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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루이스 Jul 20. 2020

우울증 이야기 두 번째 - 우울의 바다

우울우울 열매

우울한 감정을 겪게 되면서부터 이상하게도 저는 그 감정에 매료되었습니다. 즐겼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엄밀히 말씀드리면, 그 감정만을 즐겼던 것은 아닙니다. 더 심한 것이 있었거든요.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 우울한 감정은 시도 때도 없이 휘몰아쳤습니다. 그 감정은 저를 압도했고, 저의 말과 행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그 감정이 아무런 이유 없이 다가왔던 것은 아닙니다.

     

앞 장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제 가족은 역기능적 가족이었습니다. 저는 폭력과 압제에 상당히 노출되어 있었고,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할 줄 몰랐으며, 늘 타인의 눈치만 보는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가 지독하게도 싫었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눈치를 봐야 했고, 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폭력에 대한 공포가 컸기에 친구가 손을 살짝만 들어도 기겁을 했습니다. 게다가 학교는 지켜야 하는 수칙이 많았고, 저는 그것들이 마치 자유를 억압하는 올가미처럼 느껴졌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였으니까요.

 

위의 이유와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여러 이유들로 인하여 학교에서의 우울감은 최대로 증폭되었고, 비난과 폭력이 난무했던 집에서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어디에 있든지 ‘집에 있지 못한 기분’이 들었고, ‘쫓기는 느낌’이 들었으며, ‘높은 벽이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방금 말씀 드린 세 가지는 우울증을 이루는 아주 기본적인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안 하셔도 됩니다. 원치 않는 분은 이 단락만 넘어가시면 됩니다.) 눈을 떠봤는데 낯선 곳이고, 뒤에서는 누군가 몽둥이를 들고 따라오고 있으며, 도망치려고 봤더니 앞에는 큰 벽이 가로 막혀 있다고 말입니다. 이런 느낌을 계속 받으면 누군가는 두려움에 휩싸이거나, 그걸 넘어 공황에 사로잡히거나, 아니면 저처럼 우울의 바다에 빠져 버릴 것입니다.

  

앞서 우울한 감정만 느낀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리고 그 우울한 감정을 즐겼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식으로 그렇게 했냐면 제가 비참해지는 상상을 하는 식으로 했습니다.      


집이든 학교든 어디서든 저는 위의 세 가지 느낌 때문에 우울한 감정을 느꼈고, 그럴 때면 제가 버림받는 상상, 나 자신이나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세상을 떠나는 상상 등의 비참한 상상을 하며 우울감을 증폭시켰습니다. 어쩔 때는 반대로 완전히 상반되는 내가 영웅이 되고, 연예인이 되고, 좋아하는 친구와 단 둘이 극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상상 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상상, 즉 몽상은 그렇게 저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몽상을 하는 습관으로 인해 잠에 일찍 들지도 못했고(정확히 말하면 그 반대입니다. 저는 내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마음껏 공상의 세계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잠자리를 하루 중 가장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잠을 자지 않고 최대한, 아주 최대한 많이 다양한 상상을 하며 밤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게 일곱 살 때부터였습니다.) 불면증을 아주 자연스레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있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학교 수업시간에도 위에서 말씀드렸던 그 불편한 기분은 저를 사로잡고 있었고, 저는 상상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아주 쉽게 집중을 잃었고, 불안한 감정이나 분노에 사로잡히기도 했으며, 공황을 정말 자주 경험했습니다. 그냥 초등학교 때부터 공황을 달고 살았다고 보면 됩니다. 수업시간에 제 이름이 불리면 공포가 심장을 녹여버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화장실에서 누군가 옆에 서 있으면 그게 무서워 제대로 소변을 봤던 적이 없습니다. 저는 소변을 보기 위해 친구들이 사용하지 않는 멀리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곤 했습니다.      


우울증에 잠겨 살면서 비참한 상상을 자주 하다 보면, 그 상상이 현실처럼 느껴지거나 마치 나의 목적지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도래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이후로도 우울증에 잠겨 살게 되면, 지금의 현실이 아닌 다른 삶을 원하게 되고, 결국 자살을 꿈꾸기 시작하게 됩니다.      


우울증의 바다에 빠져 사는 동안 저는 천 번도 넘게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메인이미지 - Pixabay로부터 입수된 Free-Photos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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