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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Jan 10. 2022

11. 섬집 아기와 옹달샘

자장가의 가사를 음미하며

"오늘은 여섯 개 불러줘."

"알았어. 그럼 시작할게."



꼬미를 재우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빠짐없이 챙겨야 한다. 일단 책 세 권을 읽어야 한다. 가끔 엄마는 두 권으로 줄여보려고 하지만 어림도 없다. 아빠는 짧은 책으로만 골라오지만 소용이 없다. 책을 고르는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넓은 아량으로 본인 책 두 권과 또미를 위한 책 한 권을 가져온다. 다행히 또미의 책은 짧은 편이다. 책 세 권을 읽는 동안 또미는 졸려서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동생이 울어도, 소리를 질러도, 대혼란이 펼쳐져도 꼬미는 책 세 권을 마무리해야 한다.


드디어 눕는다. 애착 이불과 애착 인형도 모두 제자리에 누워야 한다. 꼬미의 애착 인형은 야옹이와 어흥이이고 또미의 애착 인형은 고래다. 다행히 또미는 아직까지 이불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꼬미의 애착 이불인 새(bird) 이불은 곳곳이 해지고 터졌었다. 다른 이불을 사 주어도 새 이불과 헤어질 수 없었다. 결국 지난 크리스마스 때 나의 외할머니께서 안고 다닐 수 있는 크기로 수선해 주셨고 그녀는 상당히 만족하는 중이다. 참, 나의 바느질은 꼬미의 태교교실 때 만든 배저고리에서 끝났다. 손재주가 전혀 없는 나는 낑낑거리며 배저고리 숙제를 하다가 남편에게 넘겼었다. 나의 손재주는 엄마를 닮았다. 사실 엄마에게 도와달라며 꼬미의 애착 이불을 가지고 갔었다. 엄마는 딸 내외와 손녀와 손자, 그리고 애착 이불까지 모두 챙겨서 엄마의 엄마에게 달려갔었다.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반드시 꼬미와 또미에게 따로 해 주어야 한다. 피곤하거나 귀찮아서 '우리 아가들~'로 시작하며 한 번에 해결하려다가 강력한 항의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꼬미는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또미가 졸리니까 또미에게 먼저 이야기해.'라고 항상 배려해준다. 마무리는 '사랑해, 사랑해, 우리 꼬미를 사랑해.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로 해야 한다. 그러면 꼬미는 '엄마 좋아.'라고 대답한 후 자장가 개수를 정해서 알려준다. 대부분 다섯 개에서 일곱 개 사이로 마음을 정한다. 오늘은 여섯 개였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반짝반짝 작은별 아름답게 비치네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순조롭다. 두 개 남았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엄마 잠깐! 왜 아기는 혼자 남아? 엄마는 왜 아기를 두고 가?"

"엄마가 굴을 따야 했대."

"그래도 아기는 혼자 두면 안되지."

"맞는 말이야. 아기를 돌보아줄 사람이 없었나 보다. 엄마도 걱정이 많이 되어서 금방 돌아왔을 거야."

"아빠는 어디 갔대?"

"음.. 아빠도 일하러 갔나봐."

"슬프네. 계속해봐."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엄마, 낮잠이야, 밤잠이야?"

"흠.. 글쎄.. 노래가 알려주지는 않는데.."

"낮잠일 거야. 밤에 혼자 있으면 더 무섭잖아. 밤에는 굴도 안 보인다고."

"그렇구나."



(자 이제 하나만 더 하면 된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엄마. 토끼는 왜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

(가사 빠르게 다시 복기 - 아무 생각없이 불러서 기억이 안 남)

"깊은 산속에 있는 옹달샘이 맑고 깨끗해서, 토끼가 와서 보고는 물 맛이 궁금했나 봐. 물을 마시다가 세수하는 건 깜빡했나 보지?"

"하."

"응?"

"하 웃겨."

"왜?"

"웃기잖아. 세수하는걸 왜 까먹어~ 큭큭큭 나도 내일 세수하는 거 까먹어야지~"

"... 응... 엄마 여섯 개 다 불렀어.. 이제 자도 돼?"

"응 잘 자."



오늘의 교훈은 자장가도 가사를 음미하며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42개월 많이 컸구나.




아이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다 보면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나와 동생들의 잠자리에서 엄마가 불러주었던 자장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할머니가 우리 손녀 고생한다고 밤마다 불러주었던 자장가. 그때의 따뜻한 손길과 목소리에 가끔 울컥, 눈물이 난다. 내가 사랑을 참 많이 받고 자랐구나 싶다.


로는 피곤하고 귀찮지만 아이들에게 자장가를 잊지 않고 불러주려고 노력한다. 언젠가 아이들이 마음이 힘든 밤을 홀로 보낼 때, 어린 시절 엄마의 자장가를 떠올리고 잠을 청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런데 꼬미야. 엄마는 사를 그렇게 조목조목 따지진 않았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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