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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루이스 Jul 23. 2020

우울증 이야기 세 번째 - 몸부림

우울을 거부하다.

우울의 바다에 갇혀 사는 것은 불과 몇 년 전까지 지속됐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바, 저는 학교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학교는 우울감이 극으로 치닫게 하는 그런 곳이었거든요. 그런 상태로 학료를 잘 다닐 수 없었고, 결국 저는 자퇴를 결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늘 미래를 걱정하는 아버지는 저의 자퇴를 용납하실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조건을 다셨습니다. ‘러시아로 유학을 가면 자퇴를 허락하겠다.’였습니다.


엄밀히 말에 그건 자퇴가 아니었지만, 저는 늘 제가 있는 곳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고, 한국 학교만 아니면 다 괜찮을 거라는 비이성적인 결론을 일찌감치 내리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지요. 브런치북 <<사랑 같은 중독>>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저는 일단 당장 지금 이 순간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문제란 문제는 다 미래에 맡겨버리고 지금 당장 내가 안전하고 편하고, 쾌락을 느끼기를 바랐습니다.

 이 모습은 책임감이 부족했던 저의 기질에서 발생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울증을 앓는 분이시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우울의 바다에 빠져 있을 때는 미래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되거든요. 지금 당장 이 짓눌려있는 환멸과 고통과 무기력의 늪에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어떤 것이든 하게 되어버리는, 다음 일은 신경 쓰지 않게 만드는 것이 우울증이지요.


그렇게 저는 한국의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러시아에 갔습니다. 하지만 한국을 벗어났다고 해서 우울의 바다에서 탈출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막상 러시아의 학교에 들어가 보니, 뭐랄까.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또 다른 다양한 어려움이 저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사실 러시아에 입국하기 2주 전부터 심한 우울을 겪었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유학을 가지만 않는다면 한국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이제 여러분도 이해하시겠지만, 만약 유학을 안 가고 다른 곳으로 갔다손 치더라도, 저는 또 다시금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못했고, 상어처럼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러시아의 삶'을 맞닥뜨렸습니다. 그곳의 언어, 음식, 냄새, 기숙사, 친구들, 선생님들, 나를 동물 보듯 보는 외부 사람들, 테러, 린치, 등등등, 이 모든 것들은 저를 우울의 바다의 깊은 심연으로 내리눌렀습니다. 러시아에서 며칠 지나지 않아 당시 살면서 겪어봤던 우울한 감정 중의 최대치를 겪게 됐습니다. 아주 자연스레 극심한 불면증 또한 겪었지요.


당연히 저는 유학생활을 망쳤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볼품없는 러시아 사립고 생존기>>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아직 1년차에 대한 내용밖에 못 썼는데, 그 내용만 보더라도 유학생활을 어떡하면 망칠 수 있는지 확인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차저차 러시아에서 비실용적으로 3년을 버티며 졸업이란 것을 할 수 있게 됐고, 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주위 모든 사람들이 러시아에서 대학교에 진학하라고 했지만, 당시 저는 (여러분도 이미 짐작하셨다 시피)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었고, 러시아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인이 됐다고 해서, 그러니까 좀 컸다고,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삶에서 어떻게든 부정적인 요소들을 찾아내어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기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학을 준비하는 시절에도, 타 지역에 있는 대학에 갔을 때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할 때도, 처음으로 입사를 하게 됐을 때도, 맘에 들지 않는 직장 동료와 상사를 만났을 때도, 이직을 준비하고 이직을 할 때도 저는 항상 우울했습니다.


이사를 가기 전에도, 새 원룸으로 이사를 갔을 때도, 위층과 옆집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날 때도, 옆길 배달 오토바이가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갈 때도, 내가 내 방에서 마음대로 소리를 낼 수 없으며, 새벽 늦게까지 소음을 내는 이웃에게 아무 말 못하고 꾹꾹 참아낼 때도 저는 계속 우울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슬슬 이 세상 어디를 가든 제대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나중에는 불만족스러웠던 유학생활, 대학생활, 사회생활, 일상생활, 그러니까 저의 삶을 늘 불만족스럽게 만들었던 그 원인을 우울증으로 여기게 됐고, 저는 우울증을 혐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울증은 혐오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혐오할수록 더, 더욱 강하게 저를 억압했지요. 


위 글의 시간의 순서와 맞지는 않습니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10년 전부터 저는 우울증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온전히 성공했던 적은 없으면서도 조금씩 우울의 이끼를 걷어낼 수 있었습니다. (우울한 감정을 잘 불러일으키는 기질을 지닌 사람은, 건강한 정서습관과 그 행동을 의지적으로 행하지 않을 시 저절로 우울함이 쌓이는 것 때문에 ‘이끼’라 표현했습니다.)


글을 정리하겠습니다.

삶의 여러 경험을 통해 전에는 즐겼던 우울함을 나중에는 혐오하기에 이르렀고, 저는 혐오로는 우울을 걷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울증에 대한 학술적 경험적 지식을 찾아내고 배우고 실천하며 우울의 이끼를 걷어낼 수 있었습니다.


다음 마지막 장에서는 우울의 이끼를 걷어낸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메인이미지 - Pixabay로부터 입수된 愚木混株 Cdd20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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