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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루이스 Aug 17. 2024

사라져 없어지는 게 아니더라

오랜 시간 상처에 붙들려 살았다.


물리적 학대와 정서적 유기는 30여년이 넘게 내 안에서 맴돌았다.


자기를 연민하는 생각들

나는 참 불행하다는 생각

비참하다는 생각

그리고 불쌍하다는 생각

그런 끊이지 않는 생각들..


투성이었다.


그래서 자기 안에 갇혀 살았던 거다.


내 안에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에 매일 나 자신을 내던지며

휩쓸려 들어가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또 그 안에 새로운 소용돌이를 만들어가면서

무한한 혼돈의 무저갱으로 나를 내던졌었다.


사건은 몇가지, 혹은 수십가지, 혹은 수백가지 정도였겠지만

내가 만들어내고 부풀리고 전염시킨 고통은

수천, 수만, 수억 가지 정도였다.




지금은,

감사하게도 예전처럼 자기 연민에 붙들리는 일이 적다.

예전의 사건들이 혼돈의 소용돌이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 사건들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 사건들은 내 기억 안에 여전히 있다.


그런데 예전과 다른 것은,

그 사건들이 마치 우주의 끝자락에 있는 머나먼 별처럼

내 기억 속 저 멀리 아주 희미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위성처럼 내 주변을 빙빙 돌면서 일상의 전 영역에 영향을 줬었는데..


이렇게 될 수 있던 것은,

그 사건들을 중심에 내세워 일상을 가꾼 것이 아니라

아무리 파리한 기운이 느껴지더라도

'억울함을 호소해' '책임을 추궁해' '그의 잘못을 폭로해'하는

내 자아의 목소리가 메가폰처럼 울려퍼지더라도

못 들은척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찾고 알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행한 데에 있다.


그렇게 자아가 일으킨 소용돌이가 아닌,

그날 그날, 그때 그때의 길을 한 걸음씩 비춰주는 빛에 의지하여

지난날을 생각지 않고, 생각이 나더라도 거기 끌려 가지 않고

현재에 붙들려 있으려고 하다보니

그 순간들이 모여 거대한 이야기와

기초를 이루어가고 있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간극을 채워나가고 있다.)


그렇게,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주기 보다

지금의 모습과 지금의 사고로

과거를 재해석 하게 된다.




주체는

지나간 일이 아니라

미래의 것도 아니라

오직 지금 이 순간, 찰나의 순간에만 있다


이 섬광과도 같은 번뜩이면서 빚어지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메이지 않는

그러니까

시간에 메이지 않는,

시간 밖에 있는 존재만이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시간 밖에 있는 것과 가장 흡사하다)


진정으로 자유할 수 있다.




내가 지금 그렇다는(진정한 자유 안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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