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별 Feb 09. 2022

14. 꼬미의 사생활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카톡'

꼬미의 발레교실이 시작하는 것을 보고 돌아서는데 메시지가 왔다. 누구일까 하고 보니 얼마 전에 먼 곳으로 이사 간 꼬미의 친구 엄마였다. 꼬미 친구가 꼬미를 많이 보고 싶어 한다며 동영상도 같이 보내주었다.


"내 친구 한꼬미! 보고 싶어! 사랑해! 내가 좀 멀리 갔어. 여기까지 와주면 좋을 텐데. 초대해!"


아이고 귀여워라. 친구와 꼬미는 어린이집 베스트 커플로 지난 4세를 하얗게 불태웠었다. '남자 친구'라는 단어를 남편이 유독 싫어했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친구로 불러주었다.


친구의 엄마는 이 동영상을 찍으며 한참 동안 웃었다고 했다. 내 눈에도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운데 이 모습을 담는 엄마는 어땠을까. 어쨌든 아이가 꼬미를 많이 보고 싶어 하니 한번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너무 멀리 이사 와서 아쉽다고 했다. 내비게이션에서 검색해보았다. 차로 2시간 정도 거리였다. 아, 겨우 장롱면허를 탈출한 내가 애 둘을 뒤에 모시고 가기에는 불가능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는 짧은 수다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다른 메시지들을 보았다. 2NE1 방이 뜨거웠다. 이곳은 외가 사촌들이 있는 방이다. 엄마는 9남매, 덕분에 나의 사촌들은 모두 21명이다. 스무 살이 넘는 아이들만 이 카톡방에 들어올 수 있는 영광을 누린다. 처음에는 몇 명 없었는데, 어느새 21번 막내 한 명만 빼고 모두 입장했다. 지난밤 베이징 올림픽을 보다가 분노한 청춘들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텔레비전이 없는 집에서 휴대폰 확인도 잘 못하며 지내고 있는 나는 - 들여다보는 앱도 고작 브런치, 카카오톡과 문자, 메일이 전부. 그런데 이만하면 다 되더라는 함정(?) -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시작한 줄도 몰랐다. (코로나 확진자수가 5만 명이나 되는지도 몰랐네) 아, 그 말 많던 동계 올림픽이 드디어 시작했나 보구나, 했다. 2NE1 덕분에 포털 창을 열고 관련 이슈를 후루룩 훑어보았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멀리서 친구가 오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2008년 2학기 때 학부에서 중국정치의이해라는 수업을 들었다. 당시 교수님은 2주에 한 번씩 시험을 내셨고 학점에 몽땅 반영시키셨었다. 친구들과 괜히 수강 신청했다고 후회하며 주말마다 책과 인터넷을 뒤졌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역시 공부는 암기와 시험으로) 태자당이네, 상하이방이네 하는 것들도 배웠고 당시의 핵심 권력자들도 배웠다. 어느날의 시험 문제는 향후 중국 정치의 서열 구도를 작성해보는 것이었다. 시진핑, 리커창 등등. 이름도 생소했던 그들을 달달 외워서 내가 마치 숨겨진 최고의 권력자라도 되는 듯 누구를 일인자에 배치할 것일지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졸업 후, 나의 답안처럼 그 사람들이 실제 중국의 지도자가 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깜짝 놀랐던지. (호호호. 내 자랑 아님)


암튼 한 학기 내내 나의 안테나는 2주에 한번 답안지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에 곤두서 있었다. 선배들의 주옥같은 말빨과 글빨을 보며 얼마나 주눅 들어 있었던지. 한 번은 나의 답안지의 제목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환영 문구였던 저 문장으로 했었다. 먼 곳에서 친구가 오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문화 대혁명 이후로 공자님과 바이 바이 한 줄 알았던 중국이 저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며 '우리 살아있다'라고 외쳤다. 그 해의 올림픽은 성공적으로 평가받았었다. 당시 개막식에 참석한 국가 정상의 수도 꽤 많았다. 암튼 저 문장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었다. 우리나라 옆에 있는 저 대국이 앞으로 잘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랬는데, 14년이 흐른 지금의 동계 올림픽에서는 그들이 여러 모로 손님을 홀대하고 있는 것 같다. 방구석에서 애 둘을 키우고 있는 아줌마 눈에는 저 대국이 뒤로 가고 있는 듯 보이기도. 역량과 체급이 아쉽구나.


아. 홍콩에서 지내던 시절 가끔 만나던 홍콩인 또는 중국인 지인 - 친구 아니고 지인이라고 하겠음 - 들 중에서는, 물론 매우 조심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자기는 한국을 사실 중국의 속국처럼 생각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도 임금이 바뀔 때마다 중국에 와서 인사하고 뭔가를 받아가지 않았냐면서.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매우 충격받았었다. 뭔 dog sound? 시간이 지나며 보니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에 더욱 충격을 받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라며 남편과 씁쓸해했던 기억이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살아있는 생물과 같은 것이니, 어쩌면 더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분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만. 점점 더 '역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 같기도 하고... 다시 방구석 아줌마로 돌아와서, 나는 아이들에게 국사든 세계사든 여러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 소홀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꼬미는 발레교실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동영상을 찍었다. 멀리 있는 그에게 보내주기 위해서였다. 재택근무 중이던 남편은 그들의 달달한 순간을 마음 졸이며 보았다. 남편은 최근 '아빠, 딸을 이해하기 시작하다'라는 책을 읽었다. 남편의 그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십대 딸을 둔 아빠들이 딸의 남자 친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모두 한때 누군가의 남자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이 모르는 한 가지가 있다. 그가 떠난 빈자리는 벌써 옆집 총각 - 역시 같은 어린이집 - 이 차지했다는 것. 3월부터 유치원 가면 또 바뀔걸? 긴장해라 아빠야. 호호호.


 

매거진의 이전글 13. 꼬미 또미의 일주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