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혼모노>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큭큭, 큭큭큭큭
서슬이 퍼렜다.
서슬 퍼런 작두에 베인 듯 발바닥에서 시작한 통증이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너 지금 존나 흉내만 내며 사는 거 아니냐는 작가의 조소가 왠지 나를 향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30년 차 박수무당인 문수는 언제부턴가 접신이 되지 않게 된다. 신기가 떨어진 가짜 무당이 되어버린 인물이다. 문수의 집 앞에 스무 살의 어린 무당 신애기가 이사를 온다. 그리고 자신에게 들어왔던 장수 할멈이 신애기에게 옮겨 갔다고 여겨 문수는 무당으로서의 정체성에 위기감을 느낀다. 문수는 자신이 더 이상 진짜 무당이 될 수 없음에 좌절하고 절망한다.
문수의 오랜 고객이었던 정치인 황보는 문수의 신기가 떨어진 것을 눈치를 채고 신애기에게 굿을 맡긴다. 이를 알게 된 문수는 신애기의 굿판에 찾아가 정면으로 맞선다. 더 이상 접신이 되지 않는 문수는 신칼로 맨몸을 긋고 작두를 탄다. 작두에 베인 발바닥에서는 뜨겁고 진한 피가 흥건하다.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문수는 진짜 무당과 가짜 무당을 넘어 진짜 자신이 된 듯한 인식에 도달한다. 그리고 신애기가 들었던 말을 모두에게 외친다.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큭큭, 큭큭큭큭.’
바나나 우유와 바나나맛 우유 사이에서 무얼 선택할지 골몰하여 선택해도 진짜 바나나가 든 우유는 아니다.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의 그럴싸한 문장 일부를 가져오거나 흉내 낸 글이라면 그것이 진짜 나의 글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글로 더 이상 그릴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까지 다다랐을 때 인공지능이 알려준 문장에 슬쩍 올라타 마무리한 글이 진짜 내 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짜 나로서 살고 있는가.
성해나 작가가 묻고 있는 질문에 답하려면 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어쩌면 진짜 내 모습이 무엇인지부터 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 짧은 인생에서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래서 그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존나 흉내만 내며 살기엔 너무 짧고 허무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