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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루이스 Feb 17. 2020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것들 4.

화합에서 갈등까지, 갈등에서 무력까지 

이번 장에서는 3장의 스토리를 이어나가며 이야기를 진행하려 합니다. 3장의 내용을 잘 모르신다면 이번 장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3장을 읽지 않으신 분은 이번 장을 잘 이해하기 위해 먼저 3장을 읽고 오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3장 - https://brunch.co.kr/@littlelewis/41

    

4장을 시작하겠습니다.   



외부인의 설계

시간이 흘렀지만 무엇 하나 신사(외부인)의 뜻대로 되는 것은 없었습니다. 마을의 질서가 그 무엇보다 중요했던 마을 사람들은 이웃과 의견이 충돌하는 순간 자신의 뜻을 쉽게 굽혔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리조트에 대해서도, 나무가 울창한 언덕에 대해서도 어떡할지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신사는 발걸음이 바빠졌습니다. 마을의 장로를 만나 설득해봤지만,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결정할 일이지”라는 답변뿐이었고, 도시 전도사 A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마을이 발전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강제하고 싶지는 않아요.”라는 답변, 자연보호 대표 B를 만나봤지만 “우리는 지금 이대로가 행복합니다. 더 이상 바꿀 것은 없어요.”라는 자신의 뜻에 반하는 말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신사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나쁘게 바라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사가 집을 방문하면, “리조트 이야기는 됐습니다. 대신 오늘 아침에 잡은 연어가 있는데, 맛있게 구워드릴테니 함께 들고 가시지요”라는 식의 이웃을 향하는 듯 하는 친절을 제공할 뿐이었습니다. 신사에게는 사업 파트너가 필요했는데 말이지요. 하지만 그대로 포기할 그가 아니었습니다. 



C의 등장

신사는 마을에 남아 자신의 편에 서줄, 정확히는 자신의 사업에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지 계속 물색했습니다. 오랜 시간 끝에 그는 한 사람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마을에 처음 왔을 때는 눈에 전혀 띠지 않았던 인물로,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늘 혼자 다니고 말 수가 적은 어린 청년이었습니다. 행복이 넘치는 마을에 있으면서도 그는 마을사람들을 경계하는 듯 보였습니다. 어쩌다 마주치면 그는 혼자 개울가를 걷고 있거나, 산짐승이 많은 뒷산에서 홀로 사냥을 하고 돌아오거나, 아무도 없는 언덕에 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 사람을 C라고 부르겠습니다.  


어느 날 마을 어귀를 지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큰 소리가 나고 있어 가서 보니 C가 길 한 가운데서 그의 아버지에게 맞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C의 아버지는 누구라도 들으면 심장이 내려앉을 만큼 사나운 목소리와 섬뜩한 욕을 해대며 C의 따귀와 목덜미를 때리고 있었습니다. 신사는 당장에 달려가 아버지의 팔을 붙잡으며 말렸습니다. 순간 지독한 술 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술에 찌든 그 남자의 눈빛을 보니 이미 제정신이 아님을 감지한 신사는 재빨리 C를 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뒤에서는 고래고래 들려오는 온갖 욕이 담긴 소리가 점점 작아져 갔습니다.  


신사는 C를 자신의 숙소로 데려왔습니다. 시퍼렇게 멍든 곳에 약을 발라주고, 따뜻한 수프를 한 그릇 먹였습니다. 말없이 멍하니 앉아있는 C에게 그는 여기서 자고 가도 괜찮다고, 아저씨는 거실에서 자겠다며 자리를 비워줬습니다. 다음날 이른 새벽, 신사가 잠든 틈을 타 몰래 나가려는 C의 뒷전에 신사가 얘기 했습니다. 언제든지 와도 괜찮다고. C는 흠칫 놀라더니 문을 열어둔 채 부리나케 뛰어나갔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C는 얼굴에 새로운 상처를 달고 울상 가득한 얼굴로 신사의 집을 찾았습니다. 신사는 웃으며 그를 맞아주었고, 피 묻은 옷을 벗겨 씻기고 새로운 옷을 입혔습니다. 같이 앉아 식사를 할 때, 신사의 괜찮냐는 질문에 C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울음은 통곡에 가까웠고, 한 시간이 넘도록 지속됐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내내 신사는 C를 감싸주었습니다. 울음을 그치고 한결 밝아진 표정을 하고 있는 C를 본 신사는 자신이 계획하는 리조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눈물서린 C의 눈망울이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정말 행복해질 것만 같은, 지금 이 상황과는 극히 대조되어 마치 지옥에서 천국으로 변하는 듯 하는 마법 같은 리조트 이야기에 C는 완전히 매료됐던 것입니다. 리조트가 지어지면 자신을 관리인으로 채용시켜주겠다는 신사의 말에 C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정말이요?” 신사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마을에 리조트를 지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지요.  



갈등의 선악과

신사와 C가 함께한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그간 C는 모임마다 빠지지 않고 나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과거의 울적한 모습을 청산하고 활발해진 C의 모습을 기쁘게 여겼을 뿐, 갑작스런 변화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C는 특히 마을 외곽에 살고 있는 자신처럼 가난한 집의 어르신들을 자주 찾아갔습니다. 자신이 직접 잡은 물고기와, 산에서 캐온 약초를 가지고서 말이지요. 어르신들은 평소 C에 대한 특별한 연민이 있었기에 그를 측은히 여기며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때마다 C는 어르신들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어디서 들었는데 'A' 그 사람이 리조트 찬성을 외치는 이유가 그 땅이 아버지 소유라서 그렇다는데요. 그리고 사실 우리들한테 나눠줄 식량이 더 있는데 창고에 계속 쌓아 둔데요. 아니, 비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고요. 사실이 그렇다니까요. 리조트가 생겨봤자 그 사람만 더 부유해지지 우리한테 득 될 거는 없을 거예요. 아마 그럴 거예요. 그가 자기 부모님을 뉴욕으로 모시려 했던 사실은 알고 계셨나요? 사실 마을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던 거라고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저는 제 생각이 아니라 단지 진실을 말하는 것뿐이에요” 


C가 가난한 집들을 돌아다니며 A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동안, 신사는 자신이 타지에서 직접 공수해온 특산물을 가지고 마을의 부유한 집안을 찾아다녔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음식과 향료, 동물가죽, 보석 등에 눈이 휘둥그레진 사람들을 보며 신사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습니다. 


“리조트가 지어지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리조트를 보기 위해 세계 사람들이 온갖 귀한 것들을 가지고 올 거예요. 금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혹시 루비, 사파이어라도 들어보셨나요? 세상에 몇 안 되는 보석 말입니다. 왕과 귀족이나 목에 걸 수 있지요. 아하하.. 그런데 어르신, 어르신이라고 귀족처럼 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그러고말고요. 아하하.. 혹시 그 얘기 들으셨나요? ‘B’가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 환경보호만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던데요. 마을의 의사결정을 사람의 머릿수로 결정하려고 한데요. 아마 조만간 문서를 들고 올 겁니다. 절대 도장을 찍어 주시면 안 돼요! 아이, 제가 거짓말 하는 거 보셨습니까? 제 양아들 같은 ‘C’가 똑똑히 보고 들었다니까요! 만약에 실제로 그 일이 이뤄지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다 빼앗겨 버리는 겁니다!”  


신사의 말을 들은 어르신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생각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불안과 그것보다 조금 더 큰 분노를 느끼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신사에게 “이제 돌아가시지요”라는 말만 남긴 채. 고개를 약간 숙이고 찌푸린 미간 사이로 어르신의 짙은 주름이 마을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 보였습니다. 신사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뒷걸음질로 조심스럽게 물러나다가 뒤 돌아서자 곧장 음흉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갈등에서 분열까지

수개월이 지났습니다. 마을의 분위기는 흉흉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예전의 그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확실히 사라졌단 것을 어린아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변해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이던 잔치에 참여하지 않는 가족이 하나 둘 씩 생겼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부유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대로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 가장 바쁜 두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C와 신사였습니다. 그들은 이집 저집 쏘다니기 바빴습니다. 


조금씩 여물어가던 문제는 결국 터져버렸습니다. 언덕을 소유한 부자들이 시공 측량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들고 일어났습니다. 자기들과 상의 없이 공사를 시작했다는 이유에서 말이지요. 그들은 장로와 부자들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안은 함께 결정해야 할 문제이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부자들은 측량한 것 가지고 뭘 그러냐며, 이 정도는 소유한 사람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응수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급기야 서로 손가락질하며 화를 내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C와 신사는 그들을 말리느라 아주 열심이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외부의 인부들이 마을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언덕의 나무를 베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사람들이 들이닥쳐 인부들의 작업을 방해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젊은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인부들이 도끼질을 하려 하면 온 몸을 던져 나무를 감쌌던 것입니다. 아주 위험한 장면이 연출됐지요. 한 청년은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 했습니다. 인부들은 어쩔 줄 몰라 했고, 더 이상 작업이 어렵다고 판단한 인부들은 그날 작업을 포기했습니다. 인부들은 돌아갔지만, 청년들은 산자락에 남았습니다. 그들은 물가에 천막을 치고는 밤이고 낮이고 서로 돌아가며 보초를 섰습니다. 


삼일 뒤, 마을 어귀에 인부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보초를 서던 청년들은 바짝 긴장했습니다. 얼마 뒤 인부들이 오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들 뒤로 덩치 큰 사내들이 씩씩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던 것입니다. 그들에 의해 청년들은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바닥에 나뒹굴었습니다. 인부들은 도끼질을 시작했고, 청년이 그것을 막으려 달려들려 하면 누군가 목덜미를 잡아다가 바닥에 내리꽂았습니다. 무력해진 청년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었습니다. 



수년 뒤, 리조트는 완공 됐습니다. 그 리조트는 아주 호화로웠고 금새 유명해졌으며,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부자들은 더 큰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며 살았고,  C는 부자들과 손님들에게 굽실거리다가도 부하직원들에게는 온갖 짜증을 다 내는 관리인이 되었으며, 가난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마을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럴 여건이 안 되는 사람은 마을에 남아 리조트에서 일을 했지요. 신사는 리조트 완공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그에 대한 많은 소문이 있었지만, 다른 나라에 새로운 리조트 자리를 찾아보러 갔다는 말이 그중 가장 그럴싸한 이야기였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그 사이 좋던 마을 사람들이 갈라서게 됐을까요? 신사는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 이념이 있다한들 ‘이기심’만 있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경제발전이든 환경보존이든 마을의 질서든 그것들은 그것들대로 악한 것이 아니었지만, 이기심을 만난 결과 그 나쁘지 않은 것들이 절대시 되며 타인을 몰아세우는 무기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마을의 질서는 이기심에 의해 무너졌고, 그것을 노렸던 신사는 사람에게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이기심을 불어넣었던 것입니다.  


다음 5장에서는 이기심에 대해 다루며 이 시리즈를 매듭지으려 합니다. 



사진1 - Pixabay로부터 입수된 Vojtěch Kučera님의 이미지 입니다. 

사진2 - Pixabay로부터 입수된 Suvajit Roy님의 이미지 입니다. 

사진3 - Pixabay로부터 입수된 Devanath님의 이미지 입니다. 

사진4 - Pixabay로부터 입수된 PublicDomainPictures님의 이미지 입니다. 

사진5 - Pixabay로부터 입수된 John Hain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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