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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Jan 28. 2022

13. 꼬미 또미의 일주일

암호를 대라. 암호를 대라

#1. 또미의 앞니와 쪽쪽이

              

6년째 프리랜서로 하는 번역일이 있다. 둘째가 태어나고는 한 달에 사나흘 정도만 바쁘다. 지구를 반쯤 날아가야 있는 나의 상사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나름대로 신뢰가 돈독하다. 그녀는 내가 둘째를 출산하자 일(과 월급)을 대폭 줄여주었다. (혹시 나가라는 소리인데 내가 못 알아듣고 있나? ㅋㅋ) 독촉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날은 좀 바빴다. 나는 오랜만에 식탁에 앉아서 집중했다. 또미는 그런 엄마를 놓아줄 수 없었다. 식탁 의자를 타고 기어오르기를 수십 번. 나와 남편은 번갈아 또미를 식탁에서 떼어놓았다. 남편이 놀아주기도 했다. 그래도 또 식탁 행. 결국, 아이가 의자에서 떨어지면서 부딪쳤다. 눈은 모니터에 두고 손 하나로 대충 달랬다. 그러다가 쳐다보니 입에서 피가 줄줄.

아이고 세상에 미안해 아가야.      


또미는 평소에도 식탁위에 올라가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리 혼내고 말려도 안된다. 누나 아기때의 바지를 입고 놀던 날.

         

대충 마무리하고 시계를 봤다. 집 앞에 소아치과가 있지만 문 닫을 시간이었다.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10분 이내로 뛰어가겠다고 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달렸다. 선생님께서는 오른쪽 앞니의 잇몸이 다쳤고 이가 흔들린다고 했다. 사진을 찍어보니 다행히 뿌리는 괜찮았다. 아이가 아주 어리기 때문에 괜찮다는 것이었다. 만약 5개월 정도만 더 자랐어도 부러졌거나 빠졌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 딱 그 개월 수만큼 차이나는 대학 선배의 아들이 생각났다. 얼마 전에 앞니 하나가 부러지고 하나가 빠졌었다. 나와도 잘 아는 선배의 아내가 대성통곡을 했다고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일주일 후에 보자고 하셨다. 딱히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사과나 딱딱한 간식 금지, 부딪치기 넘어지기 절대 안 됨, 젖병 및 쪽쪽이 금지라는 과제를 주셨다.  

             

아. 닥치는 대로 물고 뜯고 돌아다니는 14개월에게 불가능한 것들만 숙제로 받은 것이었다. 특히 쪽쪽이.    

           

나도 아이도 쪽쪽이님과 이별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꼬미는 10개월 때쯤 자발적으로 쪽쪽이를 버렸다. 수월하게 이별했다. 또미는 자다가도 더듬어서 쪽쪽이를 찾아 입에 꽂고 돌려서 위아래도 맞춘 후 다시 잠드는 아이였다. 아가님 심기가 불편하실 때 쪽쪽이 만 한 게 없었다. 엄마는 쪽쪽이의 편리함을 좀 더 누릴 계획이었다. 내 쪽쪽이….


전쟁 같은 한 주였다…. 입으로 가져가는 장난감을 다 뺏고 행여나 넘어지거나 부딪칠까 봐 밀착 마크를 했으며 낮잠과 밤잠은 그야말로 대환장파티였으나 엄마가 이불이 되어 어떻게든 해 보았다. 깊게 잠들었다 싶어서 살짝 나가려고 하면 빛보다 더 빨리 일어나서 앉아있는 아가. 쪽쪽이를 물려버리고 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수십 번 올라왔다. 이참에 졸업하자고 참고 또 참았다. 쪽쪽이의 자리를 손가락으로 대체하려고 해서 이것도 난이도 상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드디어 병원 갈 날이 되었다. 나의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듯, 남편은 병원으로 향하는 나의 뒤통수를 향해 '또미 이제 다 나았어~'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살짝 흔들리고 있다고. 다행히 잇몸이 곪거나 하는 등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음식과 기타 등등 여전히 조심해야 하는 상태라고 하셨다. 2월에 꼬미도 치과 검진이 있으니 그때 같이 오기로 하고 선생님과 헤어졌다. 선생님께서는 또미에게도 장난감 자동차를 하나 손에 쥐여 주셨다. 그리고는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14개월 남아. 어머니, 이제 시작이에요. 온갖 상황이 다 펼쳐질 겁니다. 너무 겁먹으실 필요는 없지만 이제 긴장하세요!"  



(네 선생님…. 그다음 날에는 어디서 찔렸는지 갑자기 흰 눈동자에 핏줄이 터져있어서 또 소아과에 뛰어갔다 왔답니다….)

 

                       

#2. 암호를 대라! 열려라 참깨!             

  

재택근무하는 남편에게 임무를 주었다. 바쁜 것은 알지만 꼬미의 어린이집 등·하원은 담당해 달라고 했다. 남편은 성실히 임무를 수행했다. 회의가 있을 때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갔다. 덕분에 나는 숨 돌릴 시간을 얻었다. 문제는 꼬미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데리러 오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설득해보아도 쉽지 않았다. 뭔가 재미있는 놀이 같은 것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우리만의 놀이는 '암호를 대라!'였다. 꼬미는 집으로 돌아올 때 엄마가 매우 반갑게 맞아주는 것을 바랐다. 아빠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려고 하면 절대 못 하게 했다. 본인이 초인종을 누르고 엄마와 대화를 한 후 엄마가 문을 열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까다로운 꼬마 같으니라고) 꼬미가 초인종을 누르면 내가 말했다. "암호를 대라!"        

        

처음에는 '암호'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꼬미가 어리둥절해했지만 금세 깔깔거리며 웃었다. 어느 날은 열려라 참깨, 어느 날은 나는 꼬미다, 등등. 나는 목소리를 점점 더 변조했다. 더 웃기게. 아이는 즐거워했다. 그렇게 암호를 대고 문을 열어서 두 팔을 활짝 벌린 후 '사랑하는 우리 꼬미 재미있게 잘 놀았어?'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꼬미가 돌아올 때쯤 또미 생선을 굽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딩동' 울리길래 당연히 남편과 꼬미인 줄 알았다. 전화기 표시를 누르고 소리쳤다.   

            

"암호를 대라! 암호를 대애애애라!"      

         

꼬미의 키가 작아서 평소에도 화면에 꼬미가 나오지는 않았다. 남편은 살짝 비켜서 있을 때도 있었고 화면에 나올 때도 있었다. 그래서 화면을 볼 생각도 안 하고 최대한 웃기게 소리만 질렀다.   

            

대답이 없었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화면을 보았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들어가던 어떤 남자가 다시 나왔다. 그리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네! 이마트 쓱입니다! 암호는 이마트!"               


헐….     

나는 숨고 싶었다. '기사님, 죄송해요. 아이가 누른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그새 기사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셨다. 그리고 곧 남편과 아이가 왔다.  

             

"자기… 혹시 이마트 기사님 봤어?"     

"응. 밑에서 만났어. 왜?"     

"응…. 내가… 암호를 대라고 했어…. 자기가 온 줄 알았거든."              

 

남편은 최근 본 것 중 가장 신나는 표정으로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가만히 있다가 일하다가도 웃었다. 잊을만하면 '암호를 대라'라고 말하며 나를 놀렸다.  

              

당신을 즐겁게 하였으니 그것으로 되었다며 나는 위안을 삼는다.     

앞으로 한동안 이마트 기사님은 만나지 않을 예정이다.   


                      

#3. 꼬미, 발레 수업을 시작하다.  

   

꼬미는 세 살 때 문화센터에서 하는 발레 수업에 참여했었다. 나는 또미를 뱃속에 품은 채로 꼬미와 마스크를 하고 - 그때는 코로나 사태가 잠시 주춤했었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 발레 수업에 가는 열혈 엄마였다. 지나가던 언니들이 예쁜 발레 옷을 입은 것을 우연히 본 아이가 발레 발레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세 살의 발레 수업은 점프가 전부였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문제는 나의 조산기가 심해졌다는 것이었다. 아쉽지만 우리의 발레 수업은 네 번 정도 만에 접어야 했다.    

           

동네 발레학원들은 다섯 살부터 받아준다고 했다. 꼬미는 다섯 살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나는 고민했다. 코로나도 굉장히 신경 쓰이고 추운 겨울인 것도 신경 쓰이고. 무엇보다 또미를 데리고 함께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4월 정도에 시작해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동네 발레학원에 전화나 돌려봐야지 했다.  

             

아. 영유아의 동네. 벌써 대기 번호 발급이었다. 이게 뭐냐. 역대급 저출산의 시대이지만 첫째 둘째 모두 산후조리원부터 경쟁과 대기를 시작하더니 발레학원까지 포함될 줄이야. 그중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 그래서 평이랄 것도 없지만 평이 괜찮은 - 어느 발레학원만 5세 반 자리가 널널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1월부터 등록했다. 마침 남편이 이번 달에 재택근무를 하니 또미를 잠시 집에 두고 갈 수 있었다.                


그래도 아빠의 일이 바쁜 날 두어번은 누나 발레교실에 따라 갔다. 엄마는 몸살났다.


또미가 보챌 경우를 대비한 간식 - 그의 최애로만 선별하여 - 바구니를 남편 책상 위에 올려두고 꼬미와 살금살금 집을 나섰다. 꼬미는 신났다. 엄마랑 둘이 나가는 것도 좋고 발레도 좋고. 나도 좋았다. 오랜만에 꼬미와 둘이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내니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꼬미가 발레를 하는 동안 나는 같은 건물에 있는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오후 5시 이후만 되면 허리가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다. 꼬미 때부터 시작된 허리 통증이 또미 때 와서 더 심해진 것 같았다. 밤마다 징~ 하던 손목도 드디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의사 선생님은 디스크 초기 같다고 하셨다. 손목은 양쪽 모두 건초염에 인대까지 문제가 있다나. 뭐 어쨌든 귀한 시간 덕분에 따뜻한 침대에서 여기저기 침을 꽂으니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시장이 있었다. 꼬미와 시장 구경을 하며 드디어 눈곰돌이(눈오리 대용) 집게를 샀다. 어느 날은 아빠 간식으로 호떡을 사 오고, 어느 날은 따끈따끈한 가래떡을 사 왔다. 아이는 행복해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즐거웠다.               


또미가 걱정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주는 우리 또미. (라고 말하면 남편은 항상 '그건 사랑이 아니야 집착이지!!'라고 한다) 엄마가 안 보이면 잠도 못 자고 놀지도 못하고 울기만 하는 우리 또미를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발레학원으로 갈 때마다 내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남편은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우는 아이를 달래는 데에는 예전부터 재능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남편과 또미가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이는 방긋 웃으며 아빠와 놀고 있었다. 비록 아빠가 조금 과격하게 다루긴 하지만 둘만의 놀이도 생겼다. 아빠 덕분에 또미는 최근에 개인기를 세 개나 추가했다. ('아' 해봐 하면 '아' 하고 '곤지곤지'하면 손가락을 갖다 댄다. '바~이' 하면 팔을 흔들며 '바~~'하고) 마음이 놓였다. 남편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잠시 빠져주어야 남편이 아이들과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며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참, 신나게 발레를 배우고 있는 꼬미는 틈날 때마다 인형과 또미를 앉혀놓고 '암바 아나바 알라스콩'을 가르치고 싶어 하지만 또미는 격렬히 거부하고 있다.           


              

#4. 덕수궁 나들이     


어느 늦은 오후에 충동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덕수궁에 갔다. 또미의 걷기 연습을 집 밖에서도 해 보아야겠다 싶어서였다. 경복궁은 혼자 아이들을 감당하기에는 규모가 크다. 한눈에 쏙 들어오는 덕수궁이 딱 좋다. 차도 안 다니고 나무도 많고 전통 건물도 보여주고. 고궁은 좋은 점이 많다. 그날은 시간이 늦어서인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꼬미를 데리고 덕수궁만 서른 번은 간 것 같다. 덕수궁은 봄이 가장 아름답긴 하지만 언제나 어느 때나 운치가 있다. 고궁에 서린 지난 시간과 그곳의 사람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서늘하다. 그런데 아이를 데리고 가면 이런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다. 열심히 쫓아다닌다.      

         

나는 덕수궁 정관헌을 좋아한다. 유모차를 밀고 그 앞까지 올라가기도 편하고 바로 옆에 기저귀 교환대가 있는 화장실도 있다. 정관헌쯤 가서 또미를 유모차 밖으로 꺼내 주었다. 걸음마를 하자고 풀어놨는데 갑자기 누나 옆에 앉는다. 평소에는 뛰어다니기를 좋아하는 꼬미가 그날은 바닥에 앉아서 모래 놀이를 한다. '아니 왜 하필 이 추운 겨울날! 그것도 흰 바지 입고 왔는데!! (도착해서야 깨달음)'       

        

어쩌겠나. 한동안 그냥 두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모래 놀이를 했다. 혹시라도 또미가 주워 먹을까 봐 매의 눈으로 감시했다. 그런데도 또미는 엄마 몰래 돌 두어 개를 입안에 넣었다. 평소라면 덜 예민하겠지만 이 코로나 시국에… 데려간 엄마가 잘못이다…. 그렇다고 너를 집 안에 묶어둘 수만은 없지 않니….  


             

신나게 모래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요즘 서울에 사는 아이들은 공원의 정해진 곳이나 고궁 정도 와야 모래를 만질 수 있다. 바다는 멀다. 놀이터의 바닥은 대부분 위생상의 이유로 바뀌었다. 책상 위에 올려놓는 '모래 놀이 장난감'이 아닌 모래와 함께 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냥 두었다. 아이의 손이 너무 빨갛다 싶어서 이제 그만 손 씻으러 가자며 사탕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날 또미는 집 밖에서의 걸음마도 성공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지 자꾸만 주저앉았지만 이내 적응했다. 아가. 이렇게 너의 발자국을 찍는구나. 부지런히 걷고 뛰어보자. 엄마의 삶은 더욱 바빠지겠지만 어쩌겠니. 그렇게 너는 더 많은 세상을 만나겠지.



#5. 철든 줄 알았잖아.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야기까지 끝냈다. 세 번째 자장가를 불러줄 때쯤 버티고 버티던 또미가 잠들었다. 이제 꼬미만 잠들면 된다! 오늘은 반드시 그녀보다 내가 먼저 잠들지 않겠다며 두 눈을 부릅뜨고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다. 옆으로 누운 아이를 뒤에서 안아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미안해졌다.

               

또미가 앞니며 눈이며 자꾸 다친 한 주였다. 아이를 데리고 엄마가 병원에서 뛰어다니니, 꼬미는 행여라도 엄마의 관심이 자신에게서 멀어질까 봐 더욱 떼쓰고 소란스럽게 굴었다. 당연히 말도 안 들었다. 엄마에게 잔소리도 많이 듣고 혼나기도 했다. 그런 아이가 등을 동그랗게 구부린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꼬미야 엄마가 미안해."     

자장가를 부르다 말고 말했다.  

             

"엄마가 요즘 자꾸 혼내고 소리 질러서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반성하고 앞으로는 더 좋은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갑자기 시작된 고해성사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꼬미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엄마 아니야. 내가 미안해. 내가 엄마 말 일부러 잘 안 들었어. 나쁜 행동인 거 알면서도 또미 뒤에서 밀고 꼬집고 때리고 그랬어. 내가 잘못했어. 꼬미가 안 그럴게. 엄마 미안해."

               

응?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철들었나?     

갑자기 어른스럽게(?) 말하는 아이에게 감동할 뻔하다가 깜짝 놀랐다. 어쨌든 마음이 짠해서 - 너는 그저 44개월만큼 철딱서니 없어야 하는데 엄마가 이렇게 만들었나 싶어서 - 아이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주다가 같이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아주 살짝 기대했었다.     

역시, 별일 없었다.     

그때 잠시 천사가 다녀왔었나 보다.     


다행이었다. 44개월만큼 딱 그렇게 망나니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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