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예고편보다 지루한 본편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스킵(skip) 할 수 없는 삶의 무게

by 리틀루이스

이따금씩 릴스나 쇼츠에 빠져 시간을 속절없이 날려보낼 때가 있다.

적게는 5분에서 10분, 정신을 차리고 보면 2시간이 훌쩍 넘어가 있기도 하다.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나면 머릿속에 남는 것이라고는 재밌었던, 혹은 다소 충격적이거나 선정적이었던 파편화된 장면들뿐이다. 그마저도 선명하지 않다.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빠르게 삼켰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짧은 영상에 열광하고 심지어 중독되기까지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 요지는 명확하다. 숏폼이 뇌에 즉각적이고 빠른 보상(도파민)을 제공하며, 알고리즘이라는 친절한 안내자가 곧장 또 다른 자극적인 영상으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트렌드를 지켜보며, 이것이 비단 미디어 소비 행태에만 국한된 이슈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고 자극적인 보상, 무언가를 끈덕지게 기다리는 것을 쓸모없고 미련한 짓으로 여기게 만드는 메시지들이 이 사회 여기저기에 편만하게 널려있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필자는 그 징후를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변질된 모습에서 가장 크게 느낀다.


가족, 친구, 연인, 스승, 지인 등의 관계에서 이제는 예전과 같은 끈끈함을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연인도 낡은 물건 바꾸듯 쉽게 대체하고, 친구와의 연도 수틀리면 쉽게 끊어내며, 심지어는 천륜이라 불리던 가족(부부나 부모, 자식, 형제자매 사이)조차도 전보다 훨씬 가볍게 끊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고서는 우리는 그 관계의 빈자리를 다른 무언가로 급하게 채워 넣으려 든다. 마치 릴스처럼 보상이 빠른 관계, 그것이 소비적이든 비소비적이든 내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는 것 같은 관계보다는 즉각적인 이득을 주는 관계를, 그것도 그 이득을 오래 기다릴 필요 없이 '빨리' 보여주는 관계를 선택하고 있다.




비단 관계뿐인가, 우리가 업(業)을 대하는 태도, 즉 일과 성취의 과정조차 '숏폼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하나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지루한 반복과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당연한 미덕이었고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제 대중은 '단기 속성', '수익 인증', '빨리 은퇴하기(파이어)'와 같은 자극적인 결과물에 열광한다.


0.5초 만에 재미가 없으면 가차 없이 스와이프 되는 영상처럼, 조금이라도 지루하거나 즉각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 일은 '가성비 없는 일'로 치부되어 인생에서 쉽게 삭제당하곤 한다.


물론, 근래 사회가 아주 빠르게 변화하며 그 변화에 대처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은 비상벨도 같이 울리고 있기는 하다. 우리는 이 비상신호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각자는 주어진 상황 가운데서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불가항력적인 문제가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해서 두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이러한 태도가 우리의 사고방식까지 15초짜리 프레임에 가두어버렸다는 점이다.


긴 호흡으로 맥락을 파악하고 본질을 꿰뚫는 비판적 사유보다는, 누군가 3줄 요약해 놓은 결론과 자극적인 헤드라인에만 우리의 뇌가 반응하도록 길들여지고 있다.


어떤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깊이 몰입하며 느끼는, 그 뻐근하지만 차분하며 힘이 들지만 소소하게 윤이 나는 빛깔은 사라지고, 오직 당장 눈앞의 과제를 해치우는 '처분적인 행위'만이 남아있다.

보상을 기다리지 못하는 뇌는 이 복잡한 세상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과정을 회피하고는 모든 것을 단순하게만 보려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가벼운 것'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기승전결의 서사 없이 귀에 꽂히는 훅(Hook)만 무한 반복되는 노래가 차트를 점령하고, 그 지역의 역사와 풍경을 음미하며 낯선 감각을 깨우기보다는 '인증샷' 스팟만 찍고 돌아오는 여행이 주를 이루며, 재료 본연의 깊은 맛보다는 혀끝만 강렬하게 자극하는 맵고 단 음식들이 넘쳐난다.


그뿐인가. 땀 흘려 쌓아가는 일의 가치보다는 '월 천만 원 자동 수익'을 외치는 가벼운 상술이 알고리즘에 가득하고, 학문의 즐거움이나 원리를 이해하는 쾌감보다는 당장 취업에 필요한 점수와 자격증 따기에만 급급한 '실용적 지식'만이 강조되고 마치 정답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책 한 권을 진득하게 읽으며 저자와 대화하기 보다는, 10분짜리 요약 영상 하나를 보고 "나 그 책 알아, 핵심은 이거잖아."라고 말하는 게 효율적인 삶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감각만 자극하는 쾌락은 휘발성이 강해서, 돌아서면 더 큰 공허함만을 남긴다는 것을. 그리고 쉽게 얻은 지식과 요행으로 쌓은 부(富), 얄팍하게 맺은 관계는 삶의 위기가 닥쳤을 때는 지켜줄 단단한 뿌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단편적인 자극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완성되는 스토리(이야기)다.


우리가 명작이라고 부르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감동하는 이유는 단순히 명장면 하나 때문이 아니다. 주인공이 겪어낸 고난과 갈등, 지루할 만큼 평범했던 일상들이 차곡차곡 쌓여 마지막 순간에 폭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내 인생과 관계를 '하이라이트 영상'처럼 만들려고 한다. 지루한 과정은 편집해버리고, 갈등은 스킵(Skip)하고, 가장 알록달록한 결과만 남기려 한다. 하지만 진짜 '나'라는 사람은 편집된 영상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편집되어 잘려 나간 그 지루한 시간 속에 삶의 정수가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묵묵히 곁을 지켜준 가족과의 시간, 몇 번을 다투고 화해하며 깊어진 친구와의 추억, 실수하고 실패하고 자책하고 자빠지며 깨달았던 나의 지난날들..


이런 긴 연고의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비로소 '나'라는 공고한 존재가 만들어진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지고, 빨리 맺은 관계는 작은 바람에도 끊어진다. 반면,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가치는 결코 숏폼처럼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금 느리고 답답해 보일지라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시간을 견뎌내며 쌓아 올린 '스토리'가 있는 사람들이 그 누구보다 정체성의 텍스쳐가 선명하고, 명암이 짙고, 농도가 진득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진정한 삶의 맛은 자극적인 소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 씹을수록 우러나오는 밥맛 같은 일상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내가 소비한 것들이 아난, 내가 감당해온 '책임'의 무게와 내가 지켜온 '신념'의 깊이로 증명되는 게 아닐까.




결국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은 화려하고 예고편만 요란했던 삶이 아니라

묵묵히 써 내려간, 진정성 있는, 그만의 독특한 스토리가 담긴(누군가의 독특함은 혼자 이뤄낼 수 없다. 꼭 관계가 엮여야만 한다.) 인생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15초짜리 영상이 아니다.

우리는 깊이 있는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왜냐고


당신은 이 세상, 온 우주보다 소중한 존재니까.





메인이미지 - Pixabay로부터 입수된 Manfred Loell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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