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해부
바로 오늘, 2개월의 신생아가 엄마 품에 안겨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영상을 보았다.
생각이 많은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이가 엄마를 신뢰하지 못하고, 1미터가 넘는 깊은 물속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분명 공황에 휩싸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기는 편안하다. 엄마가 자신을 물속으로 내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는 고민 따위는 일절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고민을 시작한다면, 고민을 시작하는 그 순간 아무리 엄마를 믿으려 노력해 봐도 잘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몸이 이미 물에 잠겨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물속은 아기에게 지옥이 된다.
하지만 물속이 아기에게 지옥이 아닌 이유는, 아기는 팔과 다리로 물을 느끼고, 엄마를 향해 헤엄쳐 나가기 때문이다. 엄마가 자신을 내칠지 아닐지에 대한 의식은 분자의 크기만큼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내 세계는 애초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어디서 어떻게 무너졌느냐 따져보면,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하나하나 꺼내기도,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도 주요한 것은 몇 개 알고 있으니 꺼내보겠다.
우선 불안정적인 가족관계였다.
우리 가족 분위기는 평온함, 평범함과 같은 기본적인 단계가 없었다. 공포스런 분위기가 맴돌거나 실제로 공포스런 일이 벌어지거나, 그래서 긴장상태에 있거나, 아니면 웃고 떠들고 노래하며 화기애애했다.(그 화기애애한 가운데서도 화목이 어느 한 순간 박살나버릴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늘 불안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부모님이 서로 죽고 죽이겠다고 칼을 붙들고, 나보고 집을 나가라고 하고, 우리 집안은 망해버려서 수치를 당할 것이라 하는 그 모든 것들이 나의 공포의 원흉이다. 차라리 물리적으로 고통을 당했다면, 그 물리적 고통만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과 가정은 나의 모든 것이었고, 나의 세계였다.
그리고 그 세계는 매일 매순간 바퀴가 언제 빠질지 모르는 리어카처럼 덜커덕 거렸다.
나는 걸핏하면 내 존재가 녹아버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내가 안전히 발을 디디고 서 있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살아왔다. 엄마의 자살을 목격하기까지.
정신과에 가서 심리상담을 받아보면서 내가 얼마나 역기능적인 가정 안에서 흔들려 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노력해왔던 것이 ‘개별분리화’였다.
개별분리화란 나의 정체성이, 정서적 상태가 가족에게 의존적으로 영향 받지 않을 수 있는 훈련이었다. 가족 내에서도 나는 한 객체로서 독립된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그 훈련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내 안에 배배 꼬인 종교적 교리, 나의 뒤틀린 신앙
그리고 그로 인한 공포를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