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으로 돌아가는 방법

<마음치료 이야기> 전현수

by Little Prince

한 비단 장수가 비단을 짊어지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비단을 팔았다. 그에게 비단은 곧 전 재산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덕을 넘다가 용변이 마려웠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풀숲에 비단을 내려놓고 가까운 곳에 들어가 신경을 곤두세우며 용변을 보고 나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비단이 보이지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자신의 전 재산이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관가를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들은 원님은 사람이 아니라도 좋으니 주변에 무엇이 있었는지 물었다. 비단 장수는 근처에 돌부처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원님은 관졸들에게 돌부처를 가지고 오게 했다. 관가 마당에 끌려온 돌부처에게 원님은 엄숙하게 말하였다.

“네 눈앞에서 이 사람의 비단이 모두 없어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보아라.”

당연히 돌부처는 묵묵부답이었고 원님은 형틀에 묶고 곤장을 치라했다. 비단 장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어이가 없었지만, 무슨 깊은 뜻이 있을 것 같아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돌부처를 심문하고 곤장을 치는 일이 반복되었고, 이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에 퍼졌다. 마을 사람들은 관가 마당에 모여들었고 이 광경을 지켜보며 웃기 시작했다. 원님은 사람들에게 신성한 공무를 방해하는 사람은 잡아서 옥에 가둘 것이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계속 웃었다.

원님은 웃은 사람들을 모두 옥에 가두었고 분위기는 심각해졌다. 그리고 마을에 방을 붙여

“집에 있는 비단을 한 필 가져오면 옥에 갇힌 사람을 풀어준다.”라고 했다. 사람들은 갇힌 사람 수만큼의 비단을 가져왔고, 원님은 관가 마당에 비단을 쌓아 놓고 비단 장수에게 비단을 찾아보라고 했다. 옛날 비단에는 표시가 있어 비단 장수는 자신의 비단을 알아볼 수 있었다. 원님은 그 비단을 가져온 사람을 잡아 와 비단을 훔친 경위를 자백받았다.


정신과 전문의 전현수 원장이 쓴 <마음 치료 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원님이 돌부처를 붙들고 비단을 찾아주듯이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으면 무엇이든 이루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원님은 비단을 찾아야겠다는 마음, 처음에 의도한 바를 향해 밀고 나갔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계속 붙잡아서 해결하려고 했다. 즉 초심(初心)을 놓지 않았다. 처음에 가진 마음을 잃지 않고 꾸준히 행동한 결과 결국 비단을 찾을 수 있었다.


나에게 비단 같은 마음은 무엇이었나. 스스로 끊임없이 주입하는 외부 자극들로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은 어지러워 첫 마음을 찾는 데조차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한강 작가는 소설에서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분된다고 했다. 지금 나에겐 허공으로 떨어지는 눈송이를 가만히 응시하며 내 삶의 경중을 가려보는 고요한 순간이 필요하다.


책장에서 몇 년 전 썼던 일기장을 꺼내 읽으며 그때의 내 마음을 돋보기로 차근히 들여다보았다. 몇 년 전 썼던 일기부터 어제 일기까지 읽으니 그간 어떻게 지내왔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가 사진 필름처럼 보였다. 한 컷 한 컷마다 그 시절에는 몰랐던 생각의 흐름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새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일관된 내 마음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은 잘 지키면서 나 자신과의 약속은 쉽게 저버려 후회하고 다시 결심하는 마음이었다. 흔들리지만 포기하지 않으려는 소중한 다짐이었다.


투우장의 소가 투우사의 유혹에도 나만의 안정을 찾는 지점이 있는데 그 지점을 ‘카렌시아’라고 한다. 자기만의 안식처, 즉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차리고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곳을 빗대어 표현할 때 쓰이는 단어이다. 그곳은 일기를 쓰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생각의 눈을 감는 명상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글을 읽으며 나를 투영해 볼 수도 있고 카페에 앉아 가만히 사람들을 관찰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집 앞 공원 산책이 곧 카렌시아에 접속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지금 그대로의 나를 따뜻하게 허용하는 공간을 마련하고 내가 가졌던 첫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보는 것이다. 흔들리는 지금 마음을 알아차리고 수용해 주는 것만으로도 다시 좋은 미래로 향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의 심장은 작아서 처음 낸 마음을 잃어버리기 쉽다. 쉽게 마음을 내고 쉽게 접어버리곤 내가 그렇지 하며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된다. 이럴 때 자신의 취약함과 불완전함마저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친절함을 베풀어야 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내가 가졌던 첫 마음을 향해 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꾸준히 나아가면 내가 찾는 비단이 눈앞에 형형색색 아름답게 펼쳐질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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