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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루이스 Dec 03. 2023

죽음이 있는 이유


a.지하철 손잡이를 붙잡고 흐린 눈으로 액정을 보는

b.네온사인 즐비한 축축한 거리를 배회하며 머물 곳을 찾는

c.컴컴한 강변을 따라 빨갛게 이어진 자동차의 행렬을 높은 창가에서 심드렁히 내려다보는

   

이들 중 그 누구도 자기가 머물고 있는 진짜 집이 어딘 줄 알지 못한다.


a.젖은 머리를 털고 화면 밖으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b.수거함에서 꺼낸 구겨진 블라우스를 베고 계단참 모서리에 누워

c.반이나 남은 찻잔을 머리맡에 내려놓으며


어깨에 힘을 빼고 눈을 감고는 숨을 크게 마셨다가 내쉰다.     


그렇게 이들은 그날 하루 자기들의 배역을 내려놓고 잠시 그 무대를 떠난다.     


꿈속에 

a.바닷가 소나무 숲을 걸어도, 

b.자기가 살 집 내벽에 페인트칠을 해도,

c.평생 떠나지 않고 자기를 사랑해주겠다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그 꿈들은 또 다른 무대일 뿐,     


이들은 꿈의 시공간을 지나가

의식 가장 깊은 심연에 연결되어 있는

"그 집"에 모두 가 닿아 머문다.     


매일 잠을 자는 시간,

아이나 어른이나

호흡이 있는 온 존재는 

의식이 소화해낼 수 없는 놀랍고도 신비한 영역,

생명의 샘에 발을 담갔다가 온다.     


시공간 너머에 있는 그 집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인류의 감각과 언어로는 표현할 수도, 인지조차 할 수 없기에

아무도 자는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까마득히 기억하지 못하는 거다.     


하지만 그 집에

누구는 하루 동안, 누구는 천년 동안 다녀왔기에

어제는 더 이상 오늘이 되지 못하고


오직 오늘만의 새로운 ‘오늘의 자신’이 되어     


a.지하철을 타고,

b.거리를 나서고,

c.수백여 가지의 결정을 내리는      


무대 위로 다시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 열연을 펼치며 그들은,

은연히 느껴지는 그 집에 대한 갈증이 있지만

어떻게 해갈() 할 수 있을는지 

방법을 도저히 알아내지 못한다.     


아마도 꿈속에서 보고 누렸던 일들을

실제로 보고 누리면 

목마른 마음에 시원함을 더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는     


실제로

a. 소나무 숲이 있는 바닷가를 걷고

b. 자기가 살 집을 마련하고

c. 자기를 평생 사랑해준다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갈망하던 것을 실로 마주하게 되는 순간

그것들은 마음에 머물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쳐 버리고,     

채워지지 못한 마음의 심연은

충족을 원하며 또 다른 시도를 해보라고 이들을 재촉한다.     


호흡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집"을 갈구하면서도

그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은


오직 ‘죽음’이라는 커튼이 걷혀야지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Anja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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