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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전히 글이 가지는 의미가 있다면

한강 <빛과 실>

by Little Prince

2025년 현재 인공지능은 AGI 이전 단계라고 한다. AGI는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약자로 사람처럼 유연하게 사고하고 학습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말한다. 아직 인공지능은 인간 수준의 일반 지능에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지금의 속도로 가늠하자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AGI 시대가 곧 올 것만 같다.


인공지능 간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AI끼리 소통한다는 의미는 각자의 데이터를 주고받는 일일 텐데 이는 ‘칩 간 연결(chip-to-chip interconnect)’을 통해 가능하다고 한다. AI끼리 칩을 연결하면 각자가 가진 데이터 모두를 완벽하고 깔끔하게 전송할 수 있다. 인공지능 A와 B는 서로 소통하며 오해할 일이 없는 것이다.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숱한 오해의 근원은 어쩌면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에 남은 데이터 때문이 아닐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언어를 통하여 타인에게 오롯이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듯하다. 미처 표현하지 못한 감정의 조각들이 마음속에 남아 맴도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온전히 내 뜻을 전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뜻을 충분히 이해했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나만의 필터를 통과시키며 해석하기 마련이고 그런 과정을 거치며 오해의 싹이 자라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글은 어떨까. 한강 작가는 <빛과 실>에서 어릴 적 쓴 시를 통해 글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마음과 마음 사이를 연결해 주는 실이 사랑을 담은 글이라는 한강 작가의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본다.


칩 간에 이루어지는 완벽한 데이터 전송이 주지 못하는 글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완전한 소통에는 이를 수 없다 고 해도 인간이 글을 쓰고 읽는다는 행위가 지니는 가치는 무얼까. 글을 읽는 동안 우리 뇌와 마음속에는 은하수의 별만큼이나 많은 연결이 일어난다. 텍스트를 고스란히 입력하는 기계적인 행위와는 다르다.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통찰과 사유가 담긴 정제된 텍스트 안으로 깊이 들어가 나만의 의미를 캐내는 작업이다. 그래서 문장 하나, 글 한 편에 담기는 타인의 인생을 읽고 나올 때면 우리는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한강 작가가 말한 것처럼 글이란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주는 실 같다. 얇고 가느다랄지라도 그 실은 무수한 별의 수만큼이나 많은 삶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낸다.


또한 글은 우리에게 ‘고요한 눈’을 가질 기회를 준다. 손만 뻗으면 디지털 정보 과잉의 늪에 빠지기 쉬운 현실에서 글을 읽는 동안만큼은 고요함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읽는다는 것은 문장을 따라 들어가 작가의 마음 깊은 곳에 닿아 내 안에 머물게 하며 그 곁을 가만히 어루만지는 일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백을 음미하며 문단과 글 숲에 이르는 동안 활자의 길 위에서 충분히 머물고 사유할 수 있다. 책장을 넘기는 작은 움직임에는 세상이라는 퍼즐을 맞춰가는 느린 호흡이 깃든다. 고요한 눈으로 글을 읽을수록 어수선한 세상도 고요히 바라볼 수 있는 관조의 힘이 생긴다.


글을 쓰고 읽는 일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대화이자 독백이다. 작가가 건네는 말에 대한 화답은 독자의 몫으로 읽는 이에 따라 무수한 대화가 완성된다. 글은 독자의 마음에서 무엇으로도 완성될 수 있다. 미완성을 완성하는 것은 독자이다.


글을 쓰고 읽는다는 건 누적된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과는 다르다. 작가 삶의 데이터 중 취사선택하여 긴 시간 사유의 과정을 거치며 탄생시킨 미완의 이야기를 나만의 렌즈로 들여다보며 새로운 이야기로 완성하는 것이다.


프롬프트 한 줄 입력으로 몇 초 만에 완성되어 떨어지는 글의 덩어리를 보면 한없이 느린 속도로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몇 줄의 문장이 야속할 때가 많다. 하지만 버텨낸 시간 속에서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지게 하는 힘이 자라고 있음을 믿는다.


<더 살아낸 뒤> 한 강


더 살아낸 뒤

죽기 전의 순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인생을 꽉 껴안아 봤어.

(글쓰기로)


사람들을 만났어.

아주 깊게 진하게

(글쓰기로)


충분히 살아냈어.

(글쓰기로)


햇빛.

햇빛을 오래 바라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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