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이상한 건 인간의 삶에는 그야말로 멋지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내게는 서로 속이면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또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을 갖고 있는 인간이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다자이 오사무는 평생 우울, 자기혐오, 알코올과 약물 중독, 자살 시도에 시달리다 결국 39세에 내연녀와 동반 자살하며 생을 마감한다. 그가 쓴 <인간 실격>은 마치 그의 인생을 담아 놓은 듯 닮았다.
오바 요조(大庭 葉蔵). 인간 실격 주인공의 이름을 해석하자면 ‘큰 마당, 숨겨진 잎’이다. 한 문장으로 하자면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에서 가장 연약한 자아를 꽁꽁 숨기고 사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식과 위선이 많은 인간의 모순에 예민하고 적응하기 어려웠던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익살’이라는 가면을 선택한다. 사람들 앞에서 늘 과장된 몸짓, 바보 같은 농담을 한다. 이는 타인을 즐겁게 하려는 배려가 아닌 나를 진지하게 보지 말아 달라는 무언의 요청이었다. 모임, 학교, 술자리에서는 광대가 되기를 자처하며 스스로 망가지는 것을 선택한다. 웃음을 주는 동안만큼은 타인에게 거부당하지 않고 평가받지 않으며 주도권을 쥘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익살의 가장 큰 기능은 인간에 대한 공포와 자기혐오를 숨길 수 있는 차단막이었다. 이해받으려다 실패하면 상처받으니 욕망 자체를 포기해 버리고 웃기는 인간으로 남는 쪽을 선택했다.
성인이 된 요조의 삶은 서서히 나락을 향해 곤두박질친다. 술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며 여성과 함께 자살을 시도하지만, 혼자만 살아남는다. 자기혐오는 극에 달하지만, 여전히 술과 여자들에게 의존해 살아간다. 그러다 요시코라는 순진한 여성을 만나 이 사람이라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결혼한다. 하지만 평온한 일상도 잠시, 요조는 요시코가 다른 남성에게 겁탈당하는 것을 목격하고도 달아난다. 자신에게 구원이 될 수도 있었던 요시코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극한의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빠진 요조는 구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임을 스스로 확인한다. 요조는 급기야 약물 중독에 빠지고 요양 시설에 감금당하며 결국 사회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완전한 탈락 상태에 이른다.
요조는 인간으로서 실격인 인물일까. 이 소설을 읽고 한참 동안 ‘인간의 자격’이란 단어를 곱씹었고 아직도 뚜렷한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인간의 조건, 자격이란 무엇인가. 과연 인간임을 판가름할 기준은 있는가. 그 기준은 누가 세우는가. 사회가 세워주는 것이라면 그대로 순응하며 적응해야만 하는가. 그 기준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은 실격 처리되어 탈락하고 사라져야만 하는가.
개인은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개인은 시대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요조가 살았던 시대는 어떠했는가. 이를 생각해 보려면 다자이 오사무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1909년에 태어나 1949년에 사망한 그는 근대화와 패전을 겪은 인물이다. 이때는 전통적인 공동체의 가치가 붕괴하는 자리에 아직 개인의 자유가 자리 잡지 못하는 시기였다. 근대 사회에서 개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유로운 개인처럼 살지만 동시에 사회에도 잘 순응해야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자유롭지만 실패하면 전부 개인의 탓이 되는 시대적 조건 속에 던져진다. 모두가 가면을 써야만 하는 시대임을 너무나 일찍 예민하게 감지한 요조는 극단적 페르소나인 익살을 선택했다.
스스로 책임져야만 살아남는 사회에서는 잘못을 저지르면 외부가 아닌 내면의 문제, 존재의 문제로 떠안게 된다. 즉 요조는 자신을 잘못된 존재로 느끼고 끊임없이 침잠하고 사그라들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라는 요조의 독백은 어쩌면 그 시대를 살았던 순응하지 못하면 배제되는 당시 사람들을 대신하는 목소리였을 것이다.
요조는 소설 속 과거의 인물이지만 사실 지금이 더 요조적인 시대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익살이라는 가면보다 훨씬 정교하고 다양한 페르소나가 존재한다. 직장에서의 나, SNS상에서의 나, 가족과 친구 앞에서의 나 등 여러 버전의 가면이 필요하다. 연봉, 스펙, 조회수, 팔로워 수 등 성과 수치가 존재 가치로 환산된다. 수치로 증명하지 못하면 실패한 인간이 되고 일을 못 한 게 아니라 잘못된 인간이 될 수 있는 시대이다.
나약하면 경쟁에서 뒤처지고 자기 관리에서 실패한 인간이 되고 만다. 관계는 많아도 고립은 더 깊어질 수 있는 지금 시대에서 과거 요조가 술과 약물과 방탕에 빠졌다면 우리는 무한 스크롤과 일중독, 자기 계발 중독 등으로 쉽게 도망칠 수 있다. 그래서, 다들 성공해서 잘 사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과 상대적 박탈감이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다는 요조의 자조에서 위로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하지만 도망치는 자에게는 비난 대신 손길을 내밀어주어야 한다. 자기혐오 대신 자기 연민을 허락하고, 고립 대신 불완전한 연결을 선택하고, 성과 이전에 존재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