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관계 결산

마음감옥 밖에서 만난, 삶의 놀이터

by 솔깃설깃

24.12.21.(토)


올해 나의 연말은 이례적으로 분주하다. 11월을 시작으로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가 연말 모임의 유무로 재편성되고 있다. 연말을 즈음하여 “우리 한번 뭉쳐야지?”라고 할 수 있는 관계들과 그렇지 않은 부류로 대별되는 다른 측은 각각 연말모임의 결성 유무로 연속성의 유효함을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동시에 이번 한 해 동안 서로에 대해 '정서적 자원'으로 헌신했는지에 대해 결산 보고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올 한 해 관계적 측면에서의 결산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다채롭고 풍성했다. 충만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는 경험 해보지 못한 다양성과 파격성, 확장성으로 매우 뜻깊다고 할 수 있겠다.




현재 나의 관계성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관계의 중요도와 애착도가 여러 관계들에 크지 않은 편차로 위계가 없다는 점이다. 좀 더 사적이거나 좀 더 목적성이 있다거나 그 각각의 특색은 저마다의 고유성을 갖고 있지만, 그들을 대하는 나의 정서적인 의존도 즉, 경계가 어느 그룹이든 비슷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직장에서의 인연으로 결성된 이른바, <무해클럽>_해를 넘기면서도 무해한 활동과 만남을 이어오는 중이다.


직장 내에서의 관계라면, 접촉은 많지 않지만 내밀한 사적 특정 이슈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누는 띠동갑 연하의 A, 업무전반의 실질적인 협력과 일상의 스몰토크 및 개인적 영역의 이슈 등 가장 소통을 많이 하는 연장자 선배 B, 정서적인 소통으로 서로의 일상에서 비타민 같은 활력을 선사 해주고 깨알진 이벤트를 만들어 모임을 주도하여 둘이, 때론 여럿이 함게 보게 되는 선배 C, 개인적으로 많이 가깝지는 않지만 B, C와 연결된 친분에 함께 어울리게 되며 가까이서 보고 호감을 쌓고 있는 D가 있다. 그 외에도 거리감은 어느정도 있지만, 각각 나름의 이유로 서로에게 갖게 된 호감을 기반으로 격려와 관심을 주고받는 여러 명의 동료들이 있다.




한편 개인적 영역에서는 십 년 만에 우연히 다시 뭉치게 되어 이제야 서로의 진면목을 다시 확인한 3인방(E, F)이 있다. 우리는 십 년 전 전업주부로 한 동네에서 만났던 사이이다. 그때에는 셋이 함께 뭉칠 이유가 없어서 지인 정도로 알고 있었던 것인데, 우연하게 오랜만에 만나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육아에서는 해방되었다는 점과 중년 이후의 인생 후반전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는 점, 각자의 결혼생활의 피드백을 소화하며 십 년 전에 비해서는 훨씬 성숙해진 모습으로 만나 개인의 영역과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경계를 잘 조정하며 두 번째 산에 오르기 위해 다양한 삶의 체험을 갈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뜻깊은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매달 모임을 전시회나 공연, 등산, 백패킹, 올레, 순례길 등 다양한 체험 등을 계획하며 만나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나의 오랜 인연인 대학교 동아리 학사모임의 여러 선배들은 매우 느슨하지만, 확고한 유대감으로 나의 인적 자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이다. 한 그루의 나무에서 뻗어나간 다양한 향방의 가지처럼 그들은 각자, 또 함께 나에게는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고 있다.


게다가 멘토 선생님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그룹테라피 모임(G, H, I)의 한 축도 나에게는 접촉의 빈도와는 상관없는 정서적 유대감으로 묶여 있는 한 그룹이다.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절 만난 우리는 치유 목적으로 서로의 치부를 드러낸 사이다. 고통의 시간을 함께 버티며 어려움을 나누었던 경험은 퇴색하기 어려운 귀중한 경험이며 소중한 관계의 자원이다.


그리고 나와 공통된 경험으로나 정서적으로 매우 밀착되어 있는 동생 J도 중요한 나의 지인이다. 우리는 관계에 있어 취약한 사람임을 고백할 수 있는 치유의 동지이기도 하다. 서로의 경계를 지키며 물러섰다 가까워짐의 유연함을 익히는 중이다. 그렇기에 서로의 부족함에 대한 진솔한 고백과 서로 동의한 경계 안에서의 조언과 관심을 주고 받고 있다. 우리는 서로 각자의 건강한 경계를 지향하지만 서로의 약함을 주저없이 고백하는 끈끈한 관계를 연습한다는 점에서 나의 선호도와 상관없이 매우 중요하고도 귀한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더욱 괄목할 만한 것은 나와 나의 관계이다. <나를 안다는 것>은 페이지 한장으로 정리할 수 없는 장중한 서사시이거나, 편년체의 역사서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산보고의 의미에서 한 페이지를 갈무리 하자면, 그 어느때보다 나는 나에게 집중하고 있다. 아니, 나에게 집중하게 되어지고 있다. 그것은 무수한 관계의 자극 사이에서의 균형잡기에 가까운 감각이다. 마치 진지한 관계로 진입하기 직전 집중과 무거움, 미지의 계시같은 운명적인 끌림을 직감하기에 이것은 나와의 연애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한 점을 방증하기에 좋은 사례라면, 이전에는 없던 이성들과의 만남을 시도하는 일련의 노력과 그에 따른 모종(?)의 성과다. 이처럼 나의 관계성은 매우 확장적인 모습으로 변형되고 있다. 나의 묵은 편견과 견고한 도식에 있어서는 많은 도전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성을 만난다는 것은 내 안의 취약함과 열등감, 수치심 등 내 안의 그림자를 직면할 수 있는 고통스럽지만 유익한 기회로 작용할 수 있는 특유한 경험이다. 그렇기에 이제 내 안의 무엇인지 모를 '그것'이 자기 다움을 갈망하며 여러 관계들의 역동 에너지를 흡수하고 발산하며 '자기다운 자기'가 되어가려 한다.


삶을 꽃피우기 위해 우리는 서로의 자질과 선의를 양분 삼는다.


한 인간이 성숙하게 되는 조건은 그가 성장과정에서 겪어야 할 모든 과정을 충분히 겪어야 하는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특히 올 한해 나는,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환경에 적응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자신을 노출하는 실험을 해 보고자 했다. 흔들리며 중심을 잡아가는 경험이 나를 성숙으로 이끌 것이라는 가정을 입증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의 관계에 대한 두 번째 특징은 여기까지의 이유로 일과 개인적 영역에서의 균형과 새로운 발견이라는 안정과 변화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안정적인 그룹은 무해하며 사랑스럽고 지지적인 한 축이며, 낯설고 조금은 위험?하며 편견과 오해를 충동질할 만한 한 축은 불가측 하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축은 한 가지 중대한 공통점으로 묶여 있다. 안정적 지지 그룹이든, 잠재력과 위험성을 내포한 미지의 그룹이든 그들은 나를 성장하게 할 대극(對極)의 양면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니 이제 나는, 나의 주변인들의 이름을 마음에서 한명씩 호명 해본다. 못다 말한 속내가 있을 것임에도 나에게 관심과 우정을 베풀어 준 그 하나 하나의 빛나는 호의에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의미없이 스쳐가기도 했고 각자 설명할 수 없는 오해로 멀어져 갔던 시절인연들의 아스라한 뒷모습을 눈에 담아본다. 아직까지 미묘하게 얽혀 미궁 속에서 서로를 짐작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호의와 의혹의 양가감정을 경험케 해주었던 데 대해서 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갖고자 한다.


이 가운데서 나는 나에게 물으려 한다. 성장이란 무엇인가? 성장은 지지적 환경과 비지지적 환경 모두를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성장은 불완전하고 불가측한 다양한 층위의 존재들과의 상호작용을 소화하며 정서와 지성을 살찌우고, 영혼과 육체, 생각과 감정의 변형으로 날로 새로운 융합에 이르는 과정이다. 즉, 성장은 '관계', '관계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그러므로 성장의 모습은 획일적인 어떤 이상적 상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을 가공해 가는 것이 아니라 미궁과도 같은 안개 속을 헤메이며 자신을 믿고 한 걸음씩 내딛는 행위의 연속적, 지속적 상태이다.


또한 성장의 모습은 모든 사람들 저마다에게 각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무수한 변수의 관계, 그 위치 에너지는 늘 변주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나면 가까워지고 그러나 설핏 멀어지며 언젠가는 떠나보낼 것이니 말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느낌이든 감정이든 사건이든 무엇이라도 그러하지 않겠나?


인간관계의 결산이라했지만, 어찌보면 관계를 무자르듯 시기별로 추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내 마음의 추가 왔다갔다 흔들린 모습들의 기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중에 흔들리며, 혹은 움츠러들기도 하며 어떤 궤적을 만들어 냈을 뿐인지도 모른다.


위의 이유로 인해 우리는 서로의 성장을 기적적으로 알아보기도 하고, 대개는 전혀 알아볼 수 없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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