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지의 순종 그것이 아니면 공황
우리 집안은 기독교 집안이다.
그 중에서도 보수적으로 유명한 장로교다.
어릴 적에는 주일(일요일)에 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율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그리고 자칫 돈을 사용하면 인생이 망하든 집안이 망하든 내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부모님도 성경에서 말하는 말씀을 어떻게 믿고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 잘 모르셨다.
그래서 때로는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말들을 철두철미하게 지켰고, 때로는 그 말씀을 어긴 뒤에 교인들과 목사님이 그것을 알지 못하도록 숨기셨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질색했던 것은 ‘폭력’이었다.
물리적 폭력이든, 언어로 된 폭력이든, 때로는 수치심을 자극하고 때로는 두려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나로 하여금 움츠러들게 만드는 정신적인 폭력이든, 어떤 폭력이든 나는 그것들을 두려워하고 혐오했으며, 때로는 폭력을 향한 공포심을 느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그 모든 폭력들이 상호 묵계 아래 허용 되었다.
‘자녀를 징계하라.’는 ‘남자는 여자의 머리’라는 성경 말씀의 띠를 둘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내면에 있던 야심, 수치, 두려움은 나를 향한 폭력이 되었다.
어머니의 내면에 있던 허영과 기만은 다양한 폭력이 되어 나 또한 허영과 기만으로 옷 입게 만들었다.
우리 가정에서 나는 목사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폭력들을 받아야만 했다.
그 폭력들이 내게 쏟아지는 것을 순종하는 어린양과 같은 마음으로 받아냈어야 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모든 잘못은 나 자신에게 있는 것 같았고,
부모님의 말씀을 들어보더라도 내가 잘못해서 매(매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 폭력)을 맞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부모님의 행위와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시되었다.
그래서 죄 많은 나는 늘 죄책감을 느꼈고, 죄책은 쉽게 공포로 탈바꿈했다.
나는 단지 물리적 고통에서 공포를 느꼈던 게 아니다.
요즘도 물리적 고통은 잘 참아내는 편이다.
나는 내 모든 세계가 흔들리는 것에서 공포를 느낀 것이다.
그래서 내가 존재하는 이 세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공포를 느끼지 않도록
내가 진정 원하지 않음에도 말씀을 따르고 부모님께 순종했던 것이다.
순전한 자기 의지는 사라져버린
주인에게 복종하는 겁먹은 당나귀가 되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