 생일이라는 변명으로. 서울, 경기도 이천과 포천, 내가 사는 대구까지. 전국 곳곳에서 모인다. 모일 때마다 인원과 구성원은 다양하지만, 늘 발(아, 난 휠체어 바퀴) 디딜 틈 없이 북적인다.
우리는 청년 근육장애인 자조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몸의 근육에 힘이 서서히 혹은 급작스레 빠진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임의 명칭은 ‘청년디딤돌’. 줄여서 디딤돌이라고 부른다. 나이는 각자 다르지만, 함께 많은 것을 공유하는 사이다. 가끔 어이없는 농담도 주고받으며, 사랑 얘기에 호들갑을 떠는, 그리고 무엇보다 구태여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받는 그런 관계다. 그러나 아쉽게도 몸의 특성 때문에 자주 얼굴을 보기 어렵다. 다행히 가끔이라도 여러 대의 휠체어 군단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우리는 부지런히 움직인다.
다시 8월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날 대략 우리 회원은 10명쯤이었다. 그들의 가족, 동반인들까지 합치면 족히 30명은 돼 보였다. 그 펜션은 이 인원이 다 들어차도 충분한 너비다. 오후 1시가 되자 거의 모든 인원이 모였고, 긴 테이블 두 개를 합쳐 앉았다. 테트리스 하듯 휠체어를 요리조리 움직여 앉으면 이제 오늘의 메뉴가 나온다. 주방에서 어머니들이 우리를 생각하시며 요리하신 그릇들이 하나둘 배달된다. ‘자, 다들 준비해’라는 신호와 함께 우리는 왁자지껄 하던 소리를 잠시 멈추고 말 대신 입속에서 침샘이 나온다.
그날의 메뉴는 족발. 족발이 뭐 특별할 게 있겠냐만 발갛게 무친 달래가 얹어졌었다. 이제 먹는다. 족발을 접시에 덜어 그 위에 달래 무침을 살포시 올린다. 한입 가득 넣어 맛을 음미하다 보면 재밌는 세계가 펼쳐진다. 족발의 쫄깃함과 부드러움은 다들 아는 맛이리라.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고기의 느끼한 향이 코로 올라올 때쯤 달래의 알싸함과 양념의 매콤함이 그 향을 코팅하듯 감싼다는 것에 있다. 씹을 때마다 터지는 아삭거리는 소리도 여기에 더해지면 이제는 계속 포크질-난 젓가락을 못 쓴다-을 할 수밖에.
사실, 무엇을 먹든 맛에 있어서 실패한 적은 없다. 함께 웃는 소리, 부딪히는 잔들의 경쾌함, 서로를 아끼는 마음들이 어우러진 식탁에서는 어떤 음식이 와도 맛있다. 우리의 병은 비슷하지만, 다른 면도 많아서 식탁 위에서 다양한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다. 씹는 힘이 아주 약한 친구는 모든 음식을 거의 다져서 먹는다. 또 대부분은 팔에 힘이 없어 먹여줘야 하는데, 난 이 장면을 애정한다. 부모님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자녀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따로 있다. 내 자식 네 자식 구분 없이 먹여줄 사람의 자리가 빌 세라 어느새 빈자리가 채워질 때이다. 그때 나는 우리가 의심의 여지없는 식구라는 것을 인식한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건, 결국 서로의 결핍마저 함께 소화하겠다는 약속과도 같으므로.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저녁이었다. 저녁 식사를 맛있게 하고 쉬고 있을 때쯤이었다. 거실의 불이 꺼진다. 저 멀리서 희미한 불빛들이 반짝이며 나에게 다가온다. 그 불빛은 따뜻했고 금세 촛불들의 어깨동무임을 알아챘다. 곧이어 들려오는 소리.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그렇다. 8월은 나의 생일이 있는 달이다. 나 몰래 친구들이 파티를 준비해 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케이크도 직접 만들어 주문한 것이었다. 나를 생각하며 이 순간을 준비해 준 친구들을 생각하니 고마웠다. 그때 나는 일렁이는 촛불 너머로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내 삶이 결코 혼자가 아님을, 이토록 무해하고 다정한 사랑 속에 내가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달콤했던 케이크의 맛은 입안에서 녹아 사라졌지만, 그날의 온기는 여전히 내 안에 굳건히 남아 있다. 우리는 다시 각자의 치열한 삶의 터전으로 흩어졌다. 휠체어 바퀴가 턱에 걸리는 일상으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문조차 열기 힘든 현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언제든 210km를 달려가면 나를 있는 그대로 환대해 주는 공간과, 서로의 결핍을 기꺼이 나눠 짊어지는 나의 ‘식구’들이 그곳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8월의 원주는 끝났지만, 우리의 계절은 계속된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힘겹게 올라가야 마주할 수 있는 그 별장처럼, 굴곡진 우리 인생도 함께라면 꽤나 근사한 여행이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