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1984>
종이에 무얼 쓴다는 것은 중대한 행위였다.
1984년 4월 4일
1984년이라는 것이 확실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날에 와서는 1, 2년 내의 어떤 날짜도 꼭 찍어 말하기가 불가능해졌다.
한참 동안 그는 멍청히 종잇장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당초에 자기가 뭔가 말하려고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했다.
윈스턴은 일기를 쓴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사형을 받든 지 25년 강제 노동형을 받을 것이 분명한 세상에 살고 있다. 텔레스크린과 마이크로폰을 통해 24시간 감시받는 이곳 오세아니아는 세 계급으로 나뉘는 계급 사회다. 인구의 2%를 차지하는 지배 계급인 내부 당원과 그들을 위해 실무를 담당하는 외부 당원 그리고 85%를 차지하는 노동자 계급인 프롤이다. 외부 당원은 24시간 철저하게 감시받는다. 하지만 프롤은 텔레스크린조차 필요치 않을 정도로 우민화되어 있다. 노동에 지친 그들에게 싸구려 오락거리를 던져주기만 해도 프롤들은 쉽게 선동된다.
2025년에 사는 나는 어떠한가. 자본이 계급이 되는 사회인 지금, 만약 세 계급이 존재한다면 나는 어떤 계급에 속할까. 넘쳐나는 온갖 오락거리들에 심취하며 나도 모르게 거대 자본이 원하는 대로 휩쓸리며 살아가는 나는 프롤인가. 곳곳에 설치된 CCTV로는 동선이, 내가 쓰는 카드와 SNS 등으로 나의 모든 정보가 빅데이터가 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는 윈스턴과 같은 처지인가. 연도마저 조작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살아가는 윈스턴의 혼돈이 무겁게 다가온다.
언론을 허위로 조작하는 일이 직업인 윈스턴은 점점 자아를 상실해 가던 중 텔레스크린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몰래 일기를 쓴다. 일기를 쓴다는 건, 종이에 무얼 쓴다는 건 중대한 행위였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 생각, 감정마저도 철저하게 통제받는 사회에서 일기를 쓴다는 것은 죽음까지도 각오한 행위였다.
기록을 조작하고 인간의 기억마저도 지배하려는 당은 신어를 만들어 사람들의 사고를 통제한다. 언어의 한계가 사고의 한계가 되어 우리의 생각과 인식의 경계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적용한 것이다. 애매모호한 단어는 없애고 꼭 필요한 단어만 남겨 당이 원치 않는 것은 말과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사상의 자유란 없었다.
SNS에서 단문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면 내 생각을 다 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답답할 때가 있다. 그리고 몇 개 되지 않는 단어로 짧은 대화를 하다 보면 내 생각도 덩달아 짧은 단문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단문과 쇼츠가 넘쳐나는 지금 우리들의 사고도 얕아지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 신어사전을 만들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통제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의 생각이 짧아지길 바라는 누군가 있는 것은 아닐까.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빅 브라더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스탈린의 닮은 꼴이라는 빅 브라더의 얼굴을 보면 어디서 보아도 시선이 마주쳐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당의 최고 권력자인 빅 브라더의 존재는 중요치 않았다. 결코 죽지 않을 그는 당의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다. 윈스턴은 일기를 쓰고 자유와 사랑을 추구하며 당에 저항한다. 하지만 프롤로 위장한 사상경찰과 당에 7년 동안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결국 고문을 당한다.
<1984>는 조지 오웰이 실제로 피를 토하며 쓴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윈스턴이 고문당하는 장면의 묘사는 오웰이 얼마나 처절하게 써 내려갔을지가 절절하게 느껴진다. ‘사랑의 부’라는 수용소에서 그는 온갖 전기 고문과 알 수 없는 주사를 수도 없이 맞는다.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쥐를 이용한 고문은 가장 사랑하는 줄리아마저 배신하게 만든다. 고문은 그의 인간성을 말살하고 파멸시킨다. 무자비한 폭력 앞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2024년 12월 3일, 계엄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우리는 자유를 말살당할 뻔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자유를 찾았지만, 여전히 자유의 가치를 지키려 노력해야만 지킬 수 있다. 인간성마저 말살당했던 윈스턴이 지금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자아를 상실해 갔던 윈스턴이 살았던 1984년이라는 시간대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지금 나는 몇 년도에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