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교(架橋)

우리는 모두 각자 하나의 섬이다.

by 리틀루이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서른 둘'

- 아버지에게 맞은 횟수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나는 아버지에게 맞을 때마다 그 횟수를 셌다. 충격이 너무 강렬해 그 상황이 하나하나 상세히 기억난다. 나를 때릴 때의 아버지의 눈은 살벌했다. 눈커플이 눈의 절반을 덮은 날카로운 눈. 눈동자가 잘 보이지는 않지만,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어두운 아우라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분노였다. 분노는 살갗을 뚫어 내 심장을 직접 움켜줬다. 나는 너무 두려웠다. 두려움 앞에 나는 무기력했고, 온 몸은 녹아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 존재를 저주했다. 모든 것이 내 잘못 때문이라 생각해서다. 늘 아버지가 두려웠고, 아버지의 분노는 더욱 그랬다.


하루는 친구가 부친상을 당해 친구 집에서 밤을 지새웠던 적이 있다. 우리 집은 시골이었고, 집에는 전화기가 없었다. 아버지께 연락을 드리지 못하고 외박을 한 것이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 일찍 집으로 들어가는데, 저 멀리서 아버지가 자신의 팔뚝만한 홍두깨를 들고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길로 집을 뛰쳐나왔다. 저 몽둥이로 맞았다간 불구가 될 거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하염없이 울며 길을 걸어갔다. 어디로 갈지 몰라 마냥 걷기만 했었다. 1985년 겨울. 그때 내 나이 15세, 용광로에 들어가 일을 배웠고, 고아처럼 지냈다. 평생 아버지가 없는 사람으로 지내기로 했다. 내 결혼식에도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열여섯'

– 30여년이 지난 지금 내가 내 딸을 때린 횟수


어느 날 딸아이가 내게 숫자 16이 뭘 뜻하는지 물었다. 모른다고 하니 내게 맞은 횟수라는 거다. 그걸 웃으면서 말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내게 맞는 일이 일상인 것처럼 여기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기겁했다. 순간 숨이 멎었다. 나는 절대 아버지처럼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데, 그 결심을 아주 자연스레 어기고 있었던 거다. 문득 거울을 보니 눈꺼풀에 반쯤 잠긴 내 눈은 아버지와 똑 닮아 있었다. 그렇다. 나는 내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아니, 분노에 잡아 먹혀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분노의 굴레에 들어와 버린 것인가? 아마 그럴 거다! 내 아버지가 그랬으니까. 시팔! 나는 다정한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어쩐지, 어릴 땐 내 말이라면 하늘 보듯 하며 열심히 듣던 딸은 지금은 듣기커녕 대화를 피하려고만 한다. 내가 내 아버지를 피했던 것처럼, 딸도 이제 날 피할 거다. 난 실패했다. 절대 변하지 않았던 내 아버지처럼 나도 결국 이렇게 돼 버린 거다! 이게 다 아버지 때문이다!

그래도, 그래도 내 딸은 나처럼 되게 하면 안 된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여덟'

– 딸에게 거절 당한 대화 횟수


점점 딸의 얼굴을 보기가 어렵다. 방과 후 학원에 갔다가 들어오는 시간은 열한 시 반, 딸은 집에 오자마자 피곤하다며 바로 방에 들어가 쉰다. 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가슴이 미어진다. 딸은 주말에도 집에 없다. 학원 보강이든, 도서관이든, 놀러 나가든, 항상 계획이 있다. 하루는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참지 못하고 아침에 자고 있던 걸 깨웠던 적이 있다. 딸은 왜 깨우냐며 온 집안이 울리도록 고함을 쳤다. 그 후로는 아침에는 절대 딸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생겼다. 딸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딸을 대할 자신감도 사라진다.






'하나, 둘, 그리고 넷 '

– 딸이 난리친 횟수


어느 날, 딸이 친구와 싸웠는지 풀이 죽어 집에 들어와서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순간이 딸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오랜만에 말이다. 나는 딸의 짜증을 다 듣기로 했다. 그리고 굳이 내 입을 열 필요는 없다. 난 어차피 실수할 테니까. 나는 좋은 아빠도 아니고 좋은 말도 못 하니까. 친구가 뭘 그렇게 많이 잘못했는지, 딸은 끝없이 친구 욕을 해댔다. 그러다 갑자기 푸념의 화살촉이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딸은 나보고 왜 집에만 있냐고, 그러니 사회생활도 못하지 않냐며 이유 모를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다 자기를 왜 이렇게 키웠냐고, 친구 하나 제대로 사귈 줄 모르고, 하고 싶은 말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냐며, 울고불고 소리쳤다.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딸을 잠식해버린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분노를. 딸은 한참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다 잠잠해졌다. 딸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딸이 싫어할까 하염없이 미안하다는 말만 하다 나왔다.






'하나, 그리고 둘'

– 딸에게 받은 편지 두 통


공부에 관심이 도통 없던 딸이 1년 재수를 하더니 타 지역에 있는 대학의 심리학과에 들어갔다. 아마 내가 제공했던 불행한 가정환경 때문에 심리학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대학에 들어간 딸은 방학에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 편지를 보내주는 것 밖에는. 편지에는 인간관계 문제에 대한 해결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노에 대해서도. 딸은 편지에 분노가 어떻게 발생되며, 어떻게 해야 해소될 수 있는지 자세히도 적어 놨다. 편지를 벌써 수백 번 읽은 것 같다. 딸이 대학가서 공부를 많이 했나 보다. 기특했다. 또 이제는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다만 분노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았으니 더 이상 그것의 노예가 되지 말라 했다. 추신에 자신이 울고불고 소리치던 날, 내가 미안하다고 했던 그 말의 대답을 써 놨다.

‘나를 이미 용서했다’는 것이었다.


딸이 변했다.

딸이 사람들 사이에서 완벽하든 그렇지 못하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딸은 더 이상 분노의 노예가 아니었다. 그게 중요한 거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분노 그 자체였던 나도, 그것과 분리될 수 있을까? 딸을 평생 억압해왔던 잘못으로부터 용서받은 나는, 이제 무엇을 하면 되는가?






'하나.'

– 전화기를 들어 아버지의 번호를 눌렀다. 아버지의 집을 나온 후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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