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느껴보는 감정
우울증에 대한 글을 꼭 써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우울증과 공황장애의 오랜 친구니까요. 아, 불면증도 꽤나 가까운 친구사이입니다. 그런데 뭐랄까, 고통스러웠던 저의 삶에서 매 순간 저를 더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늘 우울증과 공황장애였습니다.
그렇다고 불면증이 힘들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곱 살 때부터 불면증은 저를 정말 지겹도록 힘들게 했었습니다. 밤새 절대 잡히지 않고 끝없이 윙윙대는 모기 같은 존재랄까요. 정말 없애버리고 싶었지만 어떻게든 제 포위망을 빠져나간 그 녀석은, 자신의 존재를 잊기도 전에 다시금 나타나서 저를 괴롭혔지요.
아무리 그래도 불면증은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가져다주는 고통의 지수에는 못 미치는 듯 했습니다. 불면증이 밤새 나타나는 모기라면, 우울증은 집채만 한 바위가 내 온 존재를 짓누르는 느낌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공황장애는 누군가 내 머리와 가슴에 계속해서 폭탄을 터뜨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불면증은 그나마 신사다웠던 것이지요.
(사실 불면증을 모기로 비유하기 보다는 더 강력한 것을 사용했어야 했는데, 우울증과 공황장애와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쓰다 보니 애매한 표현이 나온 것 같습니다. 저는 20대 중후반까지 불면증을 얼마나 혐오해왔는지 모릅니다. 어릴 때는 그나마 체력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며 불면증 때문에 정말 죽고 싶었던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또한 불면증은 저의 우울한 감정의 증폭제이기도 했지요.)
처음 우울증을 맞닥뜨렸을 무렵, 저는 그것이 도대체 무슨 기분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가 아마 초등학교 3학년 즈음이었으니까, 아직 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 정도의 감정만 인식했을 때였지요. 그래서 우울감을 느꼈을 당시 그 기분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아무런 용기도 욕구도 생겨나게 하지 않는(오히려 없애버리는) 그 감정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일말의 감도 잡지 못했었습니다.
특히 우울은 제가 학교에 있을 때 강하게 밀려들어왔는데, 그럴 때면 학교에 있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떠나 제가 가고 싶었던 곳은 집이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생 때부터 저는 학교를 벗어나 집으로 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말이지요.) 그렇게 저는 자주 아팠고, 엄마와 자주 병원에 갔고, 늘 일찍 조퇴했습니다. 학교와 집에서 저는 아픈 아이였지요. (그것은 고등학교까지 이어졌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몸이 여기저기 아파서 병원을 다녔던 일은 단지, 저의 집을 향한 갈망을 충족시켜주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더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정말 아팠던 것은 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역기능적 가족으로 폭력과 비난이 난무하는, 자신의 감정은 늘 숨겨야 하고, 진심보다는 기만과 가장이 가득한 그런 가정이었습니다. 부모님은 걸핏하면 다퉜고, 처리되지 못한 분노와 화는 저와 제 누나에게 이어졌습니다. 고통의 화살촉이 빙글빙글 돌며 모두를 괴롭히는 그런 가정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제가 아프게 되면서 매일처럼 폭탄이 터지던 가정은 약간의 휴전상태가 되었습니다. 제가 아픔으로 인하여 어머니와 아버지는 싸우지 못하고 저에게 집중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저는 그것이 좋았습니다. 가정에 평화가 찾아온 듯 보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더 아파 보이려 했던 것 같습니다. 엄마 아빠가 내게 더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향해 불화살을 쏘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제 우울증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우울한 감정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는지 모르면서도, 막상 시작되니 집에는 가고 싶고(엄밀히 말해 집에 가고 싶은 것이 아니지만, 방향을 잘 모르니 그렇게 느꼈던 것이지요.), 몸은 아파지고, 그로 인해 싸움이 가득했던 가정에 약간의 소강상태가 찾아오고, 그것을 보면서 내가 아픈 것이 가정에 도움이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고.
이렇게 저의 우울증은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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