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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Feb 12. 2022

15. 딸기와 가리비

아부지 바쁜척해서 미안해요♡

어제의 일이다.


낮에 아버지께서 전화하셨다. 그저께 보내주신 택배 상자 속 내용물의 상태가 궁금하셨을 것이고, 정성껏 넣어주신 것들을 먹어보았는지 묻고 싶으셨을 것이었다.


그 마음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부지, 내가 지금 좀 바빠. 나중에 전화할게요. 아! 별일 없지?"


아버지께서는 별다른 대답도 못하고 전화를 끊어'주셨'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꼬미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해서 애 둘을 데리고 덕수궁에 나가 있을 때였고.. 마침 또미가 흙을 한주먹 퍼서 입으로 가져가던 차였고.. 꼬미는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었고..




전화를 끊고 나니 어디선가 흥겨운 소리가 들렸다. 수문장 교대식?! ㅡ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안 하더니 ㅡ 한 손으로 또미의 유모차를 밀고 한 손으로 꼬미의 손을 잡고 뛰어가서 맨 앞줄에 도착했다. 임금이 살지도 않는 곳에서 무슨 문을 지키냐며. 수문장 교대의식을 마치 놀이공원 퍼레이드 같다고 비판하는 글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지만... 외국인과 영유아에게는 눈이 동그래지는 이벤트이긴 하다.



커다란 북소리를 처음 들은 또미는 울었고 ㅡ 놀랐는지 밤에 자지러지게 울어서 오늘 아침엔 한의원에 뛰어갔고 ㅡ 꼬미는 '왜 저 노란 아저씨들은 모두 도깨비야?'라고 큰 소리로 물어서, 꿩 깃털을 모자 양옆에 장식으로 달아둔 것을 보고, 에미는 여러모로 민망했다. 다행히 수문장 아저씨들은 피식 웃어주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인 후에 잠시 낮잠을 재웠다. 재택근무 중인 남편에게 또미를 맡기고 꼬미만 살짝 깨워 발레교실에 데려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두 아이 모두 데리고 치과로 달려갔다. 꼬미는 영유아 구강검진을 했고 또미는 지난번에 다친 이 사진을 찍었다. 감사하게도 둘 다 괜찮았다.


한숨 돌리며 다시 집으로 향했다. 이번엔 천천히 걸었다. 생협 앞을 지나는데 싱싱한 수산물이 오늘 도착했다고 했다. 꼬미가, 좋아하는 홍가리비를 보고 사자고 했다. 홍가리비 한 봉지와, 잠시 고민하다가 홍합과 청양고추도 함께 샀다.


가리비도 홍합도 따로 해감할 필요가 없었다. 깨끗하고 싱싱한 조개들을 흐르는 물에 헹궜다. 펄펄 끓는 물에 가리비는 살짝 쪘고 홍합은 삶았다. 홍합을 조금 덜어내 남편을 위해 청양고추를 썰어 넣었다. 우리 14개월도 얼마나 잘 먹는지. 가리비도 홍합도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꼬미에게 홍합 껍데기로 국물을 떠먹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내가 꼬미만 할 때 엄마가 알려준 대로. 아이는 재미있어하며 껍질을 숟가락으로 가지고 놀다가 나비라고 하고, 하트라고도 했다. 엄마 사랑해, 라며 그 하트를 주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나의 어린 시절은 풍족하지 않았다. 그 시절 다들 비슷하게 살았겠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아버지가 오랫동안 공부에 매달려 있었고 엄마는 육아만으로도 벅찼다.


어느 겨울,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갔다. 생선 가게 앞에서 엄마는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오늘은 꽁치도 비싸네...' 망설이던 엄마에게 가게 사장은 홍합이나 담아가라고 했다. 가족 모두 푸짐하게 먹을 것이라면서. 그때도 지금도 홍합은 싸다. 나는 그 옆에 있는 가리비를 사 달라고 했다. 그림책에 나오는 인어공주 방석은 저렇게 생겼으니까! 엄마는 내 말을 가뿐히 무시하고 홍합만 한 바가지 샀다.


돌아오는 길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홍게 트럭도 있었고... 떡볶이 트럭도 있었다! 나는 오뎅이 하나 먹고 싶었다.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돈이 없어서 사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그냥 엄마 손을 잡았다. 추위에 볼이 빨개졌는지 눈이 빨개졌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일들이 몇 번 반복되었었다. 점점 나는 뭔가를 사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아버지가 뜻한 바를 이루었다. 점차 형편이 나아졌다.


그런데... 엄마는 100원, 200원을 아끼려고 아이의 손에 오뎅을 쥐어주지 못했던 지난날을 두고두고 반복하며 미안해한다. 시장에 갈 때마다 그날을 떠올리고, 본인 입으로 오뎅을 가져갈 때마다 그날의 나에게 미안해한다. 어쩌다 내가 친정에 가서 엄마와 시장이라도 가게 되면, 오뎅 하나 사 줄까라며 꼭 물어본다. 그런 엄마를 보며 때로는 웃음이 나고 때로는 눈물이 난다.


어린 시절 나는 꽤 병치레를 많이 한 편이었다. 엄마는 이게 다 내가 너를 임신했을 때 잘 못 먹은 탓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 우유도 고기도 잘 못 먹인 탓이라고도 했다. 한편으로 나는 고등학교때부터 집 떠나서 타지생활을 했는데, 그래서 또 제대로 못 먹고 컸다고 걱정. 암튼 그래서인지 부모님은 언제나 나의 먹거리에 곤두서 있다. 그리고 이번에도 서울로 보낼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서 택배로 붙였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임신과 출산 후에 잘 먹지 못하고 몸조리도 제대로 못했던,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던 그 시절의 엄마가 안쓰럽다. 보약 한 재 못 먹고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채 일하랴 공부하랴 치열하게 살았을 그 시절의 아버지가 안쓰럽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당신들의 사랑 덕분에 나는 잘 자랐다고. 당신들의 관심 덕분에 추억이 많은 행복한 아이로 잘 자라, 그 추억을 나의 아이와 함께 나눈다고 말이다. 뿐만 아니라 당신들께서 나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키워주고 좋은 교육을 받도록 해 주어 이처럼 잘 살고 있으니, 이제 그 마음, 조금은 내려놓으시라고 말이다.




아버지가 보낸 상자에는 고구마와 귤, 토마토와 딸기가 가득 있었다. 요즘 딸기값이 비싸서 살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또미 주먹만 한 딸기가 무려 두 팩. 당신들은 한 개도 안 먹고 몽땅 보냈을 터였다.


저녁에 남편이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딸기는 그런데 애들이 벌써 다 먹었어요! 저랑 꼬미 엄마는 세 개씩 먹었는데 끝났네요. 정말 맛있었어요. 하하하."


남편아.. TMI....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근데 가는 뭐가 그래 바쁘다고 전화도 홱홱 끈코 그라노??"


아부지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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