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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Jan 04. 2022

09. 엄마가 된 후

오늘 맞다고 믿는 것을 내일 아니라고 인정할 줄 알아라

결혼하기 전의 나는,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엄마가 된 여자들을 보며 종종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하곤 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아이 얼굴을 넣어놓다니. 아이가 프로필인가?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스타벅스에 오다니. 그렇게 커피가 좋은가?

(비슷한 맥락에서)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백화점에 오다니. 아기를 위해서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나중에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핑계로 경단녀가 되진 않아야지. 내가 벌어오는 돈을 여러 해 동안 모두 시터 이모에게 쓰더라도 말이야.

손톱을 예쁘게 정돈하고 매일 귓속 구석구석 깔끔하게 관리할 것. 정기적인 미용실 방문도. 기본 아닌가?

아기가 백일만 지나면 아기방에서 따로 재우고 반드시 남편과 함께 자리라.

가족들을 위한 식사는 내가 손수 차려야지. 남편 아침도 꼭 챙겨줘야지.

아이에게 집착하지 않고 분리된 삶을 살 테다.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의 이름 석 자와 함께 살아가리라.


등등등.


입 밖으로 내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휴.




이제, 지난 여러 해 동안 깊이 반성하고 수정한 생각들을 적어내려가 보겠다.

물론 이 생각들도 여러 해 지나면 오늘의 글을 부끄러워하며 변경될 수 있다.



1. 아이가 프로필이 맞다.

사실 이건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다. 아이 사진을 보여줄 수도 있고 본인 사진을 올려놓을 수도 있다. 인물 사진이 아닌 꽃이나 장소, 사물, 또는 그림 등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요즘은 혹시라도 범죄에 노출될까 봐 인물 사진은 제외하거나, 옆모습이나 뒷모습 등으로 조심스럽게 보여주는 경우도 많다. 그건 그렇고.


엄마에게는 아이가 프로필이 맞다! 천사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라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샘솟는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인다는 함정이 있고,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문제가 있지만.) 인간에게 이렇게 다양한 표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자는 모습에도 수만 가지가 있고 똥 싸는 표정에도 기록하고 싶은 수십 가지 순간이 있다. 아, 아기의 향기를 프로필 사진으로 전달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생명을 돌보는 것. 엄마의 삶은 이것 만으로도 정신이 없다. 고개를 들고 거울을 바라볼 여유도 없다. 24시간 동안 엄마가 먹고 생각하고 무엇인가 행하는 것의 중심에는 아이가 있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그러나 놀라운 변화를 보이는 아이의 성장. 이것이 내가 해 내는 일의 결과이다. 아이는 오늘의 나를 보여주는 프로필이다. 그럼 그럼.

 

아이가 좀 커서 친구를 알게 되고, 도저히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폭풍의 사춘기와 함께 방문을 걸어 잠그고, 산전수전 겪으며 키워놨더니 바깥으로만 나도는 시기도 지나며, 부모가 해준 것 하나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렇게 컸다고 말하고 다니는 날들을 마주하면서 엄마의 프로필 사진도 변화를 겪긴 한다. 하지만 여든이 훌쩍 넘은 우리 외할머니는 아직도 쉰이 다 되어가는 (9남매의) 막내 외삼촌을 다섯 살 보듯 하시며 밤낮으로 걱정하시니. 육아의 길에 과연 끝이 있을까. 세상에 와서 처음 눈 마주치던 순간의 그 아기, 엄마의 마음속에 자식이란 언제까지 그런 존재일까.


2. 스타벅스와 백화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엄마의 나들이에 대하여

꼬미는 유모차를 두 돌 반쯤에 졸업했다. 아이에 따라서는 네 돌 때까지 이용하기도 한다고. 놀이공원에 가거나 여행길에 나설 때에는 아주 가끔 일곱 살 짜리도 유모차에 태우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제외하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서 스타벅스나 백화점에 나선다는 것은 그 아이가 대부분 세 돌 이하라는 소리다.


만 세 살 이하의 어린아이를 돌보는 주양육자의 하루는 고단하다. 부모, 조부모, 시터, 그 누가 되었든 말이다. 함께 지내는 이와 말도 안 통하고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하루 일과는 단순한 듯 하지만 웬만한 노동의 현장보다 바쁘고 힘이 들며 온 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내 글에 종종 등장하는 구절), 누군가와의 대화가 그립기도 하고 그게 안되면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라도 가보고 싶어 진다. 그런데 갈 수 있는 곳도 별로 없다. 요즘과 같은 바이러스 경계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아이의 식사, 배변, 낮잠, 컨디션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유모차에 태워서 집 근처를 한 바퀴 산책하는 것이다. 집 가까이에 공원이 있으면 더 좋고. 이것도 날씨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는 일이긴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타벅스의 커피 한 잔은 엄마에게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곳까지 나오느라 이미 엄마는 아이와 전쟁을 치렀다. 나갈까 말까 수백 번의 내적 갈등도 거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커피집의 문을 여는 순간, '아, 나도 세상과 단절되지는 않았구나. 사람들은 이러한 일상을 보내고 있구나. 똥냄새와 토 냄새 말고 향긋한 커피 내음을 맡으니 참 좋다. 고단한 하루에 우울이 가득했는데 역시 밖에 나오니 분위기 전환이 되네.' 등의 생각을 잠시 하면서 아이의 상태를 빠르게 확인한다. 따뜻한 커피가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만족감이 들 때도 있고 눈물이 날 때도 있고 아무런 생각이 없을 때도 있다. 아이가 잠들어주면 이렇게 멍하니 있는 시간이 아주 약간 더 길어질 수 있다. 나는 체질상의 이유로 커피, 다크 초콜릿, 박카스 등 카페인이 들어간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약속이 있는 날이 아니면 스타벅스는 동선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그랬는데.. 스타벅스에는 주스와 차 종류도 많고 달달한 케이크도 많더라.


백화점도 비슷하다. 백화점 1층의 화장품 코너에서 풍겨져 나오는 진한 향기는 아기들에게 매우 좋지 않다. 옷 매장의 먼지는 어떻고. 백화점의 화려한 불빛과 진열대 또한 아기에게는 해롭다. 백화점 전체에 산소가 부족한 느낌도 든다. 백화점 가는 것을 아주 많이 좋아하여 아이는 크게 고려하지 않고 백화점으로 향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얼마나 되겠나. 어린 아이의 주양육자 대부분에게는 아이가 삶의 중심이다.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백화점은 스타벅스보다도 훨씬 험난한 목적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에 나타난 것은 문화센터 수업에만 잠깐 다녀가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있거나 (아이가 좋아하거나,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나, 이 시간이 엄마에게 좋거나 등의 이유에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백화점에 다녀가야 할 일이 있다거나, 아니면 오랜만에 너무나 다녀가고 싶었기 때문이라거나, 고된 육아의 일상 속에서 이곳에 오면 그나마 육아를 지속해 나갈 힘을 얻는다거나 하는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관찰해보면 - 백화점 7층 매장(주로 유아복과 유아용품이 있는)의 큰손이 되기도 하지만 - 대부분은 구매를 하기보다는 휘리릭 둘러보고 빠르게 사라진다.


번외로, 결혼 전에 유모차를 타고 있는 아기들의 스타벅스와 백화점 나들이를 그렇게 안쓰럽게 보던 나는 엄마가 된 후 두 돌이 안된 나의 아이를 비행기에 스무 번 넘게 태웠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꼬미는 백일 사진 촬영 때 여권 사진을 찍었으니. 처음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탈 때 얼마나 두려웠던지. 행여나 아기에게 안 좋은 영향이 있을까 봐 전전긍긍했고 아이가 힘들어서 아프면 어쩌나 밤새 걱정했다. 횟수가 반복되니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아이에게도 즐거운 나들이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3. 임신, 출산, 육아를 핑계로 라니!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역할을 해 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경험해본 여러 자리들 중 나는 엄마 자리가 가장 어렵다. 전업맘이 더 힘드네, 워킹맘이 더 힘드네. 의미 없는 비교라고 생각한다. 그냥 엄마 됨 자체가 힘든 것 같다. 지난날의 배움과 경력을 허공에 날리고 집에 들어앉아 아이들과 씨름하는 날들도 고단하고, 경력과 돈 때문에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맡겨놓고 정신은 온통 아이들에게 가 있는 엄마의 마음도 고되다. 누군가에게는 선택의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하다. 그리고 조부모 또는 시터의 도움을 받는 일도 여러 가지 복잡한 어려움을 수반한다.


4. 엄마의 자기 관리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놓고 엄마에게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모두 주어진다면 엄마들도 여자가 된다. 그런데 이 시간적, 경제적 여유라는 것이 우리네 삶에서 얻기가 참 힘든 요소이지 않은가.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또는 돈은 있지만 나에게 쓸 돈은 없고,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등등. 시간도 있고 돈도 다소 철없이 쓸 수 있었던 이십 대의 지난날들이 아주 가끔 그립다. 손톱에 무엇인가를 칠할 수 없다. 행여나 음식을 만들거나 설거지를 할 때 가족들 입으로 들어갈까 봐는 두 번째 이유고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다. 샤워 후 당연히 귓속 구석구석 깨끗이 하고 로션도 순서대로 발랐는데 요즘 나의 재정비 시간은 10분도 허락되지 않는다. 엄마가 화장실에만 들어가면 심각하게 대성통곡하는 또미 덕분에 똥 싸기도 어렵다. 미용실은 언제 갔지.. 두 번의 출산 후 매일 엄청나게 머리가 빠졌는데 이 정도 유지하니 참 다행이다 싶다. 또미 출산 후 머리가 빠진 자리에 새로 머리가 올라오며 한동안 앞머리가 삐죽삐죽 서있었다. 어느 날 남편은 내 머리를 보고 사나운 암사자 같다고 했다...     


5. 수면 분리

아니 이렇게 작고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생명들을 두고 왜 다 큰 성인 남성과 내가 자야 하지? 아이들은 밤에도 뒤척이며 엄마가 옆에 있나 없나 비비적대다가 엄마 냄새가 나지 않으면 곧잘 깨는데? 장성한 우리 큰 아드님은 사정없이 코를 골고 엄마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아침까지 쿨쿨 잘 자지 않니?


이렇게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고 결혼 선배들이 말씀하신다. 반성해야지. 아직은 꼬미도 또미도 밤에 엄마가 필요하니 조금만 더 아이들을 보살펴 주고 곧 남편 곁으로 가리라.




아 아직 두 포인트가 남았는데. 마지막 포인트는 할 말도 많은데 또미님 깨신다. 부캐를 버리고 본캐로 돌아가 육아에 전념할 시간이구나. 그럼 나머지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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