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괜찮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별 탈 없어 보이는 일상을 지내는 사람들을.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더라도 집에 큰 사건사고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
가족이 화목해 보이고, 어디 크게 아픈 곳 없고, 주변 사람들하고도 제법 괜찮게 지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러면서 필자는 스스로의 삶을 ‘고통 많은 삶’이라 치부하며,
내 삶은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든건지, 계속 살아야만 하는지 생각하면서
자기 연민에 오랫동안 빠져 살았다.
어렸을 때는 화목해 보이는 친구네 집이 부러웠고
대학 때는 평범하게 살고 큰 어려움이 없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더 크고 나서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지금,
아직은 사회 경험도 짧고 만난 사람도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생각이 바뀌었다.
바뀌게 된 계기가 있다.
다른 사람들 또한 필자의 삶을 ‘부러워’하는 모습을 ‘여러 번’ 듣고 목격하고 나서부터다.
필자는 속으로 허탈하게 웃었다.
‘내 삶을 부러워한다고? 이 삶을?’
그러고 생각했다.
아,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구나.
(필자도 마찬가지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자기 문제’는 ‘남의 문제’보다
10배에서 100배는 더 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위의 말은 찰리 채플린이 했다고 하던데..
이 말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일에 복귀하고 나서다.
쉬다가 일을 다시 시작했을 때였다.
처음에는 회사 구성원들 각자의 일상이 제법 괜찮은 듯 싶었다.(나만 힘든 줄 알았다.)
가족이랑 살든 혼자 살든, 일과 후에는 좋은 시간 갖고, 주말에는 잘 먹고 잘 놀고 이따금씩 여행도 가고
그렇게들 잘 지내는 줄 알았다.
특히 겉으로 보면 평소 잘 웃으면서 정말 별 탈 없이 지내는 듯 싶은 직원들이 몇몇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런 사람들을 제일 부러워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려움 없어 보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부담의 무게가 상대적으로 가볍던지, 상대적으로 더 무겁던지
부담을 안 지고 있는 사람이 없다.
단 한 명도 없었다.
정말 단 한 명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려는 것 때문에 부담을 지고
일을 적당히 하려는 사람은 적당히 하면서 발생되는 적당한 수입과, 그 적당한 수입으로서 해결해야하는 본인과( 및 책임져야 하는 사람) 그 미래에 대한 부담이 있다.
예시를 일에 대한 부담으로만 들었지만,
삶의 많은 영역에 적용시킬 수 있지 않을까.
(관계, 건강, 미래(혹은 과거), 성취, 자아실현, 취미 등 여러 영역에서..)
아이는 아이대로의 부담이 있고
학생은 학생대로의 부담이 있고
어른은, 노년은 그들의 부담이 있다
고통이든 부담이든 다 상대적인 것이라서 수치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비틀비틀 힘없는 상태에서는 젖은 수건이라도 무겁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든 부담이 있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다 이미 누군가 했던 말들이다.)
인간이기에 부담이 있는 게 아닐까
(이 말을 설명하려면 글을 새로 하나 더 써야 한다.)
그렇다면 어쩌란 말인가?
질 수 있는 만큼 기꺼이 져야지!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되는 부담을 만들어서 질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져야 하는 책임이고 부담인데 그것을 피하려 들었다가는 (그 삶의 태도와 방향이)
시간이라는 매개체가 그것들을 더 큰 부담으로 부풀려서 가지고 돌아오게 될 것이다.
아니, 부담을 회피하려는 태도 자체가 이미 새로운 부담이다.
필자는 그것 때문에 공황에 여러 번 휩싸였다.
기꺼이 부담을 짊어지면, 그것은 산을 오를 때의 피곤함처럼 피곤할 수는 있겠으나
당신의 심장과 다리를 그리고 마음을 이전보다 더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ps.
사람은 자신의 한계 영역 안에서 부담을 상상한다.
(아 이건 또 다른 이야기 인데, 적어놓고 다음에 써보겠다.)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위험이 있는 줄 모르고 살기 때문이다.
딱 상상할 수 있는 만큼만, 파악되는 만큼만 부담을 지닌다.
(강박이나 결벽이 있는 사람은 안 해도 되는 걱정까지 하고 살지만, 그보다 더 큰 위험이 주위에 있는 줄은 모른다. - 이 내용은 형이상학적 내용인데, 언제 이 내용에 대해 쓸 날도 오겠지. 이번 글에서는 기별을 참 많이 날린다. 공수표가 되지 않기를..)
파악 되지 못한 어려움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고, 감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