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소품]고양이

한번쯤은 누구나 겪어 봤을 '경계와 그 너머의 틈'

by 솔깃설깃

소녀는 아마도 초등학교 3, 4학년쯤으로 보일 것이다. 몇 학년이더라도 또래보다 작은 축에 든다고 짐작할 만한 자그마한 몸집이었다. 그 또래 아이들이 그러하듯 늘상 볕에 나와 놀다 보니, 얼굴부터 팔 다리 모두 까맣게 그을린 것이 여름 볕에 싱싱하게 자라는 어린 푸성귀 같았다. 까무잡잡하다기보다는 그을은 얼굴이었고 그 꼬죄죄한 바탕에 까맣고 반질반질 빛나는 눈빛은 여간 야무진 것이 아니었다.


도심에서 멀지는 않지만,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이 동네는 해가 뉘엿할 때까지는 당산나무 아래에서 할마씨들이 오후 내내 소일할 만큼 면이나 리에 가까운 촌 부락이었다. 80년 후반의 개발 광풍이 스물스물 당도하기 직전인 만큼 동네의 분위기는 평화롭고도 완고했다.


현충일 휴일, 아침 해가 눈부시게 맑았다. 학교엘 가지 않아도 되지만 일찍 떠진 눈을 비비며 소녀는 절로 일어나 이부자리 위에 그대로 앉았다. 익숙치 않은 공간의 밀도가 소녀를 비몽사몽간에서도 어리둥절하게 했다.


소녀는 속으로 말했다.

“아 맞다 여기 목포가 아니지. 여긴 여수라고 했어. 함바집이란 데고. 몇 밤을 잤는데도 여긴 집이 아닌 거 같아.”


눈을 비비며 방 안을 둘러보자, 말간 햇살이 비춰들어 판넬로 지어진 가건물 안이 훤했다. 얇은 벽체 판넬에 걸치듯 얹은 유리창 위로 햇살이 송살거리자, 소녀는 마음에서 무언가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소녀는 마음을 간질이는 어떤 정체 모를 것들을 떨치려 고무 대야에 물을 받아 세수를 했다.


“워메 우리 **이는 학쪼도 안가는 날인디 아침부터 깨깟이도 씻고 그런다냐.”


소녀의 이모가 옆에서 소녀를 귀애하며 북돋았다. 이모는 바쁘게 일하는 와중에도 소녀가 하는 짓들을 눈에 애틋하게 담았다. 그렇기에 이모는 소녀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공구리 바닥이 거칠게 마감된 함바집 주방에서 소녀의 엄마는 기계적으로 소쿠리에 받쳐 둔 열무들이 숨이 죽었는지 확인하는 참이었다.


소녀의 엄마와 이모는 함바식당을 함께 운영하느라 소녀를 데리고 이 시골 아닌 시골 동리로 전학 온 지 이제 막 일주일이 되었던 것이다.



소녀는 채비할 것도 없이 맨몸으로 함바집을 나섰다. 시내에 비해 지대가 높은 동네는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날씨 좋은 날에는 더할 나위 없이 쾌청했다. 바람이 제법 부는 날이면 팽나무인 당산나무의 사방 팔 뻗은 가지들에서 나뭇잎들이 찬연히 흔들렸다. 소스락거리는 나뭇잎들의 잔요동은 바람에 더해 시원하고 청량한 기분을 자아냈다.


소녀는 함바집에서 오 분 정도 아래로 내려가면 낮은 단층의 슬레트 지붕들을 올린 시골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동네’로 발길을 향했다. 사실 그 동네가 아니라면, 얕아도 꽤나 골 깊은 뒷산 밖에는 없을 터였다.


소녀는 아까부터 어떤 이끌림으로 제 몸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분명 자신이 몸을 일으키고 제 손바닥으로 얼굴을 부비며 세수했지만, 아무 생각도 일지 않았는데 곧바로 일련의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소녀의 의지보다 딱 한발 앞서 목소리 없는 명령이 소녀의 다음 행동을 지시하는 듯했다. 그렇게 소녀는 제 의지는 없이 후영후영 비탈길을 따라 동네로 내려갔다.


동네의 입구는 텃밭들이 네 것 내 것의 구분 없이 너른 들판에 불규칙한 경계로 가꾸어져 있었다. 소녀는 마을 어귀의 돌담을 따라 걸었다. 소녀는 흙길과 씨멘트 바닥이 계획 없이 교차하는 길들을 따라 걸으며 담벼락 아래서 비집고 피어난 토끼풀을 뱅뱅돌려 꺾는다던가, 훌쩍 키가 큰 봉숭아 줄기의 투명한 연두색 사이에 터뜨릴 봉숭아 씨가 여물었는지 눌러 보기도 하느라 한 걸음 한 걸음이 더뎠다.


그러다 문득 소녀는 길에서 어른 허리만큼은 내려앉아 자리 잡은 집을 보았다. 소녀의 눈에도 저 안에는 백설 공주의 난쟁이들이 사는 집인가 싶게도 무척이나 조그맣고 낮은 집이었다. 오래전에 칠했을 노란색의 페인트들이 빛바래기는 했지만, 산뜻하게 느껴졌다. 작은 마당에는 키 작은 꽃과 풀들이 좁은 자리를 다투며 옹알거리는 듯 새초롬히 가꾸어져 있었다. 마당과 집의 세간들은 하나같이 오래된 것들이었지만, 집주인의 손길로 살뜰하게 가꾸어온 것이 역력히 보일 만큼 단정하고 깨깟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 집의 마당 안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빛으로 가득했다. 섬광처럼 내리꽂아 바스라진 듯한 햇살 다발은 소녀의 눈이 버텨내기 힘들 정도로 많은 햇살 조각이 반사되어 아릴만큼 눈부셨다. 소녀는 의아했다. 그것은 햇살임이 분명한데도 소녀의 평생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빛이었기 때문이다.


그 집 앞마당에만 쏟아붓듯 내리꽂듯 가득찬 빛의 광휘를 소녀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것은 불가항력적인 빛의 홍수였다. 소녀가 어른이 되어가며 그 장면에 회귀할때마다 그 빛은 언제나 그 이미지의 선명한 눈부심과 온기로 소녀가 언제 어느 시간대에서 기억을 소환하더라도 손상없는 선명도로 그자리에 여전했다.


소녀가 한참 후에야 그 장면을 떠올리면, 기억이라는 믿을수 없는 도구로 치환된 빛감각이 어찌 그리 여전한가 싶더란다. 누군가는 그 말을 듣더니, 빛은 근원의 질감이란게 있기 때문에 그렇게 영원한 기억으로 손상없이 매순간 도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하기도 했다. 지당한 말이다.



소녀는 휘황의 빛에 둘러싸여 먹먹한 눈을 어찌 떠야하나 싶었다. 손바닥으로 눈을 반만 가렸다가 다시 두 쪽을 가린다. 빛은 압도적이었다. 그냥 눈을 질끈감고 한참을 그렇게 기다렸다. 시간이 멈춘듯 했다. 공기는 아래에서 위로 흐는것도 같았다.


살포시 눈을 떠보니 먹먹한 가운데서도 그럭저럭 눈은 빛에 적응한듯했다. 물론 그것은 적응이라기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것이엇다. 볼수는 있을것 같았다. 눈을 부러 깜빡 깜빡거려본다.... 천천히.....


"응? 노오란 솜뭉치"


아니다. 배냇털이 아직 남은 어린 고양이 한마리가 기척도 없이 홀연 나타나 있었다. 솜털에는 투명한 황금빛이 투과하며 훈풍에도 하늘거렸다. 누가 보더라도 고양이라는 것은 모를리가 없었지만, 소녀가 보기에 그것은 고양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빛에서 새어 나온 우주였다. 아..... 하는. 탄성만 흘러나왔다.


소녀는 이제 그것에게 이름을 빼앗긴 눈이 되었다.

소녀의 입술이 들썩거렸지만, 그것을 부를 수 없었다.


"그...ㅇ

ㅓ.....

으...ㅇ "


그것은 언어 이전의 자리를 유유히 거닐뿐이었다.


갑자기 소녀는 몸이 들릴듯 가벼워졌다. 발이 들썩들썩 거리더니 뒤꿈치가 땅에서 떨어지는게 아닌가? 그러나 고양이라는 말을 상실하고나서 그녀는 빛을 빛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되었고 발을 발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점점 무게를 잃어가는 자신의 몸을 무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대체 이건 무엇인가? 소녀는 발이 땅에서 한 뼘이나 떨어져 위로 점점 솟구쳤다. 하지만 소녀는 말을 잃버렸고, 고양이, 빛, 남의 집, 동네, 나무, 하늘 모든 이름을 갑자기 소실해버렸기에 뭐라할 수 있는 의지조차 남지 않았다.


순간, 소녀는 찰나에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선택이라는 단어가 아니었지만 '선택한다는 감각과 그것을 안다는 앎의 형태'라는 복합적인 나타남이었다.


"남을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소리없이 언어없이 그녀에게 알려진 물음이 순식간에 도착했다.

그것은 언어가 아니었지만 앎이란 애씀없이 알려지는 것이고, 언제나 정확한 곳에 도착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알려진 것이다. 그녀는 어떤 결정적인 한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맞다! 그것이 선택이지!


그녀에게 언어의 감각이 꿈틀거리며 살아났다. 그녀의 발은 조금씩 땅을 향해 내려갔다.


"오! 난 떨어지는 건가? 아! 그런데 올라가는 것도 두려워!"


문득 전학온지 얼마 안되어 적응하느라 괴로운 이곳이 여수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녀의 발가락이 땅에 달을락말락 했다. 그와 동시에 이 낯선 곳에서 다시 또 어떤 낯선 곳으로 소환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점점 휩싸였다.


"난 남겠어요."


소녀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눈 앞이 어둠 속에 잠겼다. 아찔한 광휘와 흑암을 오가며 소녀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그러다 소녀는 자신이 넘어진 것인지 추락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중간지점에서 미세한 폭신함을 느꼈다. 어지러움에 휘청인건지도 결국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실금이 보이는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그 빛으로 나가 힘껏 힘을 주니 눈이 떠졌다. 주변은 아까 그 인기척 없는 아무개의 집.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었다. 고양이만 없었을 뿐이다.


빛의 광휘는 기척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오후의 늘어진 오렌지 빛이 마당 안의 집기들에 드리워진 탁한 회색빛에 미력한 온기를 더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매우 평범한 현충일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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