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단 한 번의 삶>
인생은 단 한 번의 여정이다. 1분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물병에 있는 물을 바닥에 쏟아버리면 다시 물병에 물을 담을 수 없듯 우리 인생도 비가역적이다. 후회와 반성 후에 맞이하는 새로운 시간도 전과 같은 시간일 수는 없다. 인생이라는 일방통행로 위에서 살아가는 필멸의 존재이기에 하루하루가 유일하고 소중하다.
이런 생각을 글로 쓰던 어느 날, 김영하의 책을 만났다. 단 한 번의 삶. 내가 쓰고 싶던 제목이었다. 텔레파시가 통한 듯 기뻤고 한편으론 쓰고 싶던 주제를 먼저 쓴 부러움이 동시에 들었다. 왠지 읽지 않았지만 벌써 읽은 듯 묘한 기대감도 있었다.
인생은 일회용으로 주어진다.
그처럼 귀중한 것이 단 하나만 주어진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쾌는 쉽게 처리하기 어렵다.
공평치 않게 주어진 그의 일회성 인생에 관한 이야기는 위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야기부터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 직업 군인이었던 아버지 이야기까지 내밀한 그의 가족사가 이어진다. 마치 오랫동안 알아 오던 지인과 이제 서로의 비밀을 터놓을 때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마주 앉아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읽는 내내 부드럽고 조곤조곤한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환청처럼 맴돌았다. 그리고 이어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더 친밀한 사이가 되어갔다. 이는 모두 독자인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과정이었고 특권이었다.
흔히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가 살면서 변해온 과정을 읽으며 테세우스가 타고 온 배보다도 큰 변화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가 선택하며 완성해 온 과거 삶의 모습들을 들으며 지나온 나의 삶의 장면들을 구획하고 정리해 보았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살게 도와준 선한 운명에 감사한다는 마치는 글은 글을 쓰며 사는 삶이 얼마나 선한 삶인지 알게 해 주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김영하의 책을 읽고 있으면 눈으로 읽고 있어도 귀로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긴 시간 그의 책을 읽어왔고 방송을 통해 그의 목소리나 화법이 익숙해진 이유도 있겠다. 설령 누가 쓴 책인지 모르고 읽을지라도 읽다 보면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며 대화를 나누다 나와 코드가 잘 맞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면 그가 쓴 다른 책을 찾아 읽고 싶어진다. 작가가 쓴 책들을 긴 호흡으로 읽어가다 보면 그가 오랜 시간 함께 가는 친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금 이 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것과 스스로 결정한 것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칵테일이며 내가 바로 이 인생의 칵테일 제조자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삶을 잘 완성할 책임이 있다.’ 살아보지 않은 인생에 대한 상실감은 태어나지 않은 인생과도 같다는 그의 글을 읽으며 위안받고 남은 삶에 대한 용기를 얻었다. 책은 분명 이렇게 나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같은 주제의 책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다르게 쓸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시중에는 한 주제로 무수한 책들이 나와 있지만 나만의 이야기로 다르게 쓸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글쓰기를 시작하는 나에게 누구의 격려보다도 힘이 되었다.
책에서 그가 삶에 대해 내린 결론은 독자인 나에게는 서론이 될 것이다. 즉 책의 내용을 발전시켜 완성하는 것은 내 고유의 몫이자 권리이다. 내가 써 내려갈 글과 삶이 그와의 대화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의 책 속 문장들이 씨앗이 되어 단 한 번의 남은 삶에서 내가 원하는 꽃으로 피어나고 열매 맺으리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