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별 Jan 08. 2022

10. 엄마 이름으로 살아

09. 엄마가 된 후 - 에서 계속

아이들을 재우다가 또 내가 먼저 잠들 뻔했다.

스르륵 눈이 감기려던 순간 '금요일 밤이잖아!'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불금의 흥분은 없지만 밤의 고요를 즐겨보겠다고 아이들이 잠든 방을 살금살금 나왔다.


지난 연말에 어떤 분께서 Amy Winehouse의 You know I'm no good이라는 노래를 보내주셨다. 집중해서 노래를 들어보고 싶었지만 아이들과의 일상 속에서는 여의치 않아 미루고 또 미루고. 어떤 가수인지를 먼저 알아보았다. 요절한 비운의 천재 가수. 궁금하기만 했던 이 노래를 드디어 들어본다. 그녀의 삶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를 알고 난 후 영상을 보아서인지 뭔가 먹먹하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고, 신선하고. 반복해서 듣다 보니 그녀의 다른 곡들도 찾아보게 된다.

 

이 노래를 보내주신 분은 연세가 상당히 많으시다. 그분의 센스에 새삼 감탄한다. 먼 중남미 대륙까지 출장 다니던 시절 팀에서 고문으로 모셨던 분이었지만 체력은 가장 좋으셨던 기억이. 그때가 벌써 몇 년 전인데 아직도 나를 기억해 주시고 가끔 연락도 해주셔서,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나는 그분이 기억하는 과거의 총기 있고 열정이 가득 한 일꾼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분의 전화를 용기 내어 받았다. '벌써 다섯 살이라고? 세 살 까지 키우고 나면 다 한 거 아닌가? 그다음부터는 본인의 몫이야. 허허허.' 호탕하게 웃으셨다. '둘째는 이제 겨우 돌이 지났어요.'

저의 삶에 대해서 고민할 시간이 더 필요해요, 라는 느낌으로 나는 덧붙였다.  


https://youtu.be/3QDDzaY1LtU

Amy Winehouse - You know I'm no good. Live in London 2007




바로 앞 에피소드에서 이어진다. 아직 남기지 못한 두 포인트가 기다리니까. 참, 그전에 깜빡 잊고 지나갔던 것이 생각났다. 유모차의 나들이에서 백화점이 사랑받는 이유 중에서 말이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에는 수유실과 기저귀 교환대 등이 있는 베이비룸 (영유아 휴게실)이 훌륭하게 준비되어 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요소다. 홍콩에서 꼬미의 첫 한 해를 보낼 때 나의 단골 목적지는 ICC 아래 Elements 쇼핑몰의 베이비룸이었다. 주기적으로 청소와 소독을 해주고 공기청정기도 있으며 각종 용품이 완비되어 있는 곳. 같은 이유에서 홍콩과 서울의 IFC mall도 좋았다. 롯데백화점 본점에는 넓고 쾌적한 휴게실 옆에 이유식 카페도 있다는.

 



5. 삼시 세 끼를 손수 차려내는 것의 위대함

삼대가 덕을 쌓아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주말부부 생활을 정리하고, 남편의 곁으로 돌아와 깨소금 달달 볶는 신혼살림을 할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할 만했다. 당시 한창 유명하던 백선생님의 레시피를 따라서 하나씩 만들어내다 보니 재미도 있었다. 첫 아이의 이유식까지도 어찌어찌해냈다. 유기농 식재료를 판매하는 가게에서 이유식용 다진 재료도 손쉽게 구한 덕분이었다. 아이가 이유식을 졸업하자 슬슬 한계에 부딪쳤다. 그즈음 둘째의 임신을 이유로, 그리고 유아식을 정기적으로 배달해주는 믿을만한 업체를 만난 행운 덕분에 외부조달을 시작했다. 또 남편이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니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아 반찬가게 출입도 잦아졌다. 당연히 배달 횟수도 늘고.


언제나 가장 먼저 일어나는 남편은 스스로 시리얼과 과일을 찾아 아침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한 후 출근하는, 매우 바람직한(?) 이 시대의 남편으로 거듭났다. 이 부분은 각 가정마다, 부부의 상황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모두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암튼 남편이 스스로 아침식사를 해결해주는 덕분에 솔직히 내 몸은 편하다. 마음 한 구석은 늘 불편하다.


엄마가 새벽부터 일어나 야채주스를 직접 만들고 따뜻한 밥과 국, 반찬 여러 개를 매일 바꾸어 차려주는 아침상에,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함께 시작하는 하루를 강조하는 아버지 아래에서 자랐다. 보수적인 경상도 가정이었다. 그런 부모님께서는 딸에게 사위의 아침 식사를 신경 쓸 것을, 하다 못해 옆에 앉아라도 있을 것을 주문하신다. 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요즘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큰일 난다며 대꾸한다. 하지만 지난날 내가 경험했던 식사 시간의 장점도 잘 알기에 늘 내적 갈등이 심하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고 나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려나. 식재료를 완성품으로 만들어 내기까지 필요한 시간과 노동을 과연 감당할 의지가 생길지 모르겠다. 옛날 옛적 엄마들과 그녀의 엄마들은 대가족의 삼시 세 끼와 기타 간식을 도대체 어떻게 챙기셨을까. 다른 집안일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았을 텐데. 그 위대함을 이제야 조금 헤아려본다.




6. 엄마 이름으로 살아   

스물한 살 쯤이었다. 엄마와 둘이 오붓이 한강 공원에 앉아 사람 구경을 적이 있었다.

엄마의 휴대폰이 울렸다. 무심결에 듣게 되는 엄마의 통화에서 상대방은 '작은별 엄마~ 어디예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는 '딸이랑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게 되었는데~'라며 대답하고. 그때 내 귀에 갑자기 '작은별 엄마'라는 호칭이 참 거슬렸다.


지난날 스치듯 본 신문 기사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책 등에서 종종 다루어지던 소재가 떠올랐다. 왜 엄마가 되면 본인의 이름이 아닌 누구누구의 엄마로 불리냐, 엄마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엄마의 인생은 어디에 있냐, 등등. 어느 기사였는지, 어 프로그램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나지는 않았지만 '우리 엄마도 엄마 이름을 찾아야 해!'라는 일종의 사명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나는 엄마가 전화를 끊자마자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엄마, 이제 엄마 이름으로 살아.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엄마 이름 세 글자로 불리란 말이야. 그동안 셋 키우느라 엄마 인생은 없었지? 이제 우리 걱정은 머릿속에서 비워내고 엄마는 엄마 인생을 살라고.'


신나서 조잘거리는 내 말에 엄마가 어떤 대답을 했었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나는 그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가 감동받거나 좋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스스로를 기특한 딸이라 여기며 뿌듯했고. 그 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나의 이십 대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삼십 대 초반에 첫 아이를 품에 안았다. 낯설기만 했던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육아는 쉽지 않았지만 '엄마'가 되고자 고군분투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그날의 장면이 생각났다. 아, 나는 얼마나 건방졌던가.

  

엄마에게도 나는 가슴 떨리는 첫아기였을 것이고 엄마가 온 힘을 다해 키운 아이였을 것이다. 머릿속에 마음속에 온통 나와 동생들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렇게 삶의 모든 것을 바치며 여러 해에 걸쳐 엄마가 되었는데, 그렇게 키워놓은 딸이 엄마를 위한답시고 이제는 엄마로 살지 말라는 소리를 했던 것이었다.


아이와 분리된 엄마의 자아, 아이와 분리된 엄마의 삶은 분명히 필요하다. 소중한 사이일수록 적정한 거리를 유지할 때 더욱 건강한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런 맥락에서 엄마의 이름 석 자로 불리며 고유한 영역 속에서 살아가는 순간이, 공적이든 사적이든 전혀 상관없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가 '엄마'가 되기 위해 겪어냈을 수많은 가슴 떨림 또는 가슴앓이의 시간 또한 묵직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자식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든지 '누구의 엄마가 아닌 본인으로 살아가세요.'라는 말은 절대 가벼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우는 중이다.


그날 나의 말을 들은 엄마는 기특함과 후련함을 느꼈을까 아니면 당황스러움과 허탈함을 느꼈을까. 모두를 느꼈을까. 어느 감정이 더 컸을까.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로 미안하다고 말은 했다. 내가 엄마를 위한답시고 작은별 엄마로 살지 말라는 소리를 했었다며.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그러한 말들이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조금 알 것 같다고 했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을 앞뒤 설명 없이 말했지만 엄마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야. 니가 말하니 내가 이제사 이야기하지만, 그때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참나. 하하. 이제 니가 한번 엄마 해봐라. 자식한테 집착 안 하고 니 이름 석자로 불리며 살아가는 삶이 말처럼 쉬운지."



매거진의 이전글 09. 엄마가 된 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