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진지충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진지충이었고, 그리고 진지충으로 존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어렸을 적의 모습과 현재 '지향하는 방향'은 다르다.
어렸을 때는 경쟁의식이 강했고, 지기 싫어하면서
이기면 우월감에 젖어들고, 지거나 질 것 같으면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웬만하면 경쟁을 해야하는 것 중에서 내가 질 것 같은 것들은 피했다.
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항상 내가 이겨야만 했기 때문에 상황극이나 농담 같은 가상의 대화 같은 것은
잘 즐기지 못했다.
그런 가상의 놀이는 '이기는 것(이기는 사람이 있으면 패자가 있기 마련)'이 중심이 아니라
'주고 받는 행위에서 얻는 즐거움'이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에 관한 생각을, 현재 지향하는 방향을 정리해보려 한다.
성인이 된 이후 20년 정도의 시간을 지나면서
대학에서, 여러 모임에서, 몇몇 직장에서, 이런 저런 곳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같이 공부하고, 시간을 보내고, 같이 일해보면서
진중함과 경쟁심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무언가에 진지하게 몰두하는 것, 사람을 만날 때 진중한 것과
경쟁의식을 가지고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빠지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는 거다.
필자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일에서 결과를 내는 것도 좋아하는데
이것들은 진심으로 임하지 않으면 잘 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면서도 또한 경쟁의식도 쉽게 따라붙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경쟁의식이 '진중함'으로 쉽게 오해되고, 둔갑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둘은 지향점이 다르다.
진중함은 '집중하는 행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경쟁심은 '상대방'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진중함은 하고 있는 일을 충실히, 최선과 탁월함으로 하는 것이며
경쟁심은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는 교집합이 있을 수 있으나,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사회적 룰, 게임의 룰을 지켜가며 경쟁하는 사람들도 많다.)
진중함은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기뻐하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아쉬워하거나 슬퍼한다.
경쟁의식은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우월감으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열등감에 붙들리게 된다.
혹자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굳이 앞선 내용을 알아야 하는지 의구심이 생긴 분들을 위한 내용이다.
사람을 만나다보면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이 많다는 것을 꽤나 보게 될 것이다.
혹시 독자 중에 사회적으로 꽤나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주변에 우월감에 붙들린 사람들이 꽤나 보일 것이다.
이건 다 '경쟁심'에 의한 것이다.
이런 경쟁심에 의한 열등감과 우월감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이게 아주 중요한데,
'논리가 중요하지 않다.'
단순한 대화든, 같이 일을 하든, 거래를 하는 것이든, 스포츠를 하는 것이든지
그리고 그 상대방이 갑이든, 을이든, 동료든, 지인이든, 친구든지
다시 말하지만
논리가 중요하지 않다.
대화의 결과, 거래의 결과, 게임의 결과가 그들에게 우월감을 불러일으켜 주는 것
그게 중요하다.
그러니까 웬만해서는 친구로 두기 까다로운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남 얘기 하는 거 아니다.
필자 자신 얘기 하는 거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독자 그대 또한 진중함보다 경쟁심이 더 촉발되어
사람을 대하고 있을 수 있다.
사람을 볼 때 이 부분을 잘 파악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상대가 발끈하거나, 자랑질을 하거나, 나를 무시할 때
'아, 경쟁심이 발동했구나 인정이 필요하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지
'뭐지 이거? xx.' 하고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ps. 세상에는 진중한 사람 경쟁심이 가득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꼭 진중한 사람은 진중하고, 경쟁심 가득한 사람은 우월감과 열등감으로 가득한 것도 아니다.
섞여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경박한 사람.'
무엇이든 농담으로 치부하고, 매사에 진지하지 않고 겉도는 사람.
그러면서 농담도 많지만 툴툴 거리면서 불만도 많은 사람.
아.. 이런 캐릭터는..
또 그렇다고 경박한 사람이 항상 경박한 것도 아니다.
...
우리는 타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하고 흠 가득한 사람들이다.
완전 무결한 사람 하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