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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루이스 Jan 01. 2020

비난의 심리학

그들은 도대체 왜 비난을 일삼는가

우리 주위에는 툭하면 타인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때때로 능청맞은 척 놀리기도 하며, 똑똑한 척 평가하기도 하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척 정죄하기도 하지요. 놀리는 말이든, 평가하는 말이든, 정죄하는 말이든 다 듣기 좋은 말은 아닙니다. 행간에는 ‘남에 말에 상처받지 말라’는 말이 있지요.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내 얼굴이든 내 인터넷 아이디든 내게 비난하는 사람들에 말에 동요되지 않기란 참 어렵습니다. 아무리 무시 하려고 해도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비난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왜 그들이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하는지 알게 되신다면, 여러분이 전부터 받아왔던 상처가 덜 쑤시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은 불쌍한 사람들

그래서 오늘은 비난하는 사람들이 왜 불쌍한지, 그들의 심리를 적당히 정리해보려 합니다. 물론 이 글이 모두에게 적용되고 모든 상황에 다 맞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혜로운 여러분께서 일상 가운데 적절히 적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참고로 이 글은 비난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이게 그런 글이라면 저는 지금 제 얼굴에 침을 뱉고 있는 것이니까요. (제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쓰는 글입니다.) 이 글은 비난받는 사람들을 위해 쓰는 글이지만, 평소 습관적으로 남들을 비난하지만 더 이상은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쓰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부디 이 글의 내용을 가지고 역으로 타인을 공격하는 일은 삼가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을 믿습니다. 자, 시작하지요.



건강한 정서를 지닌 사람은 웬만해선 남을 비난할 이유가 없습니다. 타인을 비난하지 않고서도 내면의 안정이 충분히 잡혀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비난함과 오디션장의 심사위원 평가가 다르다는 것은 잘 아시리라 봅니다. 가끔 심사위원으로 나와서 평가가 아닌 비난을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서도요.) 남을 비난하는 사람은 그 반대입니다. 건강한 정서를 지니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누군가에게 기대야 서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기대는 방법을 남을 비난함으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보지요.


한 아이의 불행한 어린 시절

한 번 어린아이를 떠올려 봅시다. 이 아이는 마음에 상처가 많습니다. 늘 부모님에게 혼나고 맞는 것이 일상이었지요.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전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표현했지만, 부모님은 아이의 말을 들어주기커녕 조용히 하라며 호되게 야단을 쳤습니다. 아이는 불안정한 존재가 되어 버렸고, 스스로 평온히 있는 법을 전혀 몰랐지요. 늘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붙잡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자신이 의존하는 것에 중독되어 버리게 된 것이지요.


위의 아이는 성인이 되고 여러 사람들을 사귀게 됩니다. 사람들과의 교제 가운데 그 사람은 늘 불안감을 느낍니다.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듯 하는 느낌, 인정받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부끄러운(수치스러운) 느낌말입니다. 자신이 수치스러운 그는 (보통은 이 느낌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수치심은 이미 다른 감정으로 대체되어 오랫동안 자리 잡아왔기 때문입니다.) 남들과 있을 때 타인을 통해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의존합니다. 타인에게 기대어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고 인정하지 않고서는 가만히 있을  없을 정도로 안정적이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사람은 어떻게든 비난할 거리를 찾아냅니다. 친구가 자신보다 키가 작지는 않은지, 옷을 못 입지는 않는지, 말을 할 때 더듬지는 않는지, 피부가 까맣지는 않는지, 손가락이 짧다던가, 출신 학교가 별로거나 부모님 재산이 적다거나, 머리카락이 많이 꼬이지는 않았는지 눈을 씻고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놀리거나, 놀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돌아서서 속으로 욕하지요.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이 좀 나은 사람이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수치심을 가리는 것이지요. 이런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유명인사나 명 강연자에게서도 흠을 찾아내 주위사람들에게 그들을 평가하고 정죄하고는 합니다. 저 유명인은 무엇이 못났네, 저 강연은 논리가 맞지 않네.. 등등 모든 사람들에게서 흠을 찾아냅니다. 그렇게 비난과 비판을 일삼으면서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기도 하며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내면의 허황된 역기능적 안도감을 채우는 것입니다. 


위의 이야기가 딱 제 이야기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예시도 비유도 아닌 현실이었네요. 그렇다면 이제 진짜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왜 비난을 일삼는 사람들이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인지 말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비난을 일삼는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존재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라 말씀드렸지요. 그렇다면 그런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의식과 무의식이 맞닿는 곳)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적나라한 예시를 들어드릴까 합니다.




무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대 위에 올라선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객석에 앉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무대 위에서 바지에 똥을 쌌습니다. 베이지색 면바지는 점점 더 짙은 색으로 물들어 갑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아이를 쳐다보고 있고, 그 아이는 자신의 치부가 들어날까 점점 패닉에 휩싸입니다. 아이는 부들부들 떨며 어떻게든 절체절명의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 무대 앞줄에 자신보다 약해보이는 한 아이를 발견합니다. 그리고는 객석을 향해 소리칩니다.  



“여러분! 앞줄에 이 아이 좀 보세요! 양말을 짝짝이로 신었어요!”




사진1 - Image by 梓坚 陈 from Pixabay

사진2 - Pixabay로부터 입수된 Gerd Altmann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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