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돗가히

[프롤로그] 할망의 알맹사록

by 솔깃설깃


프롤로그


문명 이전 모계부족 사회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압축적 개념을 담은 단어를 창작하여 낯선 느낌을 주도록 의도했습니다.





"내 어린 손녀야. 너의 다음 아리무릇1)을 알려주련?"


어린 소녀는 할망이 그녀를 잡아 이끌며 여윈 무릎에 앉혀 놓자, 가슴이 도톳해졌다. 할망은 그녀를 사록2)하며 귀히 여기기에 그녀의 발그레한 뺨을 찬찬히 쓰다듬으며 어루만졌다. 옆에서 사슴 가죽을 무두질하던 소녀의 어미는 돌 칼날에 뭍은 가죽 찌꺼기를 닦아내며 할망을 향한 왼편 무릎을 세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소녀는 천진하게 웃으며 작은 제 두 손바닥에 입김을 불어 할망의 두 눈에 가져다 댔다. 사록한다는 몸짓이었다. 할망의 눈은 넘실대는 아란바라3) 바다 빛을 닮았지만, 무녕아리4) 아래서도 투명해지지 않을 만큼 짙푸른 남색이었다.


“너히 그때 가서는 기억나지 않을 꺼무룩한 다음 다음의 아리무릇 이야기란다.”

“야히! 들려주와! 듣고싶사!”


소녀는 오동통한 두 팔을 할망 품 안에서 버둥거리며 재촉했다. 소녀의 머리칼은 묵힌 옻빛과도 같았다. 눈빛 또한 새벽녘의 흑암처럼 짙고, 밝앗괸몰5)처럼 맑았다. 천진한 호기심으로 고망할 때마다 달빛과 별빛에서 가져온 차가운 푸른빛을 반사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녀의 안광이 늑대의 것과 같다고 무서워 하기도 하였다.


“너히 사록하고 사록하란.”

“야히 할망 그리할난!”

“너히 동쪽의 나른 땅으로 못올6)들을 다못7)하여 오랜오랜 살란.”

“야히.”

“그러다 어난 먼 다음에 꺼정8)하거들란, 너는 한 사난9)을 도론10) 사록하란.”

“야히.”

“고 사난은 사록을 못호는 사난이라.”

“야히.”

“사난은 달론11) 아들이란.”

“........”


소녀는 한 말알자욱도 빼놓지 않고 똑똑히 그녀의 머리와 가슴, 손바닥에 새기며 들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태반이었지만 그것은 크게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할망의 마지막 알맹그른12) 사록은 그녀의 심장에 올올히 스밀것이기 떄문이었다.


할망은 어린 그녀를 안은 채, 남색 눈빛에 부연 탁기를 머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아주 먼 아리할망13)들로부터 미리 선택받은 오돗아고14)로서 살아내기 위해 할망의 사록을 그녀 가슴 가장 밑바닥에 차곡히 담아 올렸다.


그녀는 장성하여 일족들을 이끌고 180개의 달을 동진하여 멀고 먼 동쪽의 가장자리까지 이르렀다. 오돗가히는 일족이 아히를 낳을 때 아달들, 딸들을 가리지 않고 애틋하게 낳는 것을 중히 여겨 온 마을로 서로 다정히 살도록 돌보고 가르쳤다. 그리하여 그녀는 일족들이 아리할망의 알맹사록15)을 기억하는 동안, 가장 사록하는 오돗가히가 되었다.


그녀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아리무릇이 아닌 오돗가히의 생 안에서 달론 아달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천 개의 달 동안 오돗가히로 살다가 홀연 동쪽 가장자리의 동쪽 끝의 섬으로 가서 달의 문을 열었다고 하는데, 그 둘이 만나진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다음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