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지도 유메 <그림자 인간>
상상해 본다.
내가 만약 태어나자마자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이였다면 어땠을까. 호적에 오르지도 못한 채로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가족이란 안전망도 없을 것이고 지금 누리고 있는 사회, 경제적인 활동은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원하는 직업은 갖기 어려웠을 것이고 법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고 건강 보험이 없어 병원 진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제도권 밖에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 인간’으로 불안과 고립감에 시달리며 살아갔을 것 같다.
실제로 버려지고 있는 아이들의 현실은 어떨까.
보건복지부의 공식 통계는 2024년 유기 아동수가 30명, 보호 대상 아동은 1978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하지만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아동 보호 대상이 되는 가장 큰 원인은 학대(869명)였고 부모의 사망이나 경제적 어려움 등이 원인이었다. 해외 입양 아동 수 또한 미국 입양아 수 기준으로 여전히 세계 5위권 안에 머무르고 있는 점으로 보자면 유기되는 아동 수는 적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입양 관련 봉사를 했던 지인의 말에 따르면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이들은 해외로 입양되거나 가출팸, 성매매, 범죄집단에 연루되는 등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한다.
츠지도 유메의 <그림자 인간>은 ‘유토피아’라 자칭하는 집단을 만들어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무호적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1996년 5월 세 살, 한 살 남매가 신주쿠 한 빌라에 새들과 함께 감금되어 방치되다가 구조된 ‘새장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뉴스에서 본 6살 리호코는 새장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아 자라서 경찰이 된다. 그리고 그녀가 수사를 맡은 사건의 용의자인 하나가 새장 사건의 남매 중 한 명이고, 현재 무호적자 집단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두 사건을 수사해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여기는 수호받는 유토피아
형제의 은혜에는 은혜를
원수에게는 자애를
힘을 제하고 합을 유지하라!
-유토피아
식품회사 사장인 가나우치 조가 우연히 무호적자를 발견하고 전쟁 후 일정 기간 무호적자였던 자신의 과거로 인해 측은지심을 느껴 이들에게 공장 부지 한편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주고 일자리를 제공해 준다. 원가족에게 학대당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 안전기지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은 계속된다. 바깥세상의 범죄에 연루되고 유토피아 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등의 현실적인 문제 또한 발생한다. 유토피아의 뜻처럼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들만의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었지만 결국 바깥세상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새장 사건의 남매로 오해받았던 남매는 보험금 때문에 친부모에게 버려진 또 다른 피해자였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에게 돈 때문에 버림받고 인공적인 가족 관계에서 안정된 생활을 꿈꿨지만 결국 그마저도 이루지 못했다.
가족이라는 폐쇄된 집단에서는 얼마나 많은 폭력이 일어나고 있을까. 혈연으로 맺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어쩌면 남에게는 하지 못하는 더한 폭력이 일어나도 은폐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사회가 책임져야 할 것도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책임마저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 번 더 헤아려봐야 한다. 영유아 양육, 노인 돌봄, 가족 간병, 실직과 질병 등의 위기 등 이러한 모든 것들을 가족이 책임져야 하는 사회라면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고 본다.
일본에는 아직도 호적 제도가 남아 있다고 한다. 호적 제도는 가족 구성원의 출생, 혼인, 사망 등의 신분 변동 사항을 가족 단위로 기록하는 장부를 말한다. 호적이 곧 개인의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 우리나라는 2008년에 호적제도를 폐지하고 가족관계등록제로 변경하였다. 호적이 누구네 집안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제도라면 가족관계등록부는 나를 기준으로 나머지 가족을 보여주는 개인 중심 제도이다. 하지만 제도를 변경했더라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남아 있다.
멀게만 느껴지는 무호적자 집단의 이야기였지만 생각에 꼬리를 물고 들어가다 보면 나와 주변의 이야기와 만나게 됐다. 그들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다.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나의 고통은 나만의 것이 아니며, 당신의 고통 또한 당신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운명에 책임이 있다. -버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