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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Jan 16. 2022

12. 티라노사우르스 두 마리

주도적인 아이, 호기심 가득한 아이, 건강한 아이

"티라노사우르스 두 마리가 걸어오고 있어."

"무슨 소리야?"

"쟤네 걸어 다니는 거 봐.. 딱 먹잇감 찾아다니는 육식 공룡 두 마리야."



남편이 열흘째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위드 코로나의 시대. 그의 옆 부서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며칠에 걸쳐 여럿 나왔다. 아마도 음력설 전까지 재택근무를 이어갈 듯 싶다. 남편의 재택근무는 7개월 만이다. 그동안 꼬미의 놀이는 조금 더 다양해지고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배밀 단계에서 아빠를 회사에 보냈던 또미는 이제 빠르게 기어 다니고 뒤뚱뒤뚱 걸어 다닌다. 손이 닿는 곳도 제법 많아졌다. 남편은 당황했다.



"작은별 대단하다."

"왜?"

"이 상황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도 대단하고. 책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대단하고."

"하하하. 내공이 좀 생기고 있지? 그런데 자기도 대단해."

"왜?"

"이 상황에서 컨퍼런스콜이 되니? 애들 웃음소리 울음소리 다 들리겠다. 방 문 좀 닫아"




집이 아수라장이다. 놀이방을 아빠의 집무실로 내어주었더니 거실과 부엌이 놀이터가 되었다. 엄마가 싱크대 앞에 서있는 동안 또미는 구석구석을 열어본다. 마음에 드는 국자와 양푼을 골랐다. 엎어 놓고 두드리며 소리를 낸다. 조만간 아랫집에 뭐라도 사 들고 찾아가야 할 것 같다. 꼬미는 인형을 잔뜩 줄지어 놓더니 간식 시간이라고 장난감 컵에 물을 담기 시작한다. 조마조마하다. 꼬미의 인형놀이에 참견하고자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또미가 까치발을 들고 고춧가루 통을 획득했다. 바로 엎었다. 다행히 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아이의 입 주변과 두 손은 온통 붉은색이다. 이제 기어 오기 시작한다. 안돼! 제발 거기서 멈추라고!


심상치 않은 소리를 들은 남편이 신속하게 청소기를 들고 나와서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우리 청소기. 고생이 참 많구나. 그 안에 쌀 튀밥도 가득 들어있고 색종이 조각도 가득하고. 이제 고춧가루가 더해진다. 저 청소기의 먼지통도 빨리 씻어내야 한다. 그나저나 청소기를 새로 사려고 했는데 두 해는 더 미뤄야겠다 싶다. 또미가 청소기를 너무 좋아한다. 장난감 청소기는 취급 안 한다. 곧 다 부서질 것 같긴 하다. 제발 더 버텨라.


고춧가루의 현장을 수습하고 또미를 씻겨 옷을 새로 입혔다. 바닥에 신선한 것이 보인다. 물이 흥건한데 핑크색이다. 꼬미는 인형 친구들에게 딸기 우유를 먹이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장난감 컵에 물을 담고 물감을 짜서 넣어 주었단다. 그구나. 딸기 우유를 먹는 시간이었구나. 그런데 왜 쏟았을까 꼬미야. 아이를 이해하며 놀이에 맞장구를 쳐야 할까 화를 내야 할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또 다른 소리가 들린다. 또미야 너는 언제 부엌으로 갔니. 부엌을 사랑하는 우리 또미, 간장통을 굴리며 노는 것은 괜찮단다. 그런데 너의 진화한 손으로 뚜껑을 열었구나. 이번엔 저곳에서 난리가 났다. 부엌 바닥에 검은색 물이 줄줄 넘친다. 코 끝에 진한 간장의 향기가 스친다. 얼마 전에는 멸치 액젓이었는데... 멸치 액젓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에 간장의 향기를 더하는구나. 멸치 액젓만 치워놓은 엄마 탓이다. 간장이 너의 손에 닿는지 미처 몰랐구나. 멸치 액젓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또미를 아기 의자에 묶어놓고 간식을 잔뜩 올려주었다. 꼬미에게는 로보카폴리를 틀어주었다. 둘이 동시에 움직이도록 해서는 도저히 이 아수라장을 정리할 자신이 없다. 우리의 티라노사우르스들이 각자의 먹잇감에 집중하는 사이 엄마는 빠르게 움직인다. 참, 꼬미 한약 먹일 시간이다. 얼마 전 또미의 돌을 기념하여 양가 친척들께서 용돈을 보내주셨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두 아이의 보약을 지어 주었다. 꼬미는 유치원 가기 전에, 또미는 돌 맞이 기념으로 기력을 보하기 위함이었다. 생각해보니 기력은 엄마와 아빠가 보해야 할 것 같긴 하다만.


꼬미를 불러서 컵에 약을 담아두었으니 어서 마시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아수라장이 된 거실의 장난감 부엌으로 향했다.



"엄마, 걸레 줘."

"왜?"

"쏟았어..."

"꼬미!! 엄마가 약 쏟으면 된다고 했어 안 했어!! 자꾸 약 쏟으면 엄마가 이제 안 사준다고 했지!!!"



드디어 나의 하루치 인내심이 바닥났다. 나는 이성을 잃고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약을 엎지른 것이 벌써 다섯 번째다. 두 번째까지는 화내지 않고 잘 타이르며 슥슥 닦아주었다. 오늘은 고단했고, 약을 엎지른 것도 다섯 번째이니. 나는 화를 내면서 기분을 정당화했다. 남편이 나와서 꼬미를 안아주었다. 또미도 고춧가루며 간장이며 쏟고 돌아다니는데 왜 꼬미한테만 뭐라고 하냐고 거든다. 꼬미와 또미가 같냐며 싸움을 시작하려다가, 다행히 멈춤 버튼을 눌렀다.

   



주도적인 아이, 호기심 가득한 아이, 건강한 아이...


그런 아이로 키워내고 싶다. 그런데 아이들이 구상하고 실천에 옮기는 놀이들은 엄마 마음에 쏙 들지 않는다. 다양한 물건의 소리를 들어보고, 촉감을 느껴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또 먹어보는 아이가 엄마는 버겁다. 그리고 '안 되는 것'에 대하여, 평정심을 잃지 않은 상태로 차분하게, 똑같은 일이 무한히 반복되어도 알려주는 엄마가 되고 싶지만 나는 하겠다. 나는 고민한다. 과연 몇 번까지 받아주어야 하는지를. 그리고 궁금하다. 13개월과 42개월에게 기준을 똑같이 설정해야 하는지. 13개월에게 참아주는 것을 42개월에게도 참아주어야 하는지 등등. 아 실전 육아는 어렵다. 직장생활은 연차가 쌓이면 노하우가 생기고 수월해졌던 것 같은데 육아생활은 갈수록 태산이다. 과제는 끊임없이 레벨업. 분명히 여유가 생긴 것 같은데 다시 실패. 이유가 무엇일까.



"야! 꼬미! 그거 아빠 양파링이야!"

"야! 또미! 그만 먹어라 좀! 또 스티커 먹고 있냐? 그만 먹으라고!!"



이번엔 남편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애들이 둘 다 운다. 전투의 현장으로 다시 들어갈 시간이다. 주말아 부디 무사히 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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