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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 Aug 06. 2022

통닭 먹는 날

1999년 7월 22일 목요일 

4학년 근면반 7번 '작은 나'의 일기장



2022년 8월 6일 토요일

'큰 나'의 일기장


후라이드 치킨을 들고 할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작은 나’에게


지금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다. 올해 나이 여든 여섯. 어디 아픈 곳이 없다면 그거야 말로 놀랄 일이지만 지금은 많이 아프다. 한 두 달 됐을까. 집과 병원을 오간 지가. 그 사이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가 이제는 병원에서 나올 수 없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병간호를 하고 있는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입밖으로 꺼내지 않고 있지만 다들 한 생각이다. 참 슬프지.


저 시기의 ‘작은 나’ 눈에는 예순 셋의 할아버지가 있다. 쌩쌩하실 때다. 주말 없이 새벽녘이면 충렬사로 출근해 낙엽을 쓸었고, 마을 이장에 봄마다 여는 마을 축제 위원회장도 자발적으로 했다. 옆 마을은 물론이고 차로 15분 거리인 면사무소까지 자전거로 다니는 건 일도 아니었다. 옆 집, 앞 집 기웃대는 오지랖이 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그의 손에는 자주 검은 봉다리가 들려 있었지. 마늘 생선 미역 같은 것들이었다. 


골목 어귀 누가 버리려고 내 놓은 물건을 줍는 것도 잘했다. 쓸 만 해 보이는 건 자신이 쓰든 안 쓰든 간에 품에 차고 보는 성격이었다. 그러고 보니 창고에 선풍기, 자전거, 공구 이런 것들이 서너 개씩은 굴러 다녔던 것 같다. 할머니는 동네를 쏘다니고 뭘 주워오는 할아버지를 못 마땅해 했지만 그렇다고 면전에서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대신 뒤돌아서 핀잔했지. 고추 말리며 밥 안치며 된장 퍼내는 할머니 등에서 들렸던 것 같다. “저것들 다 내삐야지.” 할머니 등은 저녁 노을을 입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후라이드 치킨 말고도 짜장면을 좋아했다. 부산 엄마집이나 마산 이모집에 갈 때면 늘 “짜장면 하나 시키주라” 했다. 당신이 치킨을 먹고 싶어도 “희야, 통닭 먹고 싶제?”라고 하는 할머니에 비해 할아버지는 먹고 싶은 음식을 분명하게 말하는 편이었다. 엄마와 이모는 빙빙 돌려 말하는 할머니보다 순순히 그릇을 싹싹 비우는 할아버지를 칭찬했다. 


여든 넘어서 할아버지 청력은 현저히 떨어졌는데 한 30초 안팎의 통화 시간에 늘 내가 묻는 말은 “할아버지 뭐 먹고 싶어?”였다. 그러면 뭐가 묵고 잡다고 또랑또랑한 답이 돌아왔다. 나는 웃으며 전화를 끊고 이마트나 쿠팡 앱을 열어 이것저것 조금 더 골라 담아 배송했다. 작년에는 생연어, 블루베리를 좋아했다. 건강 욕심이 있어 몸에 좋다는 건 또 기가 막히게 잘 드셨다. 카페에 갈 때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밀크쉐이크 하나를 시켜 할머니와 나눠 드시는 멋쟁이였고.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모가 사온 돼지국밥에 고기가 적게 들었다고 한 마디 할 기운이 있었는데, 이제는 어쩌나. 가는 주삿바늘이 나르는 포도당에 어찌 배를 채울까. 


두 달 전 뇌와 폐에서 암을 발견했고 독한 항암제에 지쳐버린 몸은 눈 뜰 기운조차 사리고 있다. 어제 할머니와 통화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얼굴 옆에 전화기를 대줬는데 “어” 하는 소리를 짧게 두 번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가 "희야요 희야"라고 외쳤다만 할아버지 목소리를 더 들을 수는 없었다. 할아버지는 내 목소리를 알아 들으셨을까. 가족 모두 할아버지가 묵고 잡은 거 배 터지게 준비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단 말이다. 다시 마주 앉아 후라이드 치킨을 먹을 수 있을까. 그럼 좋겠다. “이게 다 뭐이꼬” 소리가 절로 나오게 대령할 텐데. 



‘작은 나’는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큰 나’도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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